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심판’ 와인 그 맛과 향 그대로…[김동식의 와인 랩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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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와인 소비자들은 독특한 성향을 가지고 있어요. 주변 여건이 다소 열악하지만 배우려는 열정만큼은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 못지않습니다.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 보면 안티노리 가문 스타일과 비슷하죠." 그중 스택스 립 와인 셀라스는 1976년 '파리의 심판' 레드 와인 부문에서 1위을 차지하면서 미국 와인의 저력을 전 세계에 알린 전설적인 와이너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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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식의 와인 랩소디 <81>

”한국 와인 소비자들은 독특한 성향을 가지고 있어요. 주변 여건이 다소 열악하지만 배우려는 열정만큼은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 못지않습니다.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 보면 안티노리 가문 스타일과 비슷하죠.“
마르케제 안티노리 가문 소유의 미국 와이너리를 총괄하는 후안 무뇨스오카(Juan Muñoz-Oca)가 한국을 찾았다. 지난 10월 26일 저녁 서울 강남 청담동 소재 르몽뒤뱅 다이닝에서 ‘파리의 심판’ 50주년을 기념해 테이스팅 행사를 진행한 것. 솔직·담백한 와인 이야기를 3시간 가까이 나누면서 그의 ‘영업 멘트’는 단 한마디도 발견하지 못했다. ‘와인 철학’의 진심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26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이탈리아의 와인 명가, 안티노리는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주 나파 밸리의 ‘스택스 립 와인 셀라스’, ‘안티노리 나파 밸리’ 외에도 워싱턴주 레드 마운틴에서 ‘콜 솔라레’ 와이너리를 단독으로 소유하고 있다. 그중 스택스 립 와인 셀라스는 1976년 ‘파리의 심판’ 레드 와인 부문에서 1위을 차지하면서 미국 와인의 저력을 전 세계에 알린 전설적인 와이너리다.
이번 테이스팅 행사에서는 ‘50년 전 영광’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S.L.V. 카베르네 소비뇽을 포함해 모두 5종의 와인이 리스트에 올랐다. 본지에서 이미 소개한 카리아 샤도네이와 아르테미스 카베르네 소비뇽을 제외한 3종 와인의 맛과 향을 살펴본다.(아르테미스로 ‘파리의 심판’ 즐기기, 제1585호, 2026년 4월 15~21일 자)
가장 먼저 마신 와인은 '아베타 소비뇽 블랑(2024년)’. 첫인상은 강한 구스베리 향이었다. 나파 밸리 화이트에서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구스베리 향은 더 짙고 깊게 나타났다. 이어 한 모금 넘기자 생동감 넘치는 산미를 단박에 잡을 수 있었다. 과실 풍미와 미네랄리티를 잘 표현한 와인이다.
후안은 ”그동안 기계적으로 진행하던 젖산 발효 방식을 바꿨다. 2023년부터는 날씨와 강수량 변화 등 상황에 맞춰 횟수를 결정한다“며 “와인의 품질을 좌우하는 포도 생장 기간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일조량 부족 등 기상 악화 시에는 캐노피 관리(수관 조절) 등을 통해 문제점을 보완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페이(FAY) 카베르네 소비뇽으로 넘어갔다. 깊고 선명한 루비 컬러에 상큼한 산미가 돋보이는 레드 와인이다. 2020년 빈티지임에도 달콤한 아로마와 풍부한 과실미가 가득했다. 직관적인 스타일이 강해 디캔팅 없이 바로 마셔도 별다른 부담이 즐길 수 있다.
끝으로 오늘의 주인공 S.L.V. 카베르네 소비뇽(2023년)이 등장했다. ‘파리의 심판’ 50주년 기념 빈티지 에디션이라 더욱 각별하게 다가왔다. 후안은 “S.L.V.는 탄탄한 구조감에 중점을 둔 와인이다. 깊고 무직한 느낌을 주면서도 유연한 질감을 함께 갖췄다”고 말했다. 척박한 화산재 토양이 이 와인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결정지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S.L.V.는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잘 익은 검은 자두와 무화과 향을 시작으로 가죽과 시가 박스 등 다채로운 아로마를 뽐내며 반세기 전 그 맛과 향을 그대로 재현하는 듯했다.
후안은 “좋은 와인을 양조하기 위해서는 토양이나 기후보다 사람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철학과 애정을 가지고 와인을 만들었는지 살펴보라는 의미다. 반세기가 지나도 변함없는 그들의 ‘양조 철학’이 와인 한 잔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듯하다.
김동식 와인 칼럼니스트·
국제와인전문가(WSET Level 3)
juju4333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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