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의 생물학] 대뇌피질 없는 까마귀, 파리, 원숭이의 같은 계산

김우재 하얼빈공대 생명과학센터 교수 2026. 10. 29.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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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은 어디에서 오는가. 생물학을 처음 배우던 시절 나는 이 질문의 답이 당연히 대뇌피질에 있다고 생각했다.

원숭이의 두정엽, 까마귀의 니도팔리움, 십 수만 개 뉴런으로 된 파리의 뇌.

오늘 연구실에서 냄새 사이를 오가는 파리를 보며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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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 없는 새의 뇌와 파리 뇌가 원숭이의 '증거 모으기'를 닮은 이유
냄새 사이를 오가는 파리를 보며 이 작은 뇌가 망설이는 몇 초 안에, 까마귀의 235밀리초와 원숭이의 느린 고민이 함께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김우재 제공, AI 생성 이미지

판단은 어디에서 오는가. 생물학을 처음 배우던 시절 나는 이 질문의 답이 당연히 대뇌피질에 있다고 생각했다. 주름진 회색 껍질, 여섯 겹으로 쌓인 신경세포의 층, 그 앞쪽 끝의 전전두엽. 교과서의 그림은 언제나 인간과 원숭이의 뇌였다. 대학원 시절, 생물학을 종교적 이론의 틀로 왜곡하던 교수는, 원숭이의 뇌와 돌고래의 뇌가 완전히 다르다며 신의 섭리를 설파하는 증거로 대뇌피질의 위대함을 꼽았다.

그런데 초파리 연구실에서 오래 일하다 보면 이런 구도가 조금씩 낯설어진다. 파리는 피질이 없다. 그래도 두 종류의 다른 냄새 앞에서 망설이고, 어려운 문제일수록 더 오래 고민한 뒤 고른다. 지난주 사이언스(Science)에 실린 까마귀 연구는 그 낯섦에 결정타를 날렸다. 피질이 없는 새가 원숭이의 고전 과제를 원숭이보다 두 배 빨리 풀었다는 것이다.

같은 주에 한 진화신경과학자의 부고가 나왔다. 뇌의 모양을 '적응'이 아니라 '발생의 시간표'로 읽자고 평생 주장한 바버라 핀레이다. 오늘은 까마귀와 파리와 원숭이를 한자리에 놓고, 핀레이의 눈으로 그 셋을 다시 읽어 보려 한다.

● 원숭이의 점, 까마귀의 점

원숭이 의사결정 연구에는 오래된 표준 과제가 있다. 화면에 흰 점들이 흩날리는데, 대부분은 제멋대로 움직이고 일부만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함께 흐른다. 동물은 그 흐름의 방향을 맞춰야 한다. 함께 움직이는 점이 적을수록 문제는 어려워진다.

이 단순한 과제로 신경과학자들은 판단이 한순간의 활성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었다. 두정엽의 한 영역(LIP) 뉴런들은 점이 보여 주는 흐릿한 증거를 조금씩 쌓아 올리다가, 활동이 어떤 문턱에 닿으면 원숭이가 눈을 움직여 답했다. 증거를 모으고, 문턱을 넘으면 행동한다. 이것이 지난 30년 가까이 의사결정의 신경과학을 이끈 그림이다.

독일 튜빙겐대 안드레아스 니더 교수 연구팀은 이 과제를 송장까마귀 두 마리에게 가르쳤다. 까마귀는 흐름과 같은 쪽 화면을 쪼면 밀웜을 받았다. 수천 번의 시행에서 까마귀가 정답을 고른 평균 시간은 약 235밀리초, 정확도는 약 74%였다. 같은 과제를 한 영장류의 반응 시간의 절반쯤 이다.

더 놀라운 것은 뇌 안의 신호였다. 자극이 나타나고 70밀리초 만에, 수백 개 뉴런의 활동이 까마귀가 어느 쪽을 고를지 미리 알려 주었다. 물론 까마귀는 두 마리 뿐이고, 다룬 것은 눈에 보이는 증거의 판단이지 가치를 저울질하는 선택이 아니다. 그래도 두 개체의 결과는 놀랄 만큼 일관적이었다.

● 층 없는 뇌가 내린 결정

까마귀의 뇌에는 포유류의 여섯 층 신피질이 없다. 새의 대뇌 외투(pallium)에서 신경세포는 층 대신 핵이라 부르는 덩어리로 모여 있다. 새와 포유류의 조상이 갈라진 것은 3억 년도 더 전의 일이다.

니더 연구팀이 판단 신호를 찾은 곳은 꼬리쪽 외측 니도팔리움(NCL)이다. 생김새는 전혀 다르지만, 기능으로 보면 영장류의 전전두엽에 비견되는 영역이다. 비유하자면 다른 칩에서 같은 프로그램이 돌고 있었던 셈이다.

왜 까마귀가 더 빠를까. 니더는 몇 가지 가능성을 들었다. 뇌가 작아 배선이 짧고, 같은 부피에 뉴런이 영장류보다 두세 배 빽빽하며, 체온이 높다는 점이다. 그는 이것이 "완전히 열려 있는 연구 과제"라고 못박았다.

여기서 나는 진화생물학의 오래된 구분을 떠올린다. 같은 조상에게서 물려받아 닮은 것과, 따로 출발했지만 같은 문제를 풀다가 닮게 된 것은 다르다. 새의 외투와 포유류의 피질이 어디까지 같은 뿌리인지는 아직 논쟁 중이다. 다만 어느 쪽이든, 판단이라는 계산이 층 구조라는 특정한 모양에 묶여 있지 않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 파리도 망설인다

피질 없는 뇌의 판단이라면 초파리가 먼저다. 2014년 옥스퍼드대 게로 미센뷰크 연구실의 샤미크 다스굽타 등은 Science에 파리의 지각 판단을 보고했다. 파리에게 한 농도의 냄새를 피하도록 가르친 뒤, 좁은 통로 양쪽에서 농도가 다른 두 냄새를 흘려보내 고르게 했다.

두 농도의 차이가 크면 파리는 빨리, 거의 틀리지 않고 골랐다. 차이가 작아지면 훨씬 오래 머물렀고 더 자주 틀렸다. 원숭이와 사람의 판단에서 보이던 속도와 정확도의 맞바꿈이 파리에게도 있었던 것이다. 연구팀은 사람과 영장류에 쓰던 '증거 축적' 모형이 파리의 행동에도 잘 맞는다고 보았다.

이 연구가 초파리유전학자에게 특별한 이유는 분석의 단위가 유전자까지 내려갔다는 데 있다. FoxP 유전자가 망가진 파리는 어려운 판단에서 더욱 오래 걸렸고, 마치 결정을 못 내리는 것처럼 보였다. 연구팀은 그 역할을 파리 뇌의 약 200개 뉴런 무리까지 좁혔다. 사람의 언어 장애와 연결돼 유명해진 유전자 계열이다.

이제 세 장면을 나란히 놓아 보자. 원숭이의 두정엽, 까마귀의 니도팔리움, 십 수만 개 뉴런으로 된 파리의 뇌. 하드웨어는 제각각 인데 '증거를 모으다 문턱을 넘으면 행동한다'는 알고리즘은 닮았다. 다만 세 종의 과제와 감각이 다르니, 반응 시간을 같은 자로 재는 일은 조심해야 한다.

● 핀레이의 질문: 정말 '빠르기 위해' 생겨났을까

여기서 쉽게 나오는 설명이 있다. 까마귀는 빠르게 판단해야 살아남아서 빠른 뇌를 갖게 됐다는 설명이다. 진화생물학에서 이런 생각을 적응주의라고 부른다. 그럴듯하지만, 바버라 핀레이라면 여기서 멈춰 서라고 했을 것이다.

핀레이는 지난 9월 12일 75세로 세상을 떠났다. 코넬대에서 40년 가까이 뇌의 발생과 진화를 연구한 그는 1995년 동료 리처드 달링턴과 함께 Science에 논문 한 편을 냈다. 영장류와 박쥐, 식충류 131종의 자료를 모아 보니, 연수에서 전뇌까지 각 뇌 영역의 크기가 전체 뇌 크기로 잘 예측됐다. 발생 순서는 포유류 전체에서 보존돼 있었고, 늦게 만들어지는 영역일수록 뇌가 커질 때 더 크게 자랐다.

이 결과가 뒤흔든 것은 '필요한 부분만 켜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핀레이와 달링턴은 어떤 능력에 대한 선택이 한 영역을 키우기보다 뇌 전체를 함께 키웠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다. 진화는 설계도를 마음대로 고치는 기술자가 아니라, 발생이라는 시간표 안에서만 움직일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눈으로 까마귀를 다시 보면, 작고 빽빽한 뇌는 빠른 판단을 위해 골라진 결과가 아닐 수도 있다. 날기 위해 몸을 가볍게 해야 했던 새의 발생 방식이 허락한 범위 안에서 만들어졌고, 빠른 속도는 그 구조가 덤으로 준 것일지도 모른다. 이것은 근거가 아니라 질문이다. 하지만 좋은 질문은 성급한 설명보다 오래간다.

● 같은 계산, 다른 뇌

세 종을 한자리에 놓으면 두 가지가 동시에 보인다. 하나는 판단이라는 계산이 진화에서 여러 번 다시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다른 하나는 그 계산을 담은 그릇의 모양이 기능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 둘을 함께 봐야 뇌를 제대로 비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글에서 나는 사회적 함의 하나를 덧붙이고 싶다. 판단을 피질의 전유물로 여기는 생각은 오랫동안 인간을 사다리의 꼭대기에 올려 놓는 사고와 이어져 있었다. 까마귀와 파리는 그 사다리 대신 나뭇가지를 보여 준다. 모델생물 연구가 하나의 종에 머물러서는 안 되는 이유도, 연구비가 인간 질병과 가까운 동물에만 몰려서는 안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것은 나의 주장이다.

핀레이는 여러 종의 발생 사건을 하나의 시간 축에 맞추는 일을 평생 이어 갔다. 2013년 18종 포유류의 271개 사건이던 그 표는, 후배가 이어받아 지금 약 1000개 사건으로 늘었다고 한다. 여러 연구실의 자료를 모아 모두가 쓸 수 있는 비교의 자를 만든 일이다. 나는 그것이 어느 논문보다 큰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연구실에서 냄새 사이를 오가는 파리를 보며 나는 생각한다. 이 작은 뇌가 망설이는 몇 초 안에, 까마귀의 235밀리초와 원숭이의 느린 고민이 함께 들어 있다고. 생명이 같은 문제에 서로 다른 몸으로 답해 왔다는 것, 나는 그것이 생물학의 낭만이라고 믿는다.

※참고자료
Nieder A. 연구팀, 까마귀 지각 의사결정 논문. Schmidbauer P, Nieder A. Ultrarapid decision-making in an avian brain. Science. 2026 Oct 22;394(6822):445-449. doi: 10.1126/science.aed6459. Epub 2026 Oct 22. PMID: 42912155.
DasGupta S, Ferreira CH, Miesenböck G. FoxP influences the speed and accuracy of a perceptual decision in Drosophila. Science. 2014 May 23;344(6186):901-4. doi: 10.1126/science.1252114. PMID: 24855268; PMCID: PMC4206523.
Finlay BL, Darlington RB. Linked regularities in the development and evolution of mammalian brains. Science. 1995 Jun 16;268(5217):1578-84. doi: 10.1126/science.7777856. PMID: 7777856.
Roitman JD, Shadlen MN. Response of neurons in the lateral intraparietal area during a combined visual discrimination reaction time task. J Neurosci. 2002 Nov 1;22(21):9475-89. doi: 10.1523/JNEUROSCI.22-21-09475.2002. PMID: 12417672; PMCID: PMC6758024.
 

김우재 하얼빈 공대 생명과학센터 교수

※필자소개
김우재
. 초파리 유전학자. 하얼빈공업대학 생명과학센터(HCLS) 교수. 바이러스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나, 마음속 깊은 곳에 품어온 동물행동학의 꿈을 초파리 행동유전학 연구로 꽃피우고 있다. 초파리의 교미 시간을 통해 생명체의 시간 인지 메커니즘을 추적해왔으며, 이제 그 시선을 실험실 너머 생태계로 확장 중이다. 초파리 유전학이라는 강력한 플랫폼을 통해 기후 위기 시대의 꽃가루 매개자인 꿀벌을 살리고, 나아가 곤충과 인간이 공존하는 생태계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다. 이 작은 초파리들로 언젠가 세계를 정복하겠다는 낭만적이고도 야무진 꿈을 꾸며 산다. 저서로 《보통 과학자》, 《플라이룸》 등이 있다.

[김우재 하얼빈공대 생명과학센터 교수 heterosis.k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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