"웃으며 인사해 줘"...최불암이 남긴 마지막 당부 [2PM]

오동건 2026. 11. 2.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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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2018년 인연을 가보면 최불암 배우가 그때 당시 염수정 추기경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임형주 팝페라 가수한테도 나를 웃으면서 보내달라는 말씀을 하신 거고 그래서 그 파 하는 웃음소리에 담긴 것들이 실제로 미리 자신의 미래를 다 준비를 하셨다는 점, 그런 얘기를 많이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나이가 들수록 욕심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는 거고 노욕을 부린다는 말도 있는데 이런 부분을 내려놓으면서 후배들한테 많이 기회를 주려고 노력했던 부분들,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최불암 배우와 직접적으로 작품에 출연해서 인연이 시작된 게 아니고 배우자인 김민자 씨와 사모곡에서 모녀 역할로 김혜수 씨와 같이 연기를 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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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 : 이승민 앵커, 박석원 앵커

■ 출연 : 김헌식 문화평론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인용 시 [YTN 뉴스퀘어 2PM] 명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앵커]

김헌식 문화평론가와 함께 고인에 대한 추억 짚어보겠습니다. 리포트로도 전해 드렸습니다마는 오늘 오전 발인에 이어 장례미사, 고별 행사까지 모두 마무리됐는데 많은 동료와 후배 배우들이 함께했죠.

[김헌식]

그렇습니다. 오늘 여의도 성당에서 장례미사가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송일국 배우가 영정사진을 들었고요. 김혜수 배우는 3일째 장례미사에 참여했던 겁니다. 그리고 정준호 배우도 있었고 유인촌 전 장관도 오늘 참여했습니다. 이용식 전 방송인의 모습도 보였고요. 운구차가 출발할 때 시민들 사이에서는 회장님 잘 가세요라는 말도 했습니다. 신현준 배우가 마지막 예를 차렸고요. 장례미사 끝나고 무교동 어린이재단으로 이동했습니다. 81년부터 후원을 시작해서 85년에 후원회장을 맡아서 40여 년간 이끌었던 곳이죠. 고별식이 이곳에서 열렸고 끝난 뒤에 파주에 있는 장지로 운구차량이 이동했습니다.

[앵커]

여의도성당에서 염수정 추기경의 집전으로 장례미사가 진행됐는데두 사람의 오랜 인연도 특별하지 않습니까?

[김헌식]

배우자인 김민자 씨가 성당을 다니셨는데요. 자주 성당에 같이 오가긴 했습니다마는 2018년에 왜 이렇게 인연이 있냐고 했을 때 바로 세례식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때 혼인갱신식도 있었고요. 이때 세례명을 받아야 되는데 어떤 것을 선택했을까라고 했을 때 프란치스코라는 세례명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어려운 사람들을 많이 도와준다는 뜻입니다. 원래는 청빈, 검소, 사랑 실천을 한 성인의 이름이 프란치스코였기 때문입니다. 또 임종 며칠 전에도 병자성사가 있었습니다. 이건 뭐냐 하면 병이 있거나 노쇠한 신자에게 구원 그리고 치유의 의미로 성사를 하는 것인데 그게 있었다는 것이죠. 그때 상황이 미루어 짐작해 보면 이미 어려운 상황이었다라는 것을 예감하고 아마 성사를 하지 않았나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2018년 인연을 가보면 최불암 배우가 그때 당시 염수정 추기경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배우가 구도자는 아니지만 그런 정신으로 살아야 되는 거 아니냐는 건데 그 이유는 대중의 사랑을 받을수록 더 큰 책임감과 그에 따라서 자신의 말과 행동이 되돌아봐야 한다는 맥락으로 최불암 배우가 말을 했다는 맥락에서 봤을 때 어떻게 평생을 살아오셨는지 알 수 있겠고요. 염 추기경은 이번에 최불암 배우에 대해서 소외된 이들에게 벗 되어준 국민 아버지이자 국민 배우였다고 마지막으로 말씀을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앵커]

많은 국민들에게 인기와 사랑을 받았지만 늘 한결같이 소박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베푸는 삶을 살아왔던 분이셨는데 팝페라 가수 임형주 씨는 장례미사에서 아베 마리아를 불렀는데 이 노래를 선택한 이유도 특별한 게 있더라고요.

[김헌식]

아베마리아 같은 경우 영광과 슬픔, 고통이 함께 아우러진 복합적인 감정을 표현하기도 하고요. 임형주 씨 본인이 3대 아베 마리아를 다 녹음했을 정도로 가장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기도 하는데. 중요한 건 최불암 배우가 마지막에 남겨진 이들에게 슬픔에 잠겨 있지 말고 웃으면서 인사하면서 보내달라 이렇게 말씀하셨거든요. 평소에 파 하는 웃음소리가 인생의 어려움이 있다고 하더라도 항상 긍정적인 자세로 임해야 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시그니처 웃음이거든요. 그런 마음자세로 장례식을 전했으면 좋겠다라고 말씀을 하신 거죠. 그래서 평온하고 아름답게 자신을 보내달라. 너무 고통스럽고 슬퍼하지 말라는 것이고 임형주 씨는 개인적으로 이모부라고 부를 정도로 두 부부를 각별하게 생각하셨다고 하니까 그런 개인적인 인연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앵커]

오늘 운구행렬은 고인이 45년 동안 인연을 이어온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본부도 찾았는데. 고인께서도 나 가거든 거기를 꼭 들러달라고 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김헌식]

물론 알려진 바로는 전원일기 33회 방영분 때문이죠. 그때 금동이라는 어린아이가 시장에서 동냥하고 있는 것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1000원짜리를 주려고 하다가 그게 능사는 아닌 것 같아서 우리 집에 가서 맛있는 밥을 먹을래, 형아들이 입던 옷도 있다. 이렇게 하니까 금동이가 따라나서는 거거든요. 당시에는 입양이라는 단어는 그렇게 눈에 띄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 그런 내용이 나오니까 시청자들이 엄청나게 반응을 보여줬거든요. 여기서 최불암 배우의 품성이 드러나는데 대본을 작가가 써준 대로 했을 뿐인데 왜 내가 찬사를 받아야 되느냐라면서 일종의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면서 그럼 내가 직접 후원에 나서겠다고 해서 81년에 어린이재단 후원에 나서신 거고 그뒤에 후원회장까지 맡아서 40여 년 동안 이끌어오신 거고요. 국내만 해당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김혜자 씨도 앞에서 보셨습니다마는 해외 아프리카 지역, 어려운 지역의 어린이들까지도 두 분이 같이 하셨거든요. 그런데 그 앞서서 하신 분이 최불암 배우예요. 그렇기 때문에 국내외를 막론하고 어린이 후원에 적극적으로 많이 나섰던 인연들이 있는 거죠.

[앵커]

드라마를 통해서 계기가 됐다고 하지만 그 인연을 오랫동안 이어온 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만큼 인연, 관계에 대해서 상당히 중요시하는 고인의 뜻을 알 수 있는데 한복 디자이너 박술녀 씨와도 오랜 인연이 있잖아요. 고인이 1년 전부터 건강이 좋지 않아서 그때부터 특별하게 고인을 위한 특별한 옷을 마련했다면서요?

[김헌식]

고인이 좋아했던 옷감의 색이라든가 세심하게 고려했다고 하는 건데. 어떻게 보면 여기에서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게 뭐냐 하면 여러 가지 인연들을 많이 소개하셨는데. 고령이시다 보니까 뭔가 욕심과 집착이 없으셨던 거라고 생각이 들어요. 그렇기 때문에 미리미리 이런 준비를 하신 거고 일정 정도 내려놓으셨다는 거고요. 그렇기 때문에 임형주 팝페라 가수한테도 나를 웃으면서 보내달라는 말씀을 하신 거고 그래서 그 파 하는 웃음소리에 담긴 것들이 실제로 미리 자신의 미래를 다 준비를 하셨다는 점, 그런 얘기를 많이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나이가 들수록 욕심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는 거고 노욕을 부린다는 말도 있는데 이런 부분을 내려놓으면서 후배들한테 많이 기회를 주려고 노력했던 부분들,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그런 것들을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앵커]

말씀하신 것처럼 고 최불암 배우는 따뜻한 아버지이자 큰 스승이었습니다. 후배들도 고인을 기리는 메시지를 남겼는데요. 후배들의 목소리 모아봤습니다. 듣고 오시죠. 고인의 따뜻한 인품 그리고 연예계에서 봤을 때 권위적이지 않은 부분, 이런 부분들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것 같아요.

[김헌식]

평소에 최불암 배우는 든든한 어른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었거든요. 그래서 앞서 말씀하신 대로 어린이 후원회장도 했는데 중요한 건 본인의 삶입니다. 외아들이었고요. 그리고 35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시거든요. 굉장히 어려운 상황 속에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셨고 연극배우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그렇게 풍족하지 않았던 거고 그런 상황 속에서 배우의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아무래도 후배들이 많이 밟혔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신성일 씨 같은 외모를 가진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그때 당시에 좌절을 많이 하셨다고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이겨내고 자신의 연기 삶을 살아오셨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후배들한테 많은 독려와 격려를 주려고 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후배들의 말을 들어보면 따뜻함, 온기, 그리고 격려 이런 단어들을 많이 하거든요. 그런 점에서 왜 이렇게 후배들을 아꼈는지 거꾸로 알 수 있다. 결국 개인적인 측면도 있지만 배우라는 일이 그렇게 녹록지 않기 때문에 끊임없이 격려하고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든든하게 정신적으로 지지해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문화예술인들의 길이 화려한 것 같지만 그 뒤안길은 굉장히 어렵거든요. 그런 점들을 아마 헤아려서 격려와 용기를 주고 싶었던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앵커]

물론 스타가 되면 화려한 모습들을 많이 볼 수 있겠지만 스타가 되기까지 뒤에서 많은 어려움들이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런 부분까지도 선배로서 어른으로서 보듬어주는 그런 모습들을 보여주셨던 건데. 앞서서도 저희가 첫 부분에서 김혜수 씨 얘기를 했지만 김혜수 씨는 장례 내내 빈소를 지키면서 맏딸을 자처했다고 하더라고요. 실제로도 최불암 씨 부부와 상당한 인연이 있죠.

[김헌식]

최불암 배우와 직접적으로 작품에 출연해서 인연이 시작된 게 아니고 배우자인 김민자 씨와 사모곡에서 모녀 역할로 김혜수 씨와 같이 연기를 하거든요. 그뒤부터 친딸처럼 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그리고 김혜수 씨 같은 경우도 청소년기에 데뷔를 했거든요. 청소년기에 데뷔했다는 것도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김혜수 씨의 집안 사정도 그렇게 녹록지 않았었거든요. 그런 점에서 대안가족처럼 지내왔던 것이고 그리고 인터넷에도 공개가 됐습니다마는 최불암 씨가 평소에 어떤 식으로 김혜수 씨한테 말을 했는지 그 내용들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한편의 문학 시처럼 인생의 멘토처럼 얘기하기 때문에 예를 들면 단순히 힘내라, 고난을 이겨내라. 이런 정도가 아니고 그 사람에 대해서 관심 있고 삶을 어떻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진솔한 내용들이 많이 들어 있더라고요. 그런 관계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 거의 맏딸처럼 상주처럼 3일 동안 있을 수밖에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고. 그런데 SNS 공개된 내용을 보면 정말 사진들이 많이 올라왔어요. 배우들뿐만 아니고 배우가 아닌 분들하고도 사진을 굉장히 많이 찍으셨더라고요. 평소에 작품을 했건 아니건 사람 만남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신 거고 그때마다 환한 인상으로 사진을 같이 찍고 또 격려도 하시고 이런 부분들이 많이 회자되어야 되지 않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앵커]

후배들도 고인을 기리는 목소리를 계속 냈었고 좋은 추억들이 있었겠지만 같은 시대를 살아온 김혜자 씨, 오지명 씨 같은 경우도 고인을 기리는 목소리를 냈거든요. 그 부분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것 같아요.

[김헌식]

최불암 배우의 특징은 뭐냐 하면 자신이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이라든지 작품은 도중에 그만두지 않는 거예요.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더 유명해지고 자기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서 중간에 하차하고 다른 작품으로 이동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작품은 오랫동안 하는 겁니다. 예를 들면 수사반장 같은 경우 18년 하셨고요. 그리고 전원일기는 22년 하셨습니다. 그리고 한국인의 밥상도 14년을 하셨습니다. 그 관계가 가족 이상으로 돈독할 수밖에 없는 거거든요. 그리고 그다음으로 생각할 것이 뭐냐 하면 최불암 배우 같은 경우 내가 스타급으로서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 안 되면 마는 게 아니고, 상황에 맞게 자신이 그 역할을 했거든요. 한국인의 밥상이 마찬가지입니다. 70대에 들어서서 80대 후반까지 14년간을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야외 출연을 한다? 굉장히 힘든 일이죠. 그렇게 활동한다는 것 자체는 같은 동년배 배우들한테도 굉장히 큰 힘이 됩니다. 대체적으로 노년배우 같으면 이순재 선생님도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마는 밀려난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 상황이거든요.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역할을 할 수 있는 부분을 최대한 노력하니까 많은 동료들한테 힘을 주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 그걸 보는 국민들도 힘을 얻죠. 저렇게까지 끝까지 저렇게 활동하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니까 그 자체가 원동력이 되는 측면이 있거든요. 그런 점에서 최불암 선생이 타계한 거는 굉장히 상실감을 줄 수밖에 없다라는 점을 거꾸로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앵커]

본인의 연기력도 마찬가지지만 성실함까지도 꾸준하게 늘 변치 않고 유지해 온 부분들이 장수의 비결이 될 텐데. 정말 최불암 씨 하면 모든 세대가 알 정도로, 최불암 배우에 대해서 예전에 인기 있었던 드라마를 보지 않았다 하더라도 최불암 배우를 어떤 프로그램에서도 볼 수 있는 친밀감도 있고 여러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큰 스타가 앞으로 또 나올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요. 어떤 부분들을 볼 수 있을까요?

[김헌식]

국민배우 하면 예전에는 전 국민이 다 인식하면 획일적인 거 아니냐, 이런 생각도 했었어요. 그게 가능한 이유는 20세기 매스미디어 시대에 텔레비전이라든지 여러 매체들이 영화 같은 경우에도 영향력을 많이 미치니까 전국민이 알아보는 그런 스타 탄생이 가능했던 거고 디지털 미디어 시대가 되니까 약간 분산돼서 각자 즐기다 보니까 국민배우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각자의 역할에 따라서 가치 부여를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전 국민이 같이 공유하고 느낄 수 있는 콘텐츠 내지는 인물이 있다는 건 사회적 통합적 관점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그분들이 앞에서 이끌어줄 때 좋은 일, 공동체적인 관점에서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거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레거시 미디어라고 합니다마는 여전히 지상파 그리고 케이블, 공중파 방송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는 점. 그래서 방송의 공공성도 감안하게 되는 그런 사안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앵커]

국민 아버지의 빈자리가 상당히 크게 느껴지겠습니다마는 그래도 우리의 마음속에 영원히 함께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김헌식 문화평론가와 함께 고 최불암 배우의 삶과 그가 남긴 의미를 돌아봤습니다. 말씀 잘 들었습니다.

YTN 오동건 (odk79829@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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