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조선, 美군함 만든다… 해군 상륙함 첫 수주

한예나 기자 2026. 11. 2.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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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미국 필리조선소에서 건조
‘마스가 프로젝트’ 군함 1호 성과
한화필리조선소가 건조할 예정인 미 해군 중형상륙함(LSM)의 예상 모습. 미 해군은 네덜란드 기업인 다멘(Damen)이 개발한 설계를 기반으로 중형상륙함을 건조할 계획이다. /다멘

한국 기업이 사상 처음으로 미 해군의 군함 건조 사업을 따냈다. 한화그룹이 2024년 인수한 미국 필라델피아의 한화 필리조선소가 미 해군의 중형 상륙함 1척을 만들게 된 것이다. 상륙함은 최대 100여 명의 해병대 병력과 군용 차량 등을 적진이 있는 해안으로 실어 나르는 역할을 하는 함정으로 실제 작전에 참여하는 군함이다. 필리조선소 인수를 통해 한화가 미국 조선업에 진출한 지 2년 만의 성과이자, 작년 7월 출범한 한·미 조선 협력 사업인 ‘마스가(MASGA) 프로젝트’의 1호 군함 수주다.

한화그룹의 미국 내 계열사 한화디펜스USA는 지난달 29일(현지 시각) 미 선박 건조 관리 업체 토트서비스와 2억6900만달러(약 3575억원) 규모 중형 상륙함(LSM·Landing Ship Medium) 건조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토트서비스는 미 해군으로부터 선박 건조 업체 선정과 사업 관리 등 권한을 위임받은 회사다. 이번 계약에는 미 해군이 추가 건조를 요청할 경우 한화에 최대 3척을 더 맡길 수 있다는 조건도 달려 추가 수주 기대감도 적잖다.

한화가 미국 군함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현지 투자를 결정한 전략이 성과를 냈다는 평가도 많다. 미국은 1960년대 제정된 번스·톨레프슨 수정법에 따라 미 해군 함정과 주요 선체 구성품의 해외 건조를 제한하고 있다. 현지 투자는 이를 우회하기 위한 것이었다. 미국 정부 역시 중국과 해군력 경쟁을 벌이며 군함 수를 대거 늘리고 있는데, 미국 현지 투자를 한 외국 기업과 적극 협력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이번 군함 수주로 한국 기업들의 미국 추가 진출이 활발해지며 마스가 프로젝트가 다시 활기를 띨 가능성도 커졌다. 세계 1위 조선 기업인 HD현대 역시 지난달 미국의 대형 건설사 키윗과 합작해 현지 조선소 건립을 추진한다고 발표하며, 미국 사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1400조원 美군함 시장 철벽 뚫었다… 필리조선소 인수 2년만에 성과

조선업계에서는 이번 중형 상륙함 수주를 미국 진출을 노리는 K조선의 중요한 ‘첫 단추’로 보고 있다. 작년 7월 마스가 프로젝트 출범 후에도 우리 조선업계는 미국 군함 시장에서 MRO(유지·보수·정비)와 연구용 선박 등을 수주하는 데 머물렀다. 이번 군함 수주를 계기로 실제 미 군함 건조 실적이 생기면서, 한 차원 높은 협력을 기대해볼 수 있게 됐다는 평가다.

군함은 선체 구조와 내부 설비에 해군의 작전 방식과 군사적 요구 사항이 반영되는 만큼 건조 업체의 기술력과 신뢰성이 중요하다. 특히 실제 상륙 작전에 투입되는 군함의 건조를 맡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첫 군함의 품질과 해군 수요에 따라 3척 추가 발주가 이뤄질 수 있어 한화 안팎의 기대도 크다.

한화 “필리조선소 생산력 年20척까지 확대” 작년 8월 미국 필라델피아의 한화 필리조선소에 미국 해양청이 발주한 국가 안보 다목적선(NSMV) ‘스테이트 오브 메인’호가 정박해 있는 모습. 당시 이 배는 한화가 이 조선소를 인수한 후 처음 완성한 선박이었다. 한화는 앞으로 최대 50억달러를 투자해 연간 1.5척 수준인 필리조선소 건조 능력을 최대 20척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뉴시스

◇미국 군함 시장 진출을 위한 ‘첫 단추’

한화가 이번에 수주한 상륙함은 길이 100m, 폭 16m, 연료나 각종 비품 등을 제외한 경하중량이 약 2687t(톤)이다. 최대 약 7400㎞를 항해할 수 있는 배다. 미국은 그동안 대규모 병력을 한꺼번에 투입하는 대형 상륙함을 중심으로 전술을 운용해 왔다. 하지만 중국의 군사력 확장으로 인도·태평양 지역의 긴장이 높아지자 섬이 많고 수심이 얕은 해역에서도 소규모 병력을 분산 투입할 수 있는 중형 상륙함 확보에 나섰다. 2030년까지 중형 상륙함 35척을 새로 투입하는 게 목표다. 이번에 처음 8척을 발주했는데 미국 볼린저 조선소에 1척, 이탈리아 핀칸티에리가 미국에서 운영하는 마리네트마린 조선소에 4척, 그리고 한화필리조선소에 1척을 맡긴 것이다. 나머지 2척은 계약 진행 중이다. 최근 해군력 증강에 나서면서 미국 군함 조선소의 독(dock·선박 건조장)이 대부분 포화 상태인 데다, 인력 이탈 등으로 생산력이 떨어져 있는 점을 감안해 상선을 만들던 조선소에도 건조 물량을 나눠주면서, 한화 필리조선소도 수주가 가능했다.

이번 수주는 한화의 과감한 미국 현지​화 전략의 성공 사례이기도 하다. 한화그룹은 2024년 12월 필리조선소를 약 1억달러(약 1340억원)에 인수하고, 이후 약 3억5000만달러(약 4690억원)를 투입해 노후 설비를 교체하고 생산 시설을 현대화했다. 현지 고용 인원도 약 1800명에서 2300명으로 늘렸다. 미국 군함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선제 투자였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보수적인 미 해군이 한국 기업이 소유한 조선소에는 군함을 발주하지 않을 것이란 회의적인 시각도 많았다.

하지만 지난해 1월 출범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미국 조선업 재건과 해군력 강화를 핵심 과제로 내세우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미국 내 조선소를 확보해 현지 생산 기반을 갖춘 한화가 잇따라 사업 기회를 잡은 것이다. 예를 들어 한화필리조선소는 지난 3월 미 해군 차세대 군수 지원함(NGLS) 개념 설계 사업에 참여했고, 7월에는 미사일 비행 시험 데이터를 수집하는 해상 계측선(MRIV) 건조 사업자로 선정됐다. 군수지원함은 해상에서 작전 중인 군함에 연료와 물자 등을 공급하는 선박이고, 해상계측선은 미사일의 비행 궤적과 성능을 측정하는 비전투 지원 선박이다. 이번에 실제 군함까지 사업 영역을 넓힌 것이다.

필리조선소가 위치한 필라델피아도 반기고 있다. 필라델피아 지역 유력지인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는 지난달 30일 “1995년 필라델피아 해군조선소가 문을 닫은 이후 31년 만에 이 지역에서 군함 건조가 재개된다”고 보도했다. 필리조선소가 있는 펜실베이니아주의 데이브 맥코믹 연방 상원의원은 “한화의 지속적인 필라델피아 투자는 미국 노동자와 산업에 투자했을 때 어떤 성과를 낼 수 있는지 보여준다”며 “펜실베이니아주는 미국 조선업 재건을 주도하며 일자리와 제조업을 되살리고 있다”고 했다.

◇마스가 속도나나

조선업계와 정부 안팎에선 한화의 이번 수주로 마스가가 다시 활기를 찾을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이번 계약은 지난해 한미 관세 협상에서 합의한 1500억달러 규모의 조선 협력 금융 패키지와는 별도로 추진된 미 해군 사업이다. 하지만 현지 거점을 기반으로 한 미국 군함 시장 진출이 현실로 확인된 만큼, 협력 확대에 속도가 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우선 한화만 해도 후속 수주에 대비해 필리조선소의 생산 능력도 대폭 늘릴 계획이다. 앞으로 최대 50억달러를 투자해 연간 1.5척 수준인 건조 능력을 최대 20척까지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25일 “한화가 내년 말까지 4억달러를 추가 투자하고, 2028년까지 전투함 건조에 필요한 시설 인증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 조선소에서 사용하는 자동 용접 설비와 협동 로봇 등도 미국에 도입할 예정이다. 최근에는 현지 당국으로부터 약 19만㎡의 부지 추가 임대 승인을 받아 조선소 확장 공간도 확보했다.

최근 미국 현지 조선소 건립에 나선 HD현대에도 긍정적인 선례가 될 전망이다. HD현대는 지난달 미국 대형 인프라 건설업체 키윗과 합작법인 설립을 발표하고, 2029년 가동을 목표로 현지 조선소 건립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한화가 기존 조선소를 인수해 먼저 시장에 진입했다면 HD현대는 아예 조선소를 새로 지어 미국 군함 시장을 공략한다는 전략이다. 정부 역시 지난 7월 미국 워싱턴DC에 문을 연 한미 조선협력센터를 기반으로, 중간선거 이후 사업 속도를 높일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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