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간 아이들 지킨 ‘큰 나무’… 국민 아버지 최불암 마지막 길

김광진 기자 2026. 11. 2.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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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최불암 영결식 엄수… 여의도성당 거쳐 45년 인연 초록우산으로
“연기로 보여준 어른의 모습을 실제 삶으로”… ‘국민 아버지’ 영면
'국민 아버지' 고(故) 최불암의 장례 미사가 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성당에서 염수정 추기경의 집전으로 엄수되고 있다. /뉴스1

“이제 아이들은 맡겨 주시고 편히 쉬시라.”

2일 오전 11시 10분쯤 서울 중구 무교동 초록우산 본부 앞. 검은 정장에 흰 장갑을 낀 임직원 300여 명이 입구에 도열해 고(故) 최불암(87)을 기다렸다. 후배 배우 송일국이 고인의 영정사진을 들고 앞장섰고, 유인촌전 문체부 장관을 비롯한 동료와 후배들이 운구 행렬을 따랐다. 45년 동안 아이들 곁을 지켰던 ‘국민 아버지’의 마지막 방문이었다. 고인은 생전 세상을 떠나면 장지로 가기 전 초록우산에 꼭 들러달라는 뜻을 남겼다고 한다.

노제에서 추도사를 읽은 임직원 대표는 고인이 생전 들려주던 말을 꺼냈다. “어린나무들이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것은 주변에 큰 나무들이 든든하게 버텨주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위해 좋은 어른이 되어달라던 당부는, 이제 그 어른을 떠나보내는 인사가 됐다. “그 큰 나무는 사실 회장님이셨다. 이제 저희가 그 자리를 이어가겠다.” 직원 대표는 “어려운 환경에 놓인 아이들이 꿈을 포기하지 않고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도록 더욱 힘쓰겠다”고 했다.

'국민 아버지' 배우 고 최불암의 발인식이 엄수된 2일 배우 송일국이 든 고인의 영정이 45년 간 후원 활동을 이어온 서울 중구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을 둘러본 후 장지로 향하고 있다. 고인은 지난 1981년 초록우산과 인연을 맺은 뒤 1985년부터 전국후원회장을 맡아 국내외 취약계층 어린이들을 위한 후원 활동을 이어왔다. /뉴스1

18년간 ‘수사반장’의 박영한 반장으로, 22년간 ‘전원일기’의 양촌리 김 회장으로 안방을 지켰던 배우. 2011년부터 14년 동안은 ‘한국인의 밥상’을 찾아 전국을 다니며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를 들었다. 화면 속에서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이웃이었던 그는 화면 밖에서도 아이들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지난달 29일 밤 10시 30분 세상을 떠난 고인의 장례는 그 삶을 기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장으로 치러졌다.

염수정 추기경이 2일 서울 여의도 성당에서 열린 '故 최불암 배우 장례 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뉴스1

이날 오전 7시 40분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한 운구 행렬은 고인과 가족이 신자로 등록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성당으로 향했다. 오전 9시 염수정 추기경이 장례 미사를 집전했다. “이 세상에서 돌아가신 주님의 종인 고 최불암 프란치스코를 빛과 부활의 나라로 이끄소서.” 아내인 배우 김민자와 유족, 오랜 세월을 함께한 동료들이 고인의 안식을 빌었다.

염 추기경은 고인을 “착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아픈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던 사람”으로 기억했다. “고인은 아픈 어린이들 돌보는 일을 소명처럼 했다”며 “아픈 어린이들을 하느님께서 보내신 선물, 보물로 생각했고, 그러면서도 항상 자신을 외부로 드러내지 않고 자신에게 맡겨진 불쌍한 사람들의 착한 이웃이 되고자 했다”고 말했다.

엄숙한 성당 안에 잠시 웃음이 번지기도 했다. 염 추기경이 고인의 세례에 얽힌 일화를 소개하면서였다. 2012년 소년 수용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던 고인에게 당시 교정사목위원장이었던 김성원 신부가 왜 세례를 받지 않느냐고 물었다. 고인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나는 내 아내를 일요일 새벽 미사때마다 여의도성당 마당까지 데려다주고 있으니 반은 천주교 신자.”

그로부터 6년 뒤인 2018년, 고인은 염 추기경에게 세례를 받고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얻었다. 당시 고인은 “젊은 시절에는 알 수 없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국민의 사랑 받는 연기자는 구도자의 길을 가야한다고 깨닫게 되면서 더욱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래서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더 신경 쓰고자 한다.” 2012년 시작한 소년교도소 청소년들과의 인연도 14년 동안 이어졌다. 연극과 뮤지컬을 가르치며 이들이 다시 사회로 돌아갈 길을 함께 찾았다.

이어 추도사에 나선 황영기 초록우산 회장은 고인을 거듭 ‘회장님’이라고 불렀다. “국민께 받은 사랑을 다시 우리 사회에 나누어 주신 분”이라며 “연기로 보여준 어른의 모습을 실제 삶으로 이어갔다”고 했다. 고인이 초록우산과 인연을 맺은 계기는 1981년 ‘전원일기’의 한 장면이었다. 김 회장이 금동이를 가족으로 받아들이자 시청자들의 칭찬 전화와 편지가 쏟아졌다. 작가가 쓴 이야기를 연기했을 뿐인데 자신이 좋은 일을 한 것처럼 칭찬받는 게 부담스러웠던 배우는, 실제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찾아 나섰다.

1985년에는 초록우산 전국후원회장을 맡았다. 그렇게 41년 동안 국내외 아동복지 현장을 누볐다. 황 회장은 고인이 평소 들려주던 말을 전했다. “어린이에게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이 어른의 역할이다. 어린이들을 또 하나의 나로 보아야 한다.” 드라마 속에서 한 아이를 품었던 아버지는 현실에서 수많은 아이들이 기댈 어른이 됐다.

2일 서울 여의도 성당에서 故 최불암 배우의 장례 미사가 거행된 가운데 팝페라 테너 임형주가 '아베 마리아'를 부르고 있다. /뉴시스

미사 말미에는 팝페라 테너 임형주가 블라디미르 바빌로프의 ‘아베 마리아’를 불렀다. 평소 고인을 ‘이모부’라고 부르던 그가 노래로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1시간의 미사가 끝나고 운구 행렬이 움직이자, 차분히 자리를 지키던 유족과 동료들도 눈물을 흘렸다. 김혜수와 아나운서 김경란은 고인의 아내 김민자를 끌어안고 울었다. 신현준과 정준호는 고인이 실린 운구차 앞에서 연신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차량을 쓰다듬으며 눈물을 흘리는 후배들의 손길이 마지막 길에 머물렀다.

이날 미사에는 강석우·김혜수·송일국·신현준·유인촌·정준호 등 동료 배우들과 김경란, 가수 앤디, 코미디언 이용식,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이 함께했다. 고인의 장례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장으로 치러졌다. 발인 이후 오전 9시 여의도성당에서 염수정 추기경의 주례로 장례 미사가 진행됐고, 노제를 마친 뒤 장지인 경기도 파주시 동화경모공원으로 옮겨져 영면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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