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다리 잃고 ‘킬존’서 9개월 우크라 보병, 드론이 구출

이철민 기자 2026. 10. 29.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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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화물운송 드론 개조해 15㎞, 1시간여 날아 안전지역으로 후송
러 드론 공격으로, 구조대·교대 병사 계속 죽어 투입된 지 491일 만에 구조돼
전장에서 드론으로 부상병 구조해낸 첫 케이스
드론 구출 -네이버용

우크라이나 북동부 쿠피안스크는 러시아가 확보하려고 수개월간 싸우고 있는 군사·교통 요충지다. 워낙 치열하다 보니, 움직이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늘에 떠 있는 양쪽의 수많은 드론 떼의 공격을 받아 어느 쪽도 옴짝달싹조차 못하는 이른바 ‘킬존(kill zone·살상지역)’이다. 주변은 대전차 ·대인지뢰가 빽빽하게 매설됐다.

지난 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북동부 쿠피안스크에서 우크라이나군이 대형 드론을 이용해 최전선 참호에 491일간 고립돼 있던 병사 코스티안틴 블라센코를 안전 지역으로 후송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정부X

전쟁 전 광부로 일하다가 자원 입대한 49세의 우크라이나군 병사 코스티안틴 블라센코는 동료 한 명과 함께 작년 6월 이곳의 한 최전선 참호에 투입됐다. 적의 움직임을 무전으로 알리는 임무를 맡았다.

그러나 지난 2월 중순 동료가 우크라이나군 드론이 투하한 마른 옷과 식량 꾸러미를 주우러 나갔다가 러시아군 드론에 노출돼 폭탄에 맞아 죽었고 자신도 두 다리에 큰 부상을 입었다.

결국 블라센코는 동상과 괴저로 인해 4월에 왼발을 잃었고, 5월에는 폭격으로 폐허가 된 한 학교의 보일러실에서 오른발을 직접 잘라냈다. 살기 위해선, 이 방법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군이 블라센코를 구조해낼 방법이 없었다. 사실 블라센코와 숨진 동료 병사는 작년 가을에 교대될 계획이었지만, 교대할 병사 2명이 이동 중에 드론 공격으로 죽었다. 또 이들의 시신을 수습하러 가던 우크라이나군 병사 2명도 사망했다.

이후 우크라이나군은 지상 무인차량으로 블라센코에서 접근하려 했지만, 2대 모두 러시아군 드론에 파괴됐다.

최전선 참호에 투입된 지 491일만에 공중 드론으로 구조된 우크라이나군 제92독립강습여단 소속 병사 코스티안틴 블라센코. 하르키우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결국 블라센코는 동료가 죽은 뒤 9개월간 혼자 전우들이 드론으로 보낸 항생제와 진통제, 소독제, 배터리, 음식, 물 등으로 버티면서 임무를 수행해야 했다. 전우들은 담배·스니커즈 초콜릿바·환타 등 기호품도 계속 보냈고, 아내가 블라센코가 좋아하는 스티븐 킹의 소설을 보급품에 넣어 보내주기도 했다.

하지만 블라센코의 구조는 공중 후송만이 유일한 선택지였다. 우크라이나군은 10월4일을 D데이로 잡고 인근 4개 여단이 수개월간 구조 작전 계획을 짰다.

구조일을 앞두고는 드론 한 대가 등산·구조용 하네스(harness)와 휴대전화를 블라센코에게 전달했다. 휴대전화에는 블라센코가 어떻게 구조용 고리를 이용해 자신의 몸을 드론의 권양기(捲揚機·winch)에 연결하는지를 알려주는 영상이 담겼다.

10월4일 우크라이나군의 대형 드론이 블라센코를 구조해 이동하는 장면. 드론에 장착된 카메라가 찍었다./로이터 연합뉴스

블라센코의 구조에 동원된 드론은 우크라이나 기업이 제작한 것으로, 최대 90㎏의 화물을 싣고 25㎞를 날 수 있는 회전날개(rotor)가 6개인 헥사콥터였다. 기체는 사람을 매달고 안정적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개조됐다. 전우들은 이미 16개월째 킬존에서 고립돼 살아온 블라센코의 몸무게가 70㎏을 넘지 않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리고 구조 당일, 전우들은 러시아군 드론을 속이고 구조 헥사콥터를 보호하기 위해 뱀파이어 폭격 드론 3대를 같이 띄웠고, 헥사콥터에 장착된 카메라와 스피커로 블라센코와 계속 얘기하며 이동 상황을 추적했다. 우크라이나군 드론 부대와 포 부대는 러시아군 드론의 이륙 지점으로 파악되는 곳을 2시간 집중 공격해 적의 접근을 막았다.

구조 드론은 약 152m 고도에서 15㎞를 날아 1시간 14분 뒤, 블라센코를 안전 지역으로 후송하는 데 성공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권혜인

이후 지상 이동용 드론이 그를 헥사콥터에 구급차로 옮기는 일을 맡았다. 전쟁 지역에서 이뤄진 세계 최초의 드론 구조 사례였다. 블라센코가 쿠피안스크 참호에 투입된 지 491일만이었다.

우크라이나군은 지난 23일 이 구조 사실을 처음 공개했다.

현재 인근 하르키우 병원에서 회복 중인 블라센코는 이달 중순 처음 언론에 이 사실이 공개된 뒤에 “드론이 나를 데리러 왔을 때의 그 구조 굉음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드론 조종사가 “나를 감자 자루처럼 들어 올린 게 아니라, 진짜 사람을 대하듯이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며 능숙한 조종 솜씨에 감사를 표했다. 다만 드론이 물 위를 지날 때에는 수영할 줄 모르게 때문에, 매우 불안했다고 한다. 그는 절단한 오른쪽 다리도 정강이뼈가 드러나, 고립됐을 때에 보급품을 받으러 기어 나가는 것도 매우 고통스러웠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군은 블라센코 구조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최소 3명 이상의 부상병을 대형 구조 드론을 투입해 후방으로 후송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Historic air CASEVAC: Servicemen of the 475th Assault Regiment CODE 9.2 evacuated two heavily wounded soldiers by air from the gray zone using the #StarGate UAV by @SkyFall.

Ground access was cut off. The drone flew ~60 km under heavy EW, navigating via onboard #AI. Lives saved… pic.twitter.com/5tqYFNKa8F— SkyFall (@SkyfallUA) October 26, 2026

우크라이나군은 또다른 드론 제조사인 스카이폴(SkyFall)의 스타게이트(StarGate) 드론을 이용해, 러시아 국경에서 5㎞ 떨어진 곳에서 중상을 입은 병사 2명을 후송했다<화면>. 구조 작전 당시 러시아군의 GPS 교란 공격을 받았지만, 이 드론은 인공지능(AI) 보조 항법 기술을 활용해 비행 경로를 유지하며 왕복 약 60㎞ 를 비행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20일 노르웨이에서 가진 한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전쟁에서 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사람들을 잃고 있다”며 “우크라이나는 사람들을 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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