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와 프로바이오틱스, 둘 중 하나를 골라 먹는다면
[정재훈의 먹다가 궁금할 때] (14)

김치를 먹을 때마다 궁금해진다. 장 건강을 위해 하나를 고른다면, 김치와 프로바이오틱스 중 어느 쪽이 나을까.
추세를 보면 프로바이오틱스를 선택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 같다. 지난 9월 학술지 ‘임상 소화기병학 및 간장학’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프로바이오틱스 보충제를 사용하는 미국 성인 비율은 2009년 약 1.8%에서 2023년 7%로 크게 증가했다. 같은 기간 식이섬유 섭취는 개선되지 않았고, 식품을 통한 미생물 섭취도 소폭 늘어나는 데 그쳤다. 연구진은 “사람들이 식단의 질을 높이는 대신 보충제 사용을 선택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국내도 비슷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 통계에 따르면 프로바이오틱스 시장 규모는 2014년 1213억원에서 2023년 6159억원으로 5배가 됐다. 반면 김치 섭취는 줄고 있다. 중앙대·제주대·세계김치연구소 공동 연구진이 국민건강영양조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조사 전날 김치를 먹지 않은 사람의 비율은 2010년 11.7%에서 2024년 22.7%로 늘었다. 하루 평균 김치 섭취량도 같은 기간 109.6g에서 90.3g으로 줄었다.
◇균 수로는 대등하다
그렇다면 김치는 프로바이오틱스에 못 미치는 선택일까. 제품 포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균 수부터 비교해 보자. 시판 프로바이오틱스 제품에는 1회 분량에 대개 생균 100억CFU(균 수를 세는 단위)가 들어 있다. 세계김치연구소 연구진이 포기김치와 맛김치를 만들어 섭씨 6도에서 숙성시킨 실험에서는 유산균 수가 가장 많았던 2주차에 포기김치 1g당 약 1억2000만CFU, 맛김치에서는 약 12억CFU가 측정됐다. 하루 섭취량 90g을 전부 포기김치로 치면 약 108억CFU, 맛김치라면 1080억CFU다. 균 수로는 김치와 프로바이오틱스가 대등하다.
먹은 균이 장까지 살아서 가는 측면에서는 어떨까. 내산성이 있는 균주를 고르고 코팅이나 장용 제형으로 위산을 피한다는 프로바이오틱스 제품이 김치보다 유리해 보인다. 그러나 살아서 장을 통과하는 것 자체는 양쪽 다 가능하다. 김치를 먹는 동안 대변에서 김치의 유산균이 검출된 연구가 여러 건 있고, 프로바이오틱스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2018년 학술지 ‘셀(Cell)’에 실린 연구에서 내시경으로 장 점막을 직접 들여다봤더니 프로바이오틱스 균주가 자리를 잡는지 여부는 사람마다 달랐고 상당수에서는 그냥 통과했다. 김치 유산균이 장에 장기간 정착하는지는 아직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 우리 장에는 이미 수십 조의 토착 미생물이 터를 잡고 있어서, 발효 식품으로 들어오든 캡슐로 들어오든 새로 온 균은 지나가는 나그네다. 생존율을 겨루는 건 그래서 큰 의미가 없다. 남는 질문은 지나가는 동안 무엇을 하고 가느냐다.
◇먹은 균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변화
2021년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건강한 성인 36명을 두 집단으로 나눠 한쪽에는 김치·요구르트·콤부차 같은 발효 식품을, 다른 쪽에는 채소·과일·콩·통곡물 등 식이섬유가 풍부한 식품을 늘려 먹도록 했다. 10주 뒤 발효 식품 쪽에서 장내 미생물의 다양성이 증가하고 혈중 염증 지표 여러 가지가 낮아졌다.
발효 식품을 많이 먹을수록 장내 미생물의 종류도 많아졌다. 그런데 장에서 새롭게 검출된 미생물 가운데 발효 식품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종은 약 5%에 불과했다. 음식 속 균이 장으로 옮겨갔다는 설명으로는 다양성 증가를 설명하기 어려웠다. 원래 장에 존재했지만 검출되지 않을 만큼 적었던 미생물이 늘어났거나 발효 식품이 장내 환경을 바꿔 다른 미생물의 유입을 도왔다는 게 연구진의 추측이다.
발효 김치를 성인 32명에게 10주 동안 먹도록 한 국내 연구에서도 비슷하게 장내 미생물의 다양성이 증가했다. 성인 4만6000명 이상을 대상으로 한 관찰 연구에서 발효 식품을 많이 먹는 사람일수록 혈압, 체질량지수(BMI), 허리둘레, 혈중 인슐린 및 중성지방 수치가 조금 낮았다. 관찰 연구로 인과관계까지 알 수는 없지만 대체로 비슷한 경향이다.
프로바이오틱스가 쓸모없다는 건 아니다. 과민성장증후군이나 항생제 부작용에는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일부 연구에서는 프로바이오틱스가 장내 미생물 다양성을 오히려 줄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사람마다 효과가 다르다는 점도 문제가 될 수 있다. 2023년 스탠퍼드대 임상시험에서 프로바이오틱스 보충제를 먹은 사람 가운데 일부는 혈압과 중성지방 수치가 개선됐지만 다른 참여자는 혈당과 인슐린 수치가 악화됐다.
발효가 건강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맥주와 와인도 발효 식품이다. 프로바이오틱스와 김치를 두고 골라야 하는 것도 아니다. 둘 다 먹어도 된다. 그래도 식탁에서 내가 하나만 먼저 고른다면 김치다. 김치에는 프로바이오틱스 제품과 비교할 수 없는 장점이 있다. 김치와 같은 발효 식품에는 살아 있는 미생물뿐 아니라 미생물의 먹이가 되는 식이섬유, 발효 중에 미생물이 만들어 내는 건강에 유익한 산물도 함께 들어 있다.
◇맛있어야 매일 먹는다
김치는 맛있게 오래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발효 중에 미생물이 만든 유기산은 새콤함을, 당알코올 만니톨은 은은하고 시원한 단맛을 낸다. 이산화탄소는 여기에 톡 쏘는 맛을 더한다. 유기산은 맛에 더해 식감도 지킨다. 적당한 산도에서는 배추 줄기의 아삭함이 더 잘 유지되고 동시에 유해균이 증식하기 어려운 환경이 만들어져 보존성이 좋아진다. 생채소가 식중독의 원인이 됐다는 해외 뉴스를 접할 때마다 채소를 오래 보존하며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발효 식품 김치의 매력이 새삼 느껴진다.
그러니 김치 속 유산균 수가 언제 제일 많은지 굳이 세어 가며 먹을 필요는 없다. 발효 식품을 자주 먹는 게 균 수보다 중요하다. 균 수로는 배추를 잘게 썬 맛김치가 포기김치보다 낫지만 잘 익은 포기김치 맛을 포기할 이유도 없다. 내 입에 맞아야 매일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예전에는 너무 짜다는 이유로 김치를 피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김치냉장고 시대엔 염도도 낮아졌다. 뉴욕타임스에 맛김치, 포기김치, 깍두기, 백김치 레시피가 실리는 시대다. 세계인이 김치의 맛과 가치를 알아보며 김치 주스와 김치 국물 칵테일까지 마시는데 나라고 김치를 적게 먹어서야 되겠는가. 캡슐보단 역시 음식이 좋다. 오늘 점심도 김치 한 조각으로 침샘을 자극하며 식사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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