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회담 ‘희망 고문’에 540억 달러 청구서만 받아 든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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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3일 유엔 총회에 참석한 이재명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만났다.
북·미회담은 한국의 희망 사항이다.
미국은 북·미회담이라는 희망을 내걸고 한국을 압박하면서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있다.
북·미회담 희망에 끌려가는 대미 외교한국 정부는 미국의 발표에 우선 "'확정'이 아니"라며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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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 정상회담 의제 대부분이 북·미회담
● 핵잠 연료·전작권 등 韓 필요 내용, 美 이행 발표 없어
● 북·미회담에 매몰된 韓 외교 아킬레스건
● 美, 北 적대 정책 포기 안 하면 북·미회담 가능성 희박
● 실무 회담 없인 정상회담 어려워…북·미 관계보다 韓 실속 챙겨야

한국의 국익 관점에서 보면 '과연 북·미회담 개최가 양국 간에 산적한 현안보다 더 중요한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북·미회담이 열린다면 북한 비핵화의 돌파구를 마련하는 의미에선 가치가 있겠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한국 국익을 위해 미국과 협상해야 할 현안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북·미회담은 한국의 희망 사항이다. '감이 나무에서 떨어질 때까지 입 벌리고 기다리는' 식으로 북·미회담을 마냥 기대할 수 없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그저 북·미회담을 기다리며 미중 경쟁 시대에 동맹인 미국과의 불협화음을 자초하고 있다.
북·미회담에 매몰된 우리 외교의 아킬레스건
현재 개최 가능성이 희박한 북·미회담의 늪에서 한국 정부는 허우적대는 형국이다. 미국은 북·미회담이라는 희망을 내걸고 한국을 압박하면서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있다. 최근에 미국이 발표한 한국의 투자 '약속'만 봐도 그렇다. 9월 20일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텍사스 가스발전소와 미국 내 대형 원전 2기,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가스관, '원유 회수 증진(EOR)' 사업 등에 투자할 것"이라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튿날 그는 X에 "한국이 540억 달러 규모의 LNG 사업에 '함께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이 사업의 예상 투자 규모는 445억~545억 달러다. 미국이 발표한 우리의 540억 달러 규모는 전액 투자를 의미한다.더 큰 문제는 한국의 투자가 가스관에만 국한된 점이다. 통상적으로 가스관 건설에 투자하면 싼값에 장기적 가스 공급을 보장받는다. 중국과 러시아, 일본의 러-중 지선 가스관이 대표적 사례다. 이들은 평균 20~30년, 심지어 50년 가스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그래야 수지타산이 맞다. 그만큼 가스관으로만 투자 이익을 회수하는 일은 오래 걸린다.
그런데 발표된 한국의 대미 가스관 투자사업 계획에는 장기 공급을 보장하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다. 알래스카에선 현재 극소량의 가스만 생산한다. 앞으로 생산 증대도 불확실하다. 수많은 규제 법안이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으로 이를 완화하려 했지만 환경보호 단체가 소송하며 막고 있다. 공화당이 개정 법안을 의회에 상정했지만 계류돼 있다. 11월 미국 중간선거 결과를 낙관하기 어려워 법 개정도 요원해 보인다.
한편 한국의 국익과 직결된 핵잠수함 연료 관련 협력이나 전시작전권에 관해서는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는 보도만 이어질 뿐 구체적 미국 측 이행 발표는 없었다. 미국이 가스관 투자처럼 핵잠수함이나 전시작전권의 논의에 적극 나설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미국이 그간 핵잠수함 건조 관련 협의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한국과 미국은 지난해 11월 공동 설명자료(조인트 팩트시트)에 핵잠수함 건조를 위한 핵연료 조달 협력과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통해 한국의 농축·재처리 권한 확대를 위한 협력에 합의했다. 하지만 실질적 협의가 첫발을 뗀 것은 그로부터 반년 이상이 지난 올해 6월이었다. 미국이 이 사안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거나, 안보 협의를 투자를 확대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셈이다.
북·미회담 희망에 끌려가는 대미 외교
한국 정부는 미국의 발표에 우선 "‘확정'이 아니"라며 부인했다. 대신 "‘상업적 합리성'을 검토 중"이라고만 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10월 5일 미국 오하이오주 중간선거 유세 자리에서 동맹들이 약속한 '공장(투자)'을 짓지 않으면 보복 관세로 응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흥미로운 사실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 이전인 9월 29일 로이터 통신은 한국의 LNG 투자 사업을 이미 기정사실화했다는 점이다.이외에도 지금까지 한국은 미국의 압박을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받았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법 등으로 압박을 느낀 우리 기업은 미국에 생산 공장을 지었다. 이제는 알래스카 LNG 가스관도 100% 한국 투자로 만들어야 한다. 한국이 얻어가는 게 있으면 별문제가 없다. 불행하게도 이런 정황은 포착되지 않는다. 관세를 피하는 게 전부다. 고용 창출과 수출 기회 등을 상실하면서 밑지는 장사를 한 셈이다.
미중 경쟁 시대에 미국과 중국은 자국의 이익과 전략 이익을 위해 상황 변화에 신속히 대응한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국익은 훼손된다. 미국의 대중국 수출입 규제로 한국 기업의 중국 반도체 공장은 대부분 개점휴업 상태다. 중국 내 한국 기업 자동차 공장은 폐쇄된 지 오래다. 미국의 관세가 두려워 국내 경제 문제는 안중에도 없고, 오롯이 미국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북·미회담을 위해 한국의 이익을 주장하지 못하고 있다.
북·미회담에 대한 우리 정부의 기대치는 출범 이후부터 이어져 왔다. 지난해 8월 첫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은 '페이스메이커'를 자처하며 미국 측에 '피스메이커'가 될 것을 요청했다. 같은 해 10월 APEC 정상회담을 앞두고는 김정은의 참석을 기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고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도와줄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감에 사로잡힌 결과였다.
최근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북·미회담을 주로 다룬 것은 11월 APEC 정상회의가 중국 선전에서 개최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중국과의 1월 정상회담 및 8월 왕이 중국 외교부 부장의 방한 때도 북·미회담 성사를 위한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당부했다. 9월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한국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기여를 부탁해 "그렇게 하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북·미회담에 대한 기대만 커져가는 상황이다.
하지만 북·미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북·미회담 성사 가능성을 확인하려면 8월 방한한 왕이 부장의 발언부터 살펴봐야 한다. 당시 한국 기자들이 왕이 부장에게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중국의 중재 여부를 묻자 왕이 부장은 "북한과 미국이 결정할 사안"이라며 중국이 관여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고는 "북·미 정상회담의 전제로 '미국이 오랫동안 유지해 온 대북 적대 정책을 바꿔야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북한을 설득하려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8월 17일부터 11일간 진행이 예정된 '을지 자유의 방패(UFS)' 한미연합훈련을 5일로 축소할 것을 지시했다. 한미 훈련의 축소는 북한의 전제 조건을 이해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외에도 미국이 북·미회담을 위한 실무 접촉과 회담을 시도한 정황이 여러 군데서 포착됐다. 유럽의 지인들에 따르면 지난 상반기에 미국 측은 북한을 포함해 스웨덴과 노르웨이 등 4개국 실무 회의를 시도했다. 그러나 북한은 이 유럽 나라들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한 이상 더는 중립국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했다.

실무 회담 없으면 북·미회담도 없다
북한은 미국이 대북 적대 정책을 포기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한다. 한미 훈련의 축소를 트럼프가 지시했음에도 말이다. 미국의 태도 변화에 대한 북한의 호평은 없었다. 비판만 연이어 이어졌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장은 9월 17일 미국의 태평양 동맹 연합훈련을 두고 "미국이 지역에서의 진영대결을 위해 고안해 낸 또 하나의 위협적인 전쟁놀이"라며 혹평했다.이날 김여정 부장은 한국·미국·호주 해군과 일본 해상 자위대가 참여하는 연합훈련 '퍼시픽 뱅가드'와 한미일의 다영역 훈련 '프리덤 에지' 외에도 한일이 참가하는 '코브라 골드' '피치 블랙' '환태평양훈련(림팩·RIMPAC)' '슈퍼 가루다 실드' 등 미국과 우방의 태평양 연합훈련을 열거하며 "한미일 3자 군사공조체제를 기축으로 한 호전적 군사 움직임이 본격 가동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한미연합훈련 축소에 관해서는 "미국 측이 이번에 취한 자기들의 조치를 그 무슨 '선의의 조치'로 선전해 보려고 타산한다면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미국 주도 군사훈련을 바라보는 북한의 인식 변화가 고스란히 드러난 대목이다. 북한은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해 주도하는 군사훈련까지 '대북 적대 정책'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북한은 지난해 9월 베이징 북·중 정상회담에서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한 지지와 외세의 대만 문제 개입 반대를 공식화했다. 나아가 올해 6월 평양 북·중 정상회담에서는 중국과 함께 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겠다는 의지도 확인했다. 북한이 규정하는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의 범위가 그만큼 넓어진 것이다. 북한이 북·미회담을 사실상 거절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대통령은 10월 13일 국무회의 모두 발언에서 "대한민국의 외교 방침은 실용적 국익 외교"라며 "언제나 당당한 대한민국을 위해 국익이 지켜지는 외교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말대로 한국 외교에서 가장 먼저 추구해야 할 것은 '국익'이지 북·미회담이 아니다. 북·미회담 성사를 위해 한국의 실질적 국익과 전략 이익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북·미회담에 대비하지 말라는 소리가 아니다. 다만 준비는 하되 매몰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북·미회담 성사 전에는 전조가 있다. 실무 회담이 그 징조다. 이때부터 준비해도 늦지 않다.
주재우 경희대 교수 jwc@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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