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김정은의 단둥행과 북·미 정상회담

이희옥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2026. 11. 1. 20:0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난 10월24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신압록강대교를 통해 중국 국경도시 단둥을 찾자, 방문 시점과 방문단 구성, 방문지 선정 및 중국의 반응을 두고 분분한 해석이 잇따랐다. 공식적으로는 북·중 전통우호관계, 정치적 상호 신뢰, 경제·무역 협력, 신압록강대교 개통의 의미를 강조한 행보였다. 실제로 김 위원장의 방문은 지난해 양국 정상의 상호 방문 이후 국경 통상구 전면 개방, 단체관광 재개, 인문교류 확대 등 다양한 협력을 제도화하려는 신호로 읽을 수 있다.

특히 북한의 경제 도약을 위해서는 산업 공급망으로 얽혀 있는 중국과의 협력이 절실하다는 점에서 신압록강대교 개통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평양과 지방의 연결, 관광산업 활성화, 대중교통 현대화를 위해서는 유엔 안보리 제재에 묶인 버스와 상용차 등 교통 인프라 정비가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이 버스와 트럭을 생산하는 자동차·버스 공장을 방문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특별한 현안과 의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김 위원장이 핵심 외교 참모를 대거 동반해 방중을 선택한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숨어 있다. 중국은 미·중관계와 한반도 정책에 깊이 관여해온 왕후닝 정치협상회의 주석이 직접 나와 김 위원장을 맞이했다. 이 자리에는 왕이 정치국원 겸 외교부장, ‘미국통’ 마자오쉬 외교부 부부장, 당 대외연락부장도 동행했다. 북한도 외교정책 결정의 핵심 인물인 김성남 국제비서와 최선희 정치국원 겸 외무상, 김여정 당 부장이 김 위원장 방중에 참여했으며, 특히 최선희 외무상이 왕이 부장과 긴밀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실제로 양측은 이번 회동에서 평화롭고 안정적인 대외환경을 조성하기로 했다.

이러한 정황을 종합해보면, 북·중 양국은 이번 방중을 계기로 미·중 정상회담 내용을 공유하고 11월 중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 전후로 추진될 가능성이 있는 북·미 정상회담 등에 대한 의견도 교환했을 개연성이 크다. 김 위원장의 방중과 그 동선을 정확하게 짚어낸 우리 정보당국도 그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물론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되려면 의전·경호 협의 과정에서 구체적 징후가 노출되기 마련이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정황은 확인되지 않는다. 더구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APEC 참석으로 미·중·러 정상회담을 통한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가능성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다자 무대 내 북·미 정상회담 동력은 약화될 수 있다. 그러나 핵보유국을 선언한 북한이 미국을 불러들이는 극적 효과를 노리거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평화 서사를 구축하려는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물린다면, 장소와 일정은 물론 ‘정식회담’이 아닌 ‘간이 회동’ 방식으로라도 전격 성사될 수 있다.

북·미 정상회담은 한반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만능의 열쇠가 아니다. 다만 한반도의 판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도 이 흐름에 적극적으로 올라타야 한다. 초조감을 버리되 한반도 평화공존의 정책 방향을 명료하게 설정하고 기회의 창이 열릴 때 즉시 실행할 수 있는 정책 패키지도 다듬어두어야 한다. 보다 급한 문제는 현실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라는 경직된 프레임과 한·미 연합군사훈련에 대한 경로 의존적 태도를 성찰하고, 미국이 조건을 수시로 바꾸더라도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에 대한 의지도 관철해야 한다.

아울러 국제 무대도 넓게 쓸 수 있어야 한다. 북한이 북·중·러 구도를 활용해 대미 정책에 적용하는 ‘복합 헤징(hedging)’을 시도하는 만큼 우리도 한·미관계 발전은 물론 중국과 전략 소통을 심화해야 한다. 전쟁 중에도 베링해 해저터널 등 협력 프로젝트를 모색하는 미·러관계도 급변하는 상황에서 한·러관계도 조속히 물꼬를 터야 할 때다.

이러한 전환적 국면에서 최근 주요 20개국(G20) 회의를 계기로 열린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3국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유엔 안보리 결의를 전면적으로 이행하고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며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에 익숙하게 합의한 것은 실망스럽다. 이는 북·미 정상회담에 전개될 남북관계와 한·중관계를 전략적으로 고려한 결과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전 정부 외교정책인 글로벌 중추국가, 가치외교, 한·미·일 안보협력의 고도화라는 그림자도 어른거린다. 실용외교는 국익을 중심에 놓고 있다. 때로는 판을 반전시키는 담대한 결기가 있어야 국익을 향해 한 걸음 진전할 수도 있다.

이희옥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이희옥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