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서면 쓰는 시대…‘변호사 육성 공식’이 바뀐다 

이태준 기자 2026. 10. 31.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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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례를 찾고 계약서 조항을 하나하나 대조하는 일은 대형 로펌 신입 변호사들의 첫 관문이었다.

태평양 관계자는 "AI가 기초 업무를 지원하는 만큼 주니어 변호사가 더 이른 연차부터 핵심 쟁점 검토와 전략 수립에 참여하도록 교육과 육성 방식도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세종도 변호사들이 경험을 바탕으로 전략적 판단과 고부가가치 업무에 집중하도록 단계·역할별 AI 활용 체계를 짜고 있다.

결국 대형 로펌의 과제는 AI로 끌어올린 생산성을 숙련된 변호사 양성으로 잇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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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형 커졌는데 신입 채용은 감소…대형 로펌에 파고든 ‘AI 일상화’
판례 검색부터 서면 작성까지 자동화…법률적 판단·검증 역량 부상

(시사저널=이태준 기자)

판례를 찾고 계약서 조항을 하나하나 대조하는 일은 대형 로펌 신입 변호사들의 첫 관문이었다. 선배의 지도 아래 기초 업무를 반복하며 법리를 익히고 판단력을 쌓는 것이 로펌의 오랜 '변호사 육성 공식'이었다. 그러나 생성형 AI가 이를 빠르게 대체하면서 공식이 흔들리고 있다.

올해 국내 10대 로펌의 신입 변호사 채용 인원은 2022년 296명에서 지난해 227명으로 23.3%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합산 매출(국세청 부가가치세 기준·김앤장법률사무소는 추정치)은 3조1918억원에서 4조1090억원으로 28.7% 늘어났다.

ⓒChatGpt 생성이미지

단순·반복 업무 AI가…'디지털 무장' 속도전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주요 로펌 6곳(태평양·세종·광장·율촌·화우·지평)은 AI가 향후 채용 규모에 미칠 영향을 두고 엇갈린 전망을 내놨다. 그러나 AI가 생성한 법률 문서의 오류와 누락을 찾아내고 타당성을 판단하는 능력이 중요해진다는 데는 입을 모았다. 문제는 기초 업무로 판단력을 쌓던 기존 훈련 경로가 AI로 좁아질 수 있다는 점이다.

대형 로펌에서 AI는 이미 '선택'이 아닌 '기본'이 됐다. 주니어 변호사들은 주로 판례·법령 리서치, 자료 요약, 번역, 서면 초안 작성에 AI를 활용한다. 파트너급은 AI 결과물을 검토하거나 반대 논리와 여러 시나리오를 점검하는 '브레인스토밍 상대'로 쓰는 경우가 많다. 지평도 주니어가 AI로 리서치·초안 작업을 하면 파트너가 정확성과 적절성을 검증하는 방식이다. 최종 판단은 변호사의 몫이라는 게 로펌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AI 도입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태평양은 지난 7월 글로벌 리걸 AI 플랫폼 하비(Harvey)를 전 구성원에게 도입했고, 8월에는 챗GPT 엔터프라이즈도 전사 도입했다. 설립 이래 쌓은 업무 자료 기반의 자체 지식 베이스 AI도 11월 정식 운영할 예정이다. 세종은 2024년 12월 검색증강생성(RAG) 기반 자체 생성형 AI를 도입했고, 지난해부터 하비를 글로벌 자문 업무에 활용하고 있다. 올해는 레고라(Legora)·챗GPT 엔터프라이즈 시범운영에 이어 구글 제미나이 엔터프라이즈도 시험 중이다.

보안을 이유로 폐쇄형 자체 AI를 앞세운 곳도 있다. 광장은 자체 서버에서 구동하는 'eLK'를, 율촌은 지식관리(KM) 자산을 기반으로 한 '아이율(AI)'을, 화우는 폐쇄망 환경에서 작동하는 'Chat화우'를 운영 중이다. 광장은 하비와 레고라 테스트를 마쳤고, 슈퍼로이어와 챗GPT 엔터프라이즈 검증도 앞두고 있다.

교육 체계도 달라지고 있다. 태평양은 KM팀을 중심으로 기본 사용법부터 실무 적용까지 단계별 교육을 실시하고, 세종은 AX(AI 전환) 전담 조직이 로펌 업무에 특화된 실습 교육을 수시로 운영한다. 광장은 eLK 업데이트 때마다 전체 교육을 진행하고 전문그룹별로 AX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지평은 '디지털지평위원회'에서 AI 활용 사례를 공유한다.

저연차 변호사 육성 방식은 로펌마다 다르다. 화우는 연차별 역할에 맞춘 단계별 AI 활용 지침을 운영한다. 저연차 어소시에이트는 리서치 위주로 AI를 활용하되, 결과물을 원문과 직접 대조·검증하게 한다. 법리 판단의 기본기를 건너뛰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반면 파트너에게는 법률 자문을 넘어 비즈니스 판단과 전략 수립까지 AI를 폭넓게 활용하도록 독려한다.

율촌과 세종도 기본기에 무게를 둔다. 율촌은 신입 변호사에게 자료를 읽고 쟁점을 찾아 스스로 논리를 세우는 능력을 우선 기대하고, 그 위에 AI 활용 능력과 고객 정보 보호 책임 의식을 함께 본다. 도구별 입력 가능한 자료, 결과물 검증 방법, 문제 발생 시 대응 등 실무 기준도 마련하고 있다. AI를 직접 써본 변호사가 동료에게 사례를 설명하는 교육 세션을 운영하는 것도 검증 노하우는 현장 경험을 통해 가장 잘 전달된다고 봐서다. 세종도 법리적 사고와 문장력, 책임감, 소통 능력 등은 실무 경험과 도제식 교육으로 길러진다는 입장이다.

태평양은 AI로 변호사의 성장 단계를 앞당길 수 있다고 본다. 반복 업무는 AI로 효율을 높이는 '대체', 고도의 판단이 필요한 업무는 검토의 폭과 깊이를 더하는 '증강'을 두 축으로 삼았다. 태평양 관계자는 "AI가 기초 업무를 지원하는 만큼 주니어 변호사가 더 이른 연차부터 핵심 쟁점 검토와 전략 수립에 참여하도록 교육과 육성 방식도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고연차 변호사의 역할도 달라지고 있다. 율촌은 AI로 절약한 시간이 고객의 문제를 깊이 이해하고 사건 전략을 논의하는 데 쓰여야 한다고 보고, 개인의 활용 경험을 조직 역량으로 축적하고 있다. 세종도 변호사들이 경험을 바탕으로 전략적 판단과 고부가가치 업무에 집중하도록 단계·역할별 AI 활용 체계를 짜고 있다.

'비판적 사고력·유연성'이 새 생존 공식

AI가 신입 채용 규모에 미칠 영향에 대해선 로펌 간 시각차가 컸다. 광장은 최근 몇 년간 신입 채용 규모를 유지해 왔고, AI 도입이 본격화한 올해도 업무량이 전년보다 크게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장기적으로 AI가 채용에 영향을 줄 수 있으나 로펌 간 부익부 빈익빈 현상으로 오히려 채용을 늘리는 곳도 나올 수 있다고 봤다. 태평양은 최근 신입 채용 인원 변동이 경력직 비중 확대 때문이며, 신입과 경력을 합친 주니어 변호사 채용 규모는 매년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세종도 단기간 내 AI가 채용 규모에 직접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으로 봤다.

대신 로펌들은 AI 결과물 검증 능력을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태평양은 AI 도구 활용 능력은 누구나 갖춰야 할 기본기가 되고, 결과물의 오류와 누락을 찾아내 판단하는 능력이 훨씬 중요해질 것으로 봤다. 화우 관계자는 "AI가 초안을 1분 만에 써내는 시대에는 그 허점을 발견하고 법적 리스크를 차단하는 비판적 사고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다"며 AI 결과물을 고객에게 설명하는 능력도 꼽았다. 지평은 특정 도구의 숙련도보다 새로운 기술을 빠르게 이해하고 활용하는 유연한 사고와 문제 해결 능력을 중시했다.

결국 대형 로펌의 과제는 AI로 끌어올린 생산성을 숙련된 변호사 양성으로 잇는 데 있다. 저연차 변호사가 법리를 익히고 독자적으로 판단할 기회를 어떻게 확보할지가 관건이다. AI 결과물을 검증하라는 요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결과물이 왜 맞거나 틀렸는지 판단할 수 있도록 새로운 훈련 방식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율촌 관계자는 "도구와 방식은 달라져도 고객이 신뢰하는 판단은 결국 사람에게서 나온다"며 사람을 키우는 투자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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