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해고 승무원, 열차팀장으로 돌아오다 [사람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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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4월1일 KTX가 개통했다. 코레일이 위탁업체를 다시 KTX관광레저라는 자회사로 바꾸려 했을 때, 승무원 370여 명은 계약을 거부하고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2006년 3월1일 파업에 들어갔다.
2018년 11월 김승하씨를 포함한 28명, 2019년 7월 60명, 2019년 12월 50명 등 해고 승무원 총 138명이 코레일로 돌아갔다. 해고 승무원들은 KTX 승무원이 아닌 역무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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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4월1일 KTX가 개통했다. 1기 승무원 351명 모집에 젊은 여성 4600여 명이 몰렸다. 김승하씨(47)도 그중 한 명이었다. 당시 채용 홍보 영상에서는 ‘계약직 사원으로 모집하지만, 1년 계약 후에는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했다. 그러나 국가기관이던 철도청이 공기업 코레일로 전환된 후에도 승무원들은 철도청 유관기관 홍익회에서 자회사 철도유통 소속으로 바뀌었을 뿐 여전히 계약직이었다. 코레일이 위탁업체를 다시 KTX관광레저라는 자회사로 바꾸려 했을 때, 승무원 370여 명은 계약을 거부하고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2006년 3월1일 파업에 들어갔다. 같은 해 5월, 코레일은 새 자회사에 끝까지 복귀하지 않은 승무원 280여 명을 해고했다.
처음 370여 명이던 파업 인원 가운데 끝까지 싸운 34명이 2008년 11월, 코레일을 상대로 근로자 지위보전 및 임금지급 소송을 냈다. 2010년 8월 1심, 2011년 8월 2심은 승무원들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2015년 2월 대법원은 승무원들이 코레일 노동자라고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1·2심 소송에서 이긴 승무원들은 과거 4년간 고용된 것으로 인정돼 코레일로부터 받은 임금과 소송비용 1인당 8640만원을 토해내야 할 처지에 몰렸다. 그해 3월, 해고 승무원 박 아무개씨가 세 살 난 딸과 남편이 잠든 새벽, 가족과 함께 살던 아파트에서 몸을 던졌다. 해고 승무원이 코레일 직원이 아니라고 했던 그 대법원 판결을, 양승태 대법원이 ‘정부 운영에 기여한 판결’이라고 언급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사법농단이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7월 해고 승무원들은 복직에 합의했다. 2018년 11월 김승하씨를 포함한 28명, 2019년 7월 60명, 2019년 12월 50명 등 해고 승무원 총 138명이 코레일로 돌아갔다. 단, 코레일은 지금도 KTX 승무 업무를 자회사 코레일관광개발에 위탁하고 있다. 해고 승무원들은 KTX 승무원이 아닌 역무원이 됐다.
철도노조 KTX열차승무지부장을 맡아 긴 싸움을 이끈 김승하씨는 ‘철밥통 되고 싶어서 떼쓰는 거 아니냐’는 시선을 온몸으로 맞아왔다. ‘KTX로 돌아가고 싶습니다’라고 외치며 버텨온 시간을 증명하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KTX로 돌아갈 수 있는지 찾아봤고, 열차팀장이 되기 위한 경력을 쌓고 시험을 봤다. 지난 8월24일부터 KTX 열차팀장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2006년 3월1일 파업 이후 20년 만이다. “내쫓긴 나의 일터에 당당하게 돌아왔다는 실감이 나더라고요. 그만두더라도 내 발로 그만두자, 타인의 의지로 끌어내려지는 건 용납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결혼해 딸아이를 낳고 나서, 대법원 판결로 잃은 동료를 많이 생각했다. 그는 “세 살 아이를 두고 떠나는 게 어떤 마음일지 상상이 안 돼요. 얼마나 힘들면 그렇게 되는 건지…”라며 눈물을 보였다. 자신들에게 첫 월급을 후원했다던 고 이한빛 PD를 비롯해 마음을 보태준 시민들에게 항상 감사해한다. 그들 중 누군가를 언젠가 KTX에서 만나길 기다리며 승무하고 있다.



전혜원 기자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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