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중박 뮷즈’ 흥행 뒤, 25년 차 마케터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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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은 영국 미술 전문 매체가 발표한 '2025년 세계 박물관 관람객 조사'에서 연간 관람객 650만명으로 세계 3위를 기록했다. 박물관 상품 '뮷즈(뮤지엄+굿즈)'의 인기도 한몫했다. '뮷즈' 흥행을 이끈 건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의 김미경 상품사업본부장이다.
뮷즈가 인기를 끌면서 국립중앙박물관 상품관에 입점을 희망하는 업체가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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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은 영국 미술 전문 매체가 발표한 ‘2025년 세계 박물관 관람객 조사’에서 연간 관람객 650만명으로 세계 3위를 기록했다. 루브르 박물관(904만명), 바티칸 박물관(693만명) 다음이다. ‘국중박’이라고 줄여 말해도 대개 알아들을 정도로 친근해졌다. 박물관 상품 ‘뮷즈(뮤지엄+굿즈)’의 인기도 한몫했다. 지난해 국립박물관문화재단에서 기획·제작해 판매하는 박물관 상품 매출액도 413억원에 이른다. 2024년 판매액 213억원에서 크게 늘어났다. ‘뮷즈’ 흥행을 이끈 건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의 김미경 상품사업본부장이다.

김미경 본부장은 25년 경력의 마케터·상품기획자다. 웅진식품에서 8년 동안 초록매실·아침햇살 등의 음료 브랜드 마케팅을 담당했고, 삼양그룹에서는 7년 동안 세븐스프링스 등의 외식사업 마케팅을 총괄했다. 음료·외식사업 마케팅 분야는 경쟁이 치열했다. “결혼식 전날까지 야근을 할 정도로 일했고, 스트레스가 심했다.” 그는 ‘너무 지쳐, 쉬면서 다음을 모색하자’는 마음으로 MBA 대학원에 진학했다. MBA 2년 차에 “실적 위주의 삶 말고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2016년 국립박물관문화재단으로 이직했다. 다른 분야를 경험해보고 싶기도 했다. 새로운 환경에서 다른 방식의 기획을 하고 싶었다.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은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해 전국 13개 지역 국립박물관의 문화유산 콘텐츠를 활용하는 사업을 한다. 유물을 바탕으로 상품을 기획·제작해 상품관을 운영한다. 박물관 상품을 만드는 일이니 그가 예전에 했던 기획·마케팅과 연결고리가 있어 보였다.
처음에는 상품서비스운영팀장을 맡았다. 상품을 판매하고 매장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당시만 해도 박물관 상품에서 문구류 비중이 60% 이상이었다. 상품관에 들어서면 상품 종수는 많은데 뭘 사야 할지 모르는 듯했다.” 박물관에서 유물 기획전을 하듯, 상품기획전을 열었다. 때마침 봄이었다. 국중박에는 꽃을 주제로 한 유물이 많았다. 조선 시대 화가 남계우의 ‘화접도’가 상품으로 많이 활용됐다. 꽃과 나비를 그린 작품이다. 꽃과 관련한 다양한 상품을 모아 상품기획전을 구성했다. 공간을 바꾸니 판매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후 계절마다 상품기획전을 이어갔다. 여름에는 부채 같은 여름용 생활용품을 중심으로, 가을에는 여행·패션 아이템, 겨울에는 연말 모임에 선물하기 좋은 아이템을 묶어 배치했다. 계절에 맞는 상품군도 늘려갔다.
김미경 본부장에게 ‘별 헤는 밤’ 유리컵은 ‘박물관 상품 기획’ 하면 떠오르는 첫 상품이었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2016년 봄이었다. 윤동주 시인이 쓴 시 ‘별 헤는 밤’의 한 구절을 새겨 넣은 유리컵이었는데, 온라인 뮤지엄 숍에서 ‘품절’되었다는 것이다. 영화 〈동주〉가 개봉되면서 20대 여성을 중심으로 구매가 확 늘어났다. 오프라인 매장에 갔더니 20대 여성들이 많이 보였다. “그때만 해도 20대는 국중박과 거리가 멀었다. 학생들은 수학여행·체험학습 때문에 오고, 30·40대가 되어야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정도였다. 20대는 박물관에서 공백인 세대였는데, 갑자기 20대 여성이 많이 보이니 신기했다.” 온라인 뮤지엄 숍에서 재구매율이 높은 것도 눈에 띄었다. ‘별 헤는 밤’ 유리컵 사건 이후로 온라인 뮤지엄 숍 고객을 상대로 소비자 조사를 여러 번 했다. 결과는 분명했다. ‘의미가 있고, 흔하지 않으면서 품질이 좋은 상품.’ 국중박을 찾는 이들이 원하는 상품이다.
2020년 12월에 출시한 반가사유상 미니어처는 대중의 이목을 끈 터닝 포인트였다. 기획·제작에 4년가량이 걸렸다. 2016년 10월 국정감사에서 ‘국립중앙박물관 뮤지엄 숍에는 왜 대표 상품이 없죠?’라는 질문이 나오기도 했다. 루브르 박물관에는 ‘모나리자’ 관련 상품이, 영국박물관에는 로제타스톤을 활용한 대표 상품이 있다. 국중박은? 대답하기 어려웠다. 그 질문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국중박 대표 상품’을 만드는 것. 김미경 본부장에게는 숙제 같은 일이었다.

루브르엔 모나리자, 국중박엔 무엇이?
박물관 상품은 유물에서 시작한다. 김미경 본부장은 박물관 학예연구사들을 만날 때마다 같은 질문을 던졌다. ‘국립중앙박물관을 대표하는 유물은 무엇인가?’ 대체로 의견이 모아졌다. 삼국시대 불교미술을 보여주는 반가사유상이다.
반가사유상은 국중박 소장품 가운데 보험가가 가장 높은 유물이다. 해외 박물관으로부터 전시 대여 요청을 가장 많이 받는다. 각각 6세기 후반, 7세기 전반에 만든 두 점이 국중박에 있다. 김미경 본부장은 반가사유상을 보러 박물관 3층을 자주 찾았다. “그때만 해도 반가사유상이 전 국민이 아는 유물이 아니었다. 당시 3층에 전시되어 있어서 1층에 비해 관람객이 적었다. 한 점만 전시하고, 다른 한 점은 수장고에 보관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때였다. 박물관 내부에서는 ‘대표 유물’이라고 꼽는데, 그에 비해 보러 오는 사람이 적은 듯해 제 입장에서는 의아하고 안타까웠다.”
반가사유상을 어떤 상품으로 만들까. 고심을 꽤 오래 했다. 유물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 위해 ‘박물관 밖 사람들’에게 많이 물어봤다. 피규어를 모으는 친구들이 있어서 ‘유물 피규어, 어때?’ 하고 물었다. “다들 너무 ‘힙하다’는 거예요(웃음).”
‘자연스럽게 곁에 둘 수 있는 크기’를 찾으려고 테스트 제품을 여러 종류로 만들었다. 파격적으로 빨간색·보라색·노란색 등을 입혔다. 출시할 당시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였다. 처음엔 온라인 뮤지엄 숍에서만 판매했다. 온라인에서 반응이 무척 좋았다. SNS에 반가사유상 미니어처를 찍은 사진들이 올라왔다. 노랑·빨강 같은 원색 상품이 많이 팔릴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아이보리와 그레이 등 무채색 계열 상품에 대한 선호가 많았다. 오프라인 매장을 열어서 제품 수량을 늘려야겠다고 할 즈음, 매장 직원에게 연락이 왔다. BTS 멤버 RM이 반가사유상 미니어처를 사러 왔다가 원하는 색상이 없어 돌아갔다고 했다. 그러고 얼마 후 RM 작업실 사진이 공개되었는데, 책상 한쪽에 반가사유상 미니어처가 놓여 있었다. 판매량이 대폭 늘어나고, 이후 ‘품절 사태’가 이어졌다. 2021년 11월, 반가사유상을 전시하는 공간 ‘사유의 방’이 조성되면서 반가사유상 미니어처도 리뉴얼했다. “어디에 두어도 어울리는” 파스텔 톤으로 색상을 변경했다.
반가사유상 미니어처는 김미경 본부장에게 여러모로 의미가 깊은 박물관상품이다. 지난해 국립중앙박물관 용산 개관 20주년을 맞아 ‘반가사유상 마음 시리즈’를 기획했다. 반가사유상 미니어처를 통해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다. 엄지를 들거나, 두 손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거나, ‘볼 하트’ 모습으로 손 모양을 조금 변형해 응원·사랑 등의 감정을 담은 기획작이었다. 인기 일러스트레이터 최고심 작가와 협업해 패키지를 디자인했다. 샘플까지 만들었는데, 손 모양을 바꾸는 게 계속 마음에 걸렸다. 이렇게 해도 괜찮을까. 불교미술을 오래 연구한 학예연구사 두 명에게 조언을 구했다. “두 분 다 ‘본질이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 이 정도는 괜찮다. 더 과감하게 표현해도 좋겠다’고 했다. 그 말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반가사유상 마음 시리즈는 유물의 본질과 박물관 상품 활용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원래는 20주년 한정판으로 끝내려 했는데, ‘히트 상품’이 되어서 지금도 판매하고 있다.

박물관 상품을 기획·제작하면서 기업 등과 협업할 일이 생겼다. 2018년 특별전 〈대고려, 그 찬란한 도전〉을 준비할 무렵, 상품기획팀은 이 전시에 관심을 갖게 할 방법을 모색했다. 기업과의 협업이었다. 당시만 해도 박물관과 기업이 ‘콜라보’하는 것은 낯선 일이었다. 전통 한방 화장품 이미지를 강화하던 LG생활건강과 협업하게 됐다. “협업하면서 ‘국립박물관문화재단ⅩLG생활건강’ 이렇게 쓰자니 너무 재미가 없어 보였다. 브랜드와 브랜드의 협업으로 표현하고 싶은데….” 자연스럽게 ‘우리도 브랜드를 만들자’는 논의가 나왔고 사내 공모를 통해 이름이 결정되었다. 2022년 1월 ‘뮷즈’라는 브랜드가 탄생했다. 뮷즈를 설명하는 슬로건을 ‘나에게 온 보물’로 정했다.
“상품은 전시의 마지막 장면”
뮷즈가 인기를 끌면서 국립중앙박물관 상품관에 입점을 희망하는 업체가 늘어났다. 과거에도 있던 입점 공모제도가 활성화되었다. 국립박물관 소장 유물을 바탕으로 한 상품으로 공모 주제를 좁혔는데, 올해 상반기만 해도 3226종이 접수되었다. 이 중 70종이 선정되었다. 1년에 15억원가량 팔리는 스테디셀러 ‘취객선비 3인방 변색 잔 세트’도 2023년 뮷즈 정기 공모에서 선정된 상품이다. 온도에 따라 색이 변하는 시온 안료를 사용했다. 차가운 음료를 따르면 선비의 얼굴이 붉게 변하는 유리잔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평안감사향연도’에서 선비의 모습을 따왔다. 이 작품을 응모한 이는 대기업에 다니는 30대 여성 창작자였다. 변색 잔 세트가 히트를 쳤고, 현재 그는 자신의 브랜드를 운영하는 대표가 되었다. 김미경 본부장은 “공모작을 기획한 분들은 문화유산을 사랑하는 마음이 무척 크다. 열정을 갖고 몰입하는 창작자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유물이 대략 43만 점 있다. 전시실에서 실제 볼 수 있는 유물은 1만 점가량이다. 현재 상품관에는 3000종에 가까운 상품이 있다. 해마다 300종 내외 신상품을 선보인다. 새 전시가 열리기 전에 뮷즈 기획자들은 학예연구사 등에게 전시 콘셉트가 무엇인지, 어떤 유물이 핵심 메시지를 담았는지 설명을 듣는다. 뮷즈 기획자는 학예연구사의 언어를 관람객이 손에 쥐고 싶어 할 만한 상품으로 풀어낸다. 최근 뮷즈 기획 이야기를 담은 신간 〈오늘의 감각〉에서 김미경 본부장은 이렇게 썼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이 문화유산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만들 수 있을까. 그 질문과 대답의 집합이 전시라면, 상품은 전시의 마지막 장면이다.” 그 덕분에 마지막 장면이 꽤 근사해졌다. 오래 곁에 두고 싶을 만큼.
차형석 기자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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