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비료·연료 생산 효율 높일 새 단서…금속 원자 배열에서 찾았다
백금 표면 분자 결합 원리 밝혀

국내 연구진이 화학비료나 연료를 더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는 새로운 과학적 단서를 발견했다. 화학제품 생산과 에너지 산업에 널리 쓰이는 금속 촉매 표면에서 분자가 맞닿는 부분뿐 아니라 수 나노미터 떨어진 곳의 원자 구조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30일 기초과학연구원(IBS) 양자나노과학 연구단과 독일 막스플랑크 다학제과학연구소 공동 연구팀이 이 같은 연구 결과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고 밝혔다.
화학비료나 연료를 만들려면 여러 물질을 서로 반응시켜야 한다. 이때 화학 반응이 더 빠르고 쉽게 일어나도록 돕는 물질이 촉매다. 대표적인 화학비료 원료인 암모니아를 생산할 때는 금속 촉매가 사용된다. 질소와 수소가 암모니아로 바뀌는 반응을 돕는 역할이다.
금속 촉매가 제 역할을 하려면 먼저 반응에 필요한 분자가 금속 표면에 달라붙어야 한다. 이때 너무 약하게 붙으면 반응이 잘 일어나지 않고, 너무 강하게 붙으면 반응이 끝난 뒤에도 쉽게 떨어져 나오지 않는다. 분자가 달라붙는 힘을 적절하게 조절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주로 분자가 직접 맞닿는 자리의 원자 구조에 주목해 이 힘을 조절하는 방법을 연구해 왔다. 하지만 연구진은 분자가 직접 닿지 않는, 조금 떨어진 곳의 원자 배열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 실험에 나섰다.
연구진은 대표적인 금속 촉매 중 하나인 백금 표면을 원자들이 계단처럼 쌓인 형태로 만들었다. 이후 계단 사이의 간격을 바꿔가며 암모니아, 일산화탄소, 일산화질소 분자가 달라붙는 힘을 측정했다.
그 결과 분자가 달라붙는 자리의 구조가 똑같아도 다른 계단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느냐에 따라 붙는 힘이 달라졌다. 영향이 미치는 거리는 약 4~7나노미터(㎚·10억분의 1m)로, 원자 수십 개를 나란히 늘어놓은 정도 거리였지만, 분명한 차이를 확인한 것이다.
연구진은 금속 속에 넓게 퍼져 있는 전자들이 이런 현상을 일으킨다고 분석했다. 금속 내부의 전자들은 특정 원자 하나에 갇혀 있지 않고 넓은 영역에 퍼져 있다. 이 때문에 멀리 떨어진 원자의 배열도 분자가 달라붙는 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는 금속 표면의 원자 배열을 정교하게 조절하면 원하는 화학 반응이 더 잘 일어나도록 촉매를 설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다만 실제 화학비료나 연료 생산의 효율을 얼마나 높일 수 있을지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연구를 이끈 드미트리 보로딘 IBS 그룹리더는 “과거 촉매 개발은 오랜 실험과 시행착오에 의존했지만, 이제는 화학 반응의 원리를 바탕으로 원하는 특성을 예측하고 설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며 “이번 연구가 보다 효율적인 촉매 설계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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