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타냐후 남아도, 떠나도 달라지는 건 없다” 버티는 것 말곤 선택지 없는 팔레스타인의 현실[이스라엘 르포]

조형국 기자 2026. 10. 29. 14:2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의 정치학자 가산 카티브 박사(72)가 28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라말라의 예루살렘미디어커뮤니케이션센터(JMCC)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라말라|조형국 기자

역대급 투표율을 기록하며 세계의 시선을 끈 이스라엘 정치는 총선 이후 안개 속을 걷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집권 연정은 과반을 달성할 돌파구가 없고, 반네타냐후 진영 역시 아랍계 정당의 손을 잡지 않으면 집권이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평생 이스라엘 정치·사회를 연구해온 팔레스타인의 정치학자 가산 카티브 박사(72)는 28일(현지시간) 서안지구 라말라의 정치·여론 연구기관 예루살렘미디어커뮤니케이션센터(JMCC)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나 “당분간 네타냐후의 시간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반네타냐후 진영의 반전 가능성이 반짝 관심을 불렀지만 오랜 기간 이스라엘이 걸어온 우경화·급진화의 흐름을 뒤집기는 어려웠다는 진단이다. 그는 “팔레스타인에 가장 중요한 건 이스라엘 선거 결과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정착촌 확대와 정착민 테러”라고 했다. 1시간 동안 이어진 인터뷰에서 그는 이스라엘의 우경화, 정착촌 확장의 문제, 팔레스타인 정치의 향방을 차례로 짚었다.

카티브 박사는 이번 선거 결과가 이스라엘이 오랜 시간 걸어온 길의 연장선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스라엘의 우경화·급진화는 사반세기 전부터 점진적으로 이어져 왔다”며 “지난 30년간 의회(크네세트)와 내각 구성은 이전보다 우파적이었고, 이런 변화는 2023년 10월7일 이후 빨라졌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사례는 두 국가 해법을 둘러싼 담론의 변화다. 그는 “25~30년 전 이스라엘 선거에서는 ‘팔레스타인 국가’에 대한 찬반이 논쟁이 됐다. 지금은 논쟁 자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총선의 쟁점이 초정통파(하레디)의 병역, 네타냐후 집권 연정의 정치적 부패, 사법부 독립성 등 내부 문제에 국한됐을 뿐, 팔레스타인 문제는 테이블에 오르지조차 않았다는 것이다. 네타냐후 총리든, 야권 수장 가디 아이젠코트 야샤르당 대표든 진영을 막론하고 두 국가 해법이나 팔레스타인 자립과 거리를 두는 상황도 궤를 같이한다.

그는 당분간 네타냐후 총리가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상대 진영의 이탈을 유도해 집권하든, 일각에서 제기된 네타냐후·아이젠코트 대연정을 구성하든, 혹은 어느 쪽도 정부를 구성하지 못해 재선거로 가든 “세 시나리오 모두 네타냐후는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일한 대안인 반네타냐후 진영과 아랍계 정당의 연정 역시 지지층 이탈이나 유대계 정당 반발 등으로 실현이 불투명하다.

그는 반네타냐후 연정의 집권이 실현된다고 해도 큰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누가 집권하든 정착촌 확대는 계속될 것이며, 두 국가 해법은 배제되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는 소외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스라엘의 우경화와 맞물려 팔레스타인의 장래는 더 어두워지고 있다. 카티브 박사는 오는 11월28일로 예정됐다가 최근 연기된 팔레스타인 총선이 “1년 후에도 열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의 방해, 허약한 팔레스타인 정치 체제 등 현실의 여건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팔레스타인의 민심은 이를 이미 내다보고 있었다. 정부의 선거 연기 발표 몇 주 전 JMCC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3분의 2가 “선거를 치를 수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스라엘의 탄압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의 무능 아래 팔레스타인의 민심은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다. 10·7 참사 이후 이어진 전쟁에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지지는 추락했다. 대중 지지가 가장 강한 팔레스타인 지도자 마르완 바르구티(67)는 23년째 이스라엘 감옥에 수감 중이다. 유럽 등 국제 사회는 PA의 총선 연기를 비판했지만, 총선을 치를 여건을 보장하라고 이스라엘을 압박하지는 않았다. 그는 “선거가 없어서 팔레스타인 지도부는 신뢰와 정당성을 잃었다”고 말했다.

28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요르단강 서안지구 베이타 마을에서 이스라엘 불도저가 팔레스타인 수감자 이브라힘 압둘 카림 다우드의 집을 철거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정착촌 확대·정착민 폭력…팔레스타인 선택지는 ‘버티기’뿐

카티브 박사는 선거보다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의 정착촌 확장과 정착민의 공격이 이어지는 현재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극우 정치권의 주도 아래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을 가능한 한 작은 땅에 몰아넣으려 하고 있다”며 이를 새로운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정책)라고 규정했다. 그는 “1948년 이스라엘 건국 과정에서 펼쳤던 정책이 재현되고 있다”며 “요르단강에서 지중해에 이르는 팔레스타인 영토 전체를 이스라엘이 직접 통제하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이 대대적인 저항에 나설 가능성은 작다. 그는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이 우리를 없애려는 구실을 찾을 것이라 믿고 있다”고 했다. 그는 “대중은 폭력적 대응을 할 때가 아니라고 느낀다”며 “팔레스타인은 압박을 견디고 지금의 자리를 지키며 극단적인 이스라엘 정부에 구실을 줄 행동을 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동을 비롯한 국제 정세에서 팔레스타인은 더 소외되고 있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 사우디아라비아와 예멘 내 친이란 무장세력 후티 반군의 군사 충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국제 사회가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여할 여력은 찾기 어렵다.

카티브 박사가 제시한 사실상의 유일한 희망은 ‘국제 사회의 관심과 변화’였다. 그는 “이번 미국 중간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영향력이 줄고 2년 뒤 대선에서 다른 지도부가 들어서면 유럽과 미국이 모두 지금 같은 이스라엘의 만행을 좌시하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미국의 선거에서 변화의 단초를 찾는 그의 분석에서는 오랜 시간 누적돼온 팔레스타인의 열패감이 묻어났다. 이스라엘은 이번 선거에서 미래를 선택했지만, 이스라엘의 통제 아래 놓인 팔레스타인에는 딴 세상 얘기다.

“지금 시기에는 굳건히 버티는 것 말고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그의 진단에서 팔레스타인이 미래를 택할 기회는 보이지 않았다.

라말라 | 조형국 기자 situation@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