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동양철학 오행-윤이상 음악 스며든 전시, 낭만을 찾았다”

김민 기자 2026. 11. 2. 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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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가 양혜규(55)와의 인터뷰는 까다롭기로 악명 높다.

지금까지 이곳에서 전시를 연 한국 작가도 이우환뿐이다.

양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미술관 역사상 처음으로 두 개 층을 가로지르는 대형 신작 4점을 선보였다. 갑자기 주어진 자유 앞에 어리둥절해진 작가는 다시 원점에서 전시를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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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 성지’ 美뉴욕 ‘디아 비컨’서 개인전 여는 양혜규
2028년 6월까지 ‘通(Through)’展… 이우환 이후 한국인 두번째 개인전
2개층 가로지르는 대형 신작 4점… 블라인드-짚풀 활용 작품 등 선보여
“미술관 공간-빛 물려 독특한 시각”
작품 ‘낙하장落下場Fallen Field’와 함께 서 있는 양혜규 작가. 낙하장은 검은색 플라스틱 끈을 ‘용마름’이라 불리는 전통 짚풀 공예의 직조 방식으로 엮어 제작했다. 국제갤러리 제공
미술가 양혜규(55)와의 인터뷰는 까다롭기로 악명 높다. ‘작가가 상대방이 얼마나 준비가 됐는지를 시험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스스로도 “통제 광(control freak)”임을 인정하는 그는 질문이 조금만 모호해도 단칼에 쳐낸다. 맥락이 맞는 대화에만 거침없이 몰입한다.

지난달 26일 한국을 찾은 그는 ‘현대 미술의 성지’라 불리는 미국 뉴욕주의 현대미술관 ‘디아 비컨(Dia Beacon)’에서 전시를 제안했을 때 “기쁨보다 의구심이 들었다”고 한다. 이 작가는 세계적인 권위를 지닌 미술관도 테스트하는 걸까. 지난달 10일(현지 시간) 개막한 전시 ‘양혜규: 통通(Through)’은 2028년 6월 12일까지 무려 1년 8개월에 걸쳐 이어진다.

● “디아, 나랑 무슨 상관?”

미국 뉴욕주에 있는 현대미술관 디아 비컨에 전시된 ‘조석장潮汐場Tidal Field’. 국제갤러리 제공
디아 비컨은 미술가라면 누구나 개인전을 열길 꿈꾸는 공간. 솔 르윗이나 루이스 부르주아, 리처드 세라 등 전시 작가의 면면을 봐도 미술관의 제안을 고민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양 작가는 달랐다.

“너무나 훌륭하지만, 특정 미술과 연결된 곳이라 생각했어요. 유럽에서 살아남은 아시아 여성 작가인 나와 무슨 상관인가 의심했죠. 맥락이 완벽히 이해되지 않으면 일을 못 해서…. 제 성격이 지독하거든요.”

실제로 디아 비컨을 운영하는 ‘디아 예술재단’은 주로 1960∼70년대 미 미니멀리즘과 대지 미술을 보존·지원하기로 유명하다. 이에 미술계에서도 “올드 머니(Old Money)의 유산을 지키는 곳”이란 얘기가 나온다. 지금까지 이곳에서 전시를 연 한국 작가도 이우환뿐이다.

양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미술관 역사상 처음으로 두 개 층을 가로지르는 대형 신작 4점을 선보였다. 하지만 여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첫 미팅 때 ‘솔 르윗에 관한 연작에 관심이 있겠지’ 하고 준비해 갔지만, 미술관 반응은 의외로 “좀 더 생각해 보라. 하고 싶을 때, 원하는 공간에서 전시하면 된다”였다고. 갑자기 주어진 자유 앞에 어리둥절해진 작가는 다시 원점에서 전시를 준비했다.

실마리는 오랜 시간 이어진 교류와 방문에서 나왔다. 디아 비컨은 언덕에 자리해 1층도, 지하 전시장도 모두 밖으로 나가면 지상으로 이어진다. 드넓은 자연 속에 작품을 설치하는 대지 미술처럼 ‘땅 읽기’를 한 작가는 미술관 두 개 층을 가로지르는 전시를 구상했다. 이 구상은 전시 제목 ‘통(通)’으로 이어졌다. 제시카 모건 관장은 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디아는 작가들에게 미술관의 공간과 규모, 빛과 맞물린 작품을 요청해 왔습니다. 이러한 역사를 양혜규는 자신만의 시각으로 재구성했습니다.”

● 윤이상과 동양 철학

‘축류軸流Axial Flow’. 국제갤러리 제공
양 작가는 이번 전시에 동양 철학에 대한 시각도 담았다. 전시장의 동서남북과 오행(五行)을 교차시켰고, 지상층엔 한 변이 4m인 ‘소리장場Sonic Field’가 등장한다. 2만여 개의 방울을 금속 링으로 엮어 넓게 펼쳤고, 그 아래 전구 빛이 반짝인다.

그 뒤로 블라인드를 이용한 ‘조석장潮汐場Tidal Field’, 짚풀 공예 방식을 활용한 ‘낙하장落下場Fallen Field’가 보인다. 지하층엔 금속 루버와 조명이 움직이는 ‘축류軸流Axial Flow’가 있다. 또 작곡가 윤이상(1917∼1995)이 고구려 강서대묘 고분벽화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현악 4중주 ‘영상(Images)’을 네 작품 모두에 스며들게 했다.

“윤이상은 양혜규의 디아스포라적 논리를 대신 전달하는 존재로 작품에 등장합니다. 양혜규는 작품에 음악성과 운동성을 더해, 한 편의 연극 속으로 관객을 끌어들입니다.”(전시 큐레이터 조던 카터)

이번 전시를 통해 양 작가는 “낭만을 찾았다”고 했다. 디아 비컨엔 펜스도, 작품 설명 레이블도, 인공조명도 없다. 오직 자연의 빛과 시간, 작품과의 교감만 존재한다. 요즘은 관객에 대한 배려와 소통도 중요한 가치지만, 과해지면 예술에 대한 타협이 될 수 있다. 타협 없이 본질을 지키는 공간과의 치열한 협업에서, 작가와 큐레이터가 밤새 예술을 흠모하고 고백하던 ‘로맨스’를 되찾았단 얘기다. 양 작가는 왜 그렇게 모든 걸 힘들게 따지며 작업하는 걸까.

“누가 예술이 쉽다고 했나요? 쉽게 갈 수 있는 거면 시작부터 잘못된 거죠.”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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