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세상]편향도 이기는 진짜 변화
내일 투표하겠다는 미국인의 표정을 뉴스로 보다가, 문득 모르도르의 검은 문 앞에서 마지막 전투를 기다리는 호빗들의 비장한 얼굴을 떠올린다. 이 중간계의 전란은 도대체 언제 끝날까. 이스라엘 총선은 교착상태에 빠졌고, 브라질 대선도 뒤끝이 세게 남아 있다. 2024년 미국 유권자는 대통령과 상·하원을 모두 트럼프의 정당에 맡기는 운명적인 선택을 단행했다. 그리고 내일 미국 시민은 대반전의 서막을 열어젖힐지도 모른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미국 민주당은 일단 하원을 되찾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상원에서도 공화당 의석 4곳을 가져오면 다수당이 될 수 있다. 노스캐롤라이나, 오하이오, 텍사스, 메인, 알래스카, 그리고 캔자스 가운데에서 4석만 뒤집으면, 트럼프가 의회를 동원해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어진다. 중간계 바람의 방향이 바뀐다.
만약 여론조사 결과를 믿을 수만 있다면 그렇다는 뜻이다. 우리는 미국의 여론조사를 의심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일단 여론조사에 대한 응답률이 경향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1990년대 보통 2박3일에 걸쳐 조사하면 30%를 넘었던 응답률은 2010년대 한 자리대로 주저앉았고, 이제는 5% 이내이거나 심지어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조사들도 인용되고 있다.
응답률이 낮더라도, 투표율과 지지율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들을 함께 측정해서 예상득표율을 보정할 수 있다. 그래서 낮은 응답률을 기록한 조사라도 주의 깊게 분석을 덧붙여 보정치를 제시한다. 그러나 보정치를 구할 때 필요한 변수마저도 제대로 측정했는지 알 수 없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무응답자 편향을 걸러내기 위해 필요한 변수들도 애초에 같은 편향 요인에 의해 오염됐을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되면, 아무리 조사 기간을 늘리고 ‘다시 걸기’를 해서 응답률을 높이더라도 편향을 막을 수 없다.
2020년 미국 대선에서 여론조사는 최악의 편향을 기록했다. 당시 트럼프 지지자들은 여론조사에 응답하기를 회피했고, 따라서 대선은 물론 상원 선거에서도 여론조사는 공화당 후보를 4~5%점 과소평가했다. 대표적으로, 2020년 메인주 상원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기디언 후보는 지속해서 2%점 이상 앞선다는 결과를 받았지만, 실제는 공화당 콜린스 의원이 8%점 차이로 자리를 지켰다.
이렇듯 공화당 후보를 과소평가하는 편향은 2024년 미국 대선에서도 규모만 약간 줄었을 뿐 그대로 나타났다. 미국여론조사협회(AAPOR)의 2024년 대선평가 보고서는 ‘공화당 우세 지역에서 공화당을 지지하는 유권자’와 히스패닉 유권자, 그리고 직전 선거에서 투표하지 않은 젊은 유권자의 표심을 파악하기 어렵다고 고백했다.
지금 텍사스를 보자. 이 주는 전통적인 공화당 주다. 1988년 이래로 민주당이 상원의원을 배출한 적이 없다. 그런데 요즘 여론조사는 일관되게 민주당 탤러리코 상원의원 후보가 3~5%점 앞선다고 한다. 트럼프에 환멸을 느낀 텍사스 유권자들이 대오각성이라도 했을까 싶지만, 2020년 또는 2024년에 봤던 편향을 감안하면, 그는 지금 앞서고 있는 게 아닐 수 있다. 아니면, 이번에는 진정한 변화가 일고 있을 수 있다. 이제 내일이면 텍사스 유권자가 과연 38년 만에 공화당 지지를 거두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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