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화 어때] “세상에 흔한 것이 집인데 갈 곳이 없구나”... 47년간 하루도 멈추지 않았던 모정의 기록, ‘어머니의 가계부’

신정선 기자 2026. 10. 30. 07: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신정선 기자입니다. ‘그 영화 어때’ 239번째 레터는 28일 개봉한 영화 ‘어머니의 가계부’입니다. 이 영화 개봉 사실을 모르는 분이 더 많을 것 같습니다. 저예산 다큐멘터리라 홍보가 거의 안 됐어요. 독립영화와 외화가 몰려나오는 이맘때, 묻히기 딱 좋은 영화인데, 저도 아는 분 부탁으로 급하게 챙겨봤습니다. 그런데, 이런. 누군가의 가계부를 보다가 눈시울이 뜨거워질 줄 몰랐어요. 1941년 경남 진주에서 6남매 장녀로 태어나신 윤종생님, MBTI 검사하면 아마도 ‘대문자 T’ 나올 것 같은 분, 매사 이성적이고 단호해보이는 분이,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속마음을 가계부 구석에 적어두셨더군요. 삐뚤빼뚤, 짧고 담담하게. 그 어머니가 47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쓴 가계부, 47년치의 눈물과 한숨, 번민과 회한, 안도와 기도가 담긴 가계부, 거기에 무슨 내용이 있었기에 그렇게 뭉클했는지 살짝 말씀드려볼게요.

영화 '어머니의 가계부'는 촬영감독 출신인 성승택 감독의 감도 높은 촬영과 사이사이 감각 있는 특수효과까지 거들어 일반적인 저예산 다큐멘터리와 다르게 흡입력이 뛰어납니다. 무엇보다 꾸불꾸불 필체가 그대로 살아있는 47년치 가계부, 거기에 담긴 애정과 기쁨, 한숨과 눈물, 안도와 기도가 많은 이들의 가슴에 가닿을 작품입니다./씨엠닉스

이번 영화 ‘어머니의 가계부’ 주인공이신 윤종생 여사님은 1941년 경남 진주 대곡면 대곡리에서 6남매 맏이로 나셨습니다. 4남매 키우셨는데, 막내아들인 성승택 감독님이 이사하다가 장롱에서 차곡차곡 쌓인 어머니의 가계부 수십 권을 발견합니다. 그날 밤 궁금한 마음에 감독님이 가계부를 펼쳐봤습니다. “그것은 내가 몰랐던 어머니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그 순간 나는 어머니의 삶을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장장 47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적어내려간 가계부는 1969년 시작됐습니다. 출납 기록을 적으면서 그날의 집안일과 그때그때 심정까지 기록했어요. 영화는 사이사이 가계부를 보여주면서, 어머니 인터뷰도 들려주면서, 1969년 이후 흘러간 역사도 흑백 화면으로 간간이 스쳐갑니다.

다큐라고 하면 지루하지 않을까 생각하실 수 있는데, 적어도 이 영화는 그렇지 않습니다. 삐뚤빼뚤 적힌 가계부 글자를 보고있자면, 영화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몰랐던 그 시절로 잠시 여행을 간 듯 새롭고 신기하기도 하고요. 한 어머니가, 한 여성이, 그날 그 순간에 충실하게 적은 기록이라 진심이 주는 울림도 큽니다. 세상 오직 한 사람만 만들어내는 한 사람의 인생. AI가 아무리 평균의 삶을 기록하고 제시하더라도 절대로 만들거나 이해할 수 없는 유일한 한 인간의 삶이니까요.

영화 '어머니의 가계부'/씨엠닉스

없는 살림에 4남매 키우면서 어떻게든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키려 애쓴 흔적이 역력하게 보일 때마다 저 시절을 어떻게 버티고 지나왔을까 싶어지기도 했습니다. 몇 구절 보실까요.

“오늘은 아이 생일인데도 생선 한 마리도 차려주지 못했다. 우리도 잘 사는 날이 오긴 할까. 세상살이가 이렇게 힘들 줄은 정말 몰랐다. 6월27일은 어머님 회갑이라는데 어찌해야할지... 가슴이 터질 것 같다.“ (1978년 7월9일)

“방을 내놨다고 하니 걱정이 되는구나. 세상 흔한 것이 집인데도 갈 곳이 없구나. 언제 내 집을 가질런지 한심스럽구나.“ (1973년 7월1일)

“승준이가 여행을 못 가서 우는 걸 보니, 돈 없는 서러움이 먼저 밀려온다.”(1973년 5월19일)

돈 없는 서러움. 잘사는 날이 오긴 할까라는 답답함. 터질 것 같은 가슴. 6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한 우리들의 삶이라서.

영화 '어머니의 가계부'/씨엠닉스

결혼을 나이 스물하나 되던 1961년 하셨다고 해요.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랬을까 싶은데 “선도 안 보고 결혼식날 만났어”라고 하십니다. 집안끼리 결정해서 사진만 보고 평생의 배필이 된거죠. 결혼하던 무렵을 좀 더 들어보시면,

“그때가 5·16이 났으니까. 창경원에는 우리만 구경했어. 못 들어가게 하는데 왜 못 가게 하느냐고 그냥 밀고 들어갔어. 창경궁 구경하고 나왔을 때, 우래옥에. 냉면. 냉면 이름도 몰랐는데 냉면 먹었어. 그런데 밖에서 총소리가 나고 했어. 군인들은 빌딩을 점령해서 총을 들고 있고 그랬어.”

“그럼 총소리 나고 이러는데 냉면 드시러 가셨어요, 엄마?”

“점심은 무야 될 거 아이가.”

이 대목에서 순간 웃음이. 그렇죠. 총든 군인이 바깥에 지키고 서있어도, 밥은 먹어야 되는 것. 이름도 모르는 처음 보는 면발을 아직 어색한 남편과 마주앉아 꼭꼭 씹어먹는 것. 삶은 그렇게 꿋꿋이 계속되는 것.

어머니가 결혼하던 해 7월20일 아폴로11호가 달 착륙을 했습니다. 인간이 처음 달착륙하던 날, 어머니의 가계부에는 달착륙만큼이나 의미심장한 내용이 적힙니다. “콩나물 10원, 계란 260원, 고기 100원, 감자, 배추 30원.” 콩나물 10원이라. 마지막으로 10원 동전을 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질 않네요.

영화 '어머니의 가계부'/씨엠닉스

일기를 써보신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쓴다는 게 말이 쉽지 정말 잘되지 않잖아요. 일기가 아니라 뭐가 됐든 꾸준히 하는 건 어렵고, 게다가 47년이라니. 그것만 봐도 윤종생 여사님이 어떤 분인지가 짐작이 되실 거예요.

영화에 ‘민복남, 넷째 동생의 처, 1958년생’이라고 소개된 분이 나와서 얘기합니다. “나도 가계부를 한 10년은 넘게 썼을 거야, 아마. 알뜰히 살아야 되니까. 그래서 그 가계부를, 이사를 그때 참 많이 다녔는데, 이사 다닐 때마다 그걸 들고 다니거든, 무슨 보물처럼 들고 다니는데. 외삼촌이 너무 실망을 시키니까 속이 상해서 안 살 거라고, 한날 그걸 다 밤새도록 울면서 뜯어버렸어. 그러고 나서 내 가계부를 안 적었거든. 그런데 너희 엄마가 그렇게 썼다는거는 굉장한 거야.”

누가 봐도 굉장한 게 맞죠. 아마 2000년대 태어나셨으면 쩌렁쩌렁하셨을 거 같아요. 영화에서 “꿈이 뭐였느냐”는 질문을 받고 어머니는 곧바로 서슴없이 말씀하십니다. “최고가 되고 싶었지.” 멋있는 답변. 공부가 적성에 맞으셨나봐요. 말씀하시길 “딴 애들보단 앞질렀지. 반장하고. 학교까지 8킬로가 더 될 거야. 결석 지각 안 해봤어. 산수 시간이면 제일 신났고.”

산수 시간이 신나셨던 분이라서인지 가계부 출납 내역도 “기억해뒀다가 저녁에 다 썼다”고 하시네요. 남편을 얼굴 한 번도 안 보고 집안에서 정해주는 대로 만나 결혼해야 했던 시절의 여성들, 최고가 되고 싶었던 두뇌와 의지로 남편을 건사하고 집안일을 도맡고 아이들을 키웠던 많은 어머니들. “괜한 일로 마음이 괴롭구나. 왜 여자로 태어났을까. 원망스럽다.” (1972년 9월3일) 같은 기록에 이르면 여성이라는 한계가 벗어날 수 없는 족쇄였던 그 시절의 어머니들에게 더욱 존경심이 듭니다.

영화 '어머니의 가계부'/씨엠닉스

막내아들인 성승택 감독님 때문에 어머님이 속을 꽤나 썩으신 것 같습니다. 90년대 들어서면 ‘승택이 대학 못 가는 걱정’이 이어집니다.

“승택 학교 지각했다. 꾸짖음 듣고 그냥 집에 왔음.”(1987년 10월18일)

“택이 놀러가겠다고 15000원 달라고 하였다. 이 추운데 어디를 가는지... 너무 초조하고 불안하다.” (1989년 11월29일)

가계부의 이런 기록이 소중한 것이, 어머니가 겉으론 감정 표현을 거의 안 하셨거든요. ‘초조와 불안’은 남몰래 가계부에만 적었습니다. 아들 군대 갈 때도 안 우셨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뭐라고 하니 ’대문자 T’ 어머니의 답변. “나라 위해서 가는 건데 뭐 때문에 울어.”

기억력과 의지에서 누구보다 강인했던 어머니는 어느새 희미해집니다. 가끔 병원 가실 때마다 “내 자신은 기억력 떨어지고 그런 거 없어”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시던 분이라 그 괴리 때문에 보는 저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의사가 “올해가 몇 년도 같아요?”라고 물으니 “천구백..”이라고 말을 흐리십니다. “52에서 7을 빼면?”이라고 물으니 한참 있다 답합니다. “사십… 43인가? 모르겠어요. 바보가 다 돼버렸어요.” 47년을 밤마다 십원 한푼까지 기억해서 기록했던 어머니, 이제는 ‘52빼기 7’ 앞에서 아득해지십니다. 영화는 그런 모습도 있는 대로 담았습니다.

상영관이 몇 곳 없어요. 그럼에도 시간이 되고 기회가 되신다면, 아니면 나중에 OTT에서라도 꼭 보시길 추천합니다. 그 시절 모든 어머니의 눈물과 한숨, 안도와 기도가 영화에 들어있습니다. 오늘의 자식들을 키워낸 모든 어머니의 심정이 아닐까 하는, 윤종생 여사님의 말씀으로 오늘 레터 끝인사드립니다. 저는 다음 레터에서 뵐게요. 감사합니다.

“엄마, 제일 행복했을 때가 언제예요?”

“행복할 때도 뭐 불행할 때도 없었지 뭐. 악착같이 사니라고.”

“살면서 엄마 뭐가 제일 힘들었노?”

“힘든 것도 없었고 재밌었다.”

조선닷컴 ‘그 영화 어때’ 구독 링크 https://www.chosun.com/tag/cinema-review

네이버 ‘그 영화 어때’ 구독 링크 https://naver.me/FZ82SAP3

영화는 세상의 창이고 호수이며 거울. 여러분을 그 곁으로 데려다 드립니다.
그 영화 어때 더 보기(https://www.chosun.com/tag/cinema-review/)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