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감악산 바람의 언덕에서

심억수 시인 2026. 11. 1.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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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엿보기
심억수 시인

감악산 바람의 언덕을 향해 가는 차창밖에 비가 내린다. 촉촉하게 젖는 초목이 저마다 다른 빛깔로 세상을 물들인다. 가늘게 내리는 빗줄기 사이로 스치는 풍경이 새삼스럽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안개가 온몸을 감싼다. 감악산은 짙은 안개를 품고 있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듯한 신비로운 분위기다. 희미하게 보이는 소나무와 구절초 꽃이 마치 자연이 그려놓은 거대한 수묵화 같다.
안개비를 맞으며 탐방로를 걷는다. 가을비에 젖은 하얗고 작은 구절초 꽃송이가 처연하다. 하얀 구절초꽃 순백의 몸짓에 수많은 기억과 감정이 흘러간다. 복잡하고 빠르게 흘러가는 일상에서 놓치고 살았던 것들을 다시금 발견하는 시간이다. 
안개 속에 숨어 있는 감악산 풍경들을 찬찬히 음미한다. 비 온 뒤의 짙은 안개와 맑은 공기가 어우러져 내 마음 깊은 곳까지 스며든다. 잠시 멈춰 나를 돌아본다. 지나쳐 버린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껴진다. 가족과 보낸 따뜻한 기억과 진정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 그리고 무심코 흘려보냈던 자연의 미소까지도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바람이 얼굴을 어루만진다. 지나온 삶의 그리움이 바람에 흩어진다. 상념을 뒤로하고 걸음을 옮긴다. 꽃향기를 따라 걸어가니 눈앞에 보랏빛 아스타 국화 단지가 펼쳐진다. 보랏빛 작은 꽃잎 하나하나가 모여 장관을 이룬다. 보랏빛 아스타 꽃말이 '지혜'와 '품격'이란다. 보랏빛 아스타 국화가 더욱 뜻깊게 다가온다. 
구절초의 하얀빛과 아스타의 보랏빛이 대조를 이룬다. 구절초의 순백과 아스타의 보랏빛이 서로를 감싸안으며 이뤄내는 조화는 내면의 균형과도 닮았다. 그 균형 속에서 나는 삶의 여러 색깔과 감정을 떠올린다. 
세상에는 화려함만이 아니라 순수함과 절제된 아름다움도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어우러져야 진정한 '품격'이 완성된다는 생각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다. 때로는 멈춰 서서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을 갖는 여유가 필요하다. 지혜롭게 자신의 삶을 가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겉으로 번지르르한 성공이나 명예보다는 꾸준히 내면을 아름답게 가꿔가는 삶이 품격 있는 인생을 만든다는 것임을 새삼 깨닫는다.
구절초와 아스타 국화를 보며 깨우친 것은 사물의 본질을 보는 눈이다. 화려한 겉모습에 현혹되지 않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내면의 가치를 살피는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걸어온 삶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나는 가을비 내린 감악산 바람의 언덕에서 다시금 삶의 본질을 생각해 보았다. 삶은 늘 변한다. 삶은 그 변화 속에서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그 모든 순간이 쌓여 나의 이야기를 그리고 나만의 품격을 완성해 가는 것이다. 삶의 길을 걸어가는 동안 비바람 안개 속에서도 향기를 잃지 않는 꽃을 기억할 것이다. 그 꽃처럼 꾸준히 빛나는 나의 내면을 가꾸어 가야겠다.
바람의 언덕에서 바라본 감악산 자락은 여전히 안개에 싸여 있다. 안개 속 산자락은 수많은 능선을 감추고 있다. 그 너머로는 아직 만나지 못한 삶의 길이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내 마음 또한 그 안개 속에서 서서히 나만의 길을 찾아가고 있다. 
나는 바람에 흔들리는 꽃처럼 또 다른 계절을 향해 갈 것이다. 그러나 나는 흔들림 없이 나의 길을 만들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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