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잘 나가던 볼보에 닥친 위기…‘퍼스트 펭귄’의 저주인가[딥다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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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자동차 위기의 진원지가 독일 폭스바겐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볼보의 실적이 추락했단 이야기, 아마 실감 나지 않는 분들 많을 거예요.
그럼 도대체 볼보는 어디에서 수렁에 빠지게 된 걸까요. 그보다 볼보를 위기로 몰아넣은 진짜 주범은 사실 따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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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자동차 위기의 진원지가 독일 폭스바겐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훨씬 가파르게 추락 중인 브랜드가 있죠. 바로 스웨덴 볼보인데요.
비관적 예측마저 뛰어넘는 최악의 3분기 실적을 기록한 볼보. 4년여 만에 주가는 88% 추락했고, 이대로 가면 조만간 유동성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는데요. 안전과 신뢰의 대명사 볼보는 어쩌다 유럽차 실패 사례로 떠올랐을까요. 위기에 빠진 볼보를 들여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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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인 3분기 실적
나쁜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10월 23일 발표된 볼보의 3분기 실적은 충격 그 자체였죠. 분기 매출은 1년 전보다 23% 줄었고, 영업이익은 56억 크로나(약 7500억원) 적자인 데다, 무엇보다 석 달 만에 89억 크로나(약 1조2000억원)의 현금이 유출됐어요. 그 결과, 9개월 만에 순현금 보유액이 269억 크로나(3조6000억원)에서 10억 크로나(1334억원)로 쪼그라들었죠. 가용 현금이 갚아야 할 부채와 거의 맞먹는 수준으로 줄었단 뜻입니다. 한델스방켄의 함푸스 엥겔라우 애널리스트는 이렇게 경고합니다. “이런 상황이 두 분기 더 지속된다면 볼보는 추가 자본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해법은 또 구조조정입니다. 지난해 이미 3000명을 감축했던 볼보는 2500명 추가 감원을 발표했죠. 1년여 만에 전체의 10%가 넘는 인력을 정리하는 거예요. 이번 추가 감원 중 약 2000명은 스웨덴의 사무직과 연구소 인력이 될 거라고 하죠.

그런데 볼보의 실적이 추락했단 이야기, 아마 실감 나지 않는 분들 많을 거예요. 볼보가 한국 시장에선 상당히 잘 나가는 수입차 브랜드이거든요. 최근엔 8년 연속 1만대 판매 기록을 세웠을 정도인데요.
그럼 도대체 볼보는 어디에서 수렁에 빠지게 된 걸까요. 3분기 지역별 판매 대수를 확인해 보면, 역시 현지 전기차 브랜드와의 판매 경쟁이 치열한 중국 시장(-43%)에서 가장 크게 줄었고요. 관세의 직격탄을 맞은 미국(-9%)에서도 판매 감소가 뚜렷한데요. 하지만 중국 전기차 시장의 치열한 경쟁이나 미국 관세 여파는 사실 다른 브랜드도 다 겪고 있는 일이니, 특별할 게 없고요. 그보다 볼보를 위기로 몰아넣은 진짜 주범은 사실 따로 있습니다. 바로 볼보 그 자신이죠.
중국에 넘어간 볼보의 반전
볼보는 거의 100년 전인 1927년 스웨덴 볼베어링 제조사 SKF의 사내 벤처 프로젝트로 탄생했죠. 스웨덴의 거친 기후와 험한 도로를 버텨낼 튼튼한 자동차를 만들자는 데서 출발한 기업인데요. 볼보가 1959년 3점식 안전벨트를 개발하고도 이 특허를 무상으로 공개한 건 유명한 얘기입니다. ‘안전과 신뢰’는 볼보의 DNA로 자리 잡았는데요.
볼보의 운명은 그리 순탄치 않았습니다. 1999년 미국 포드에 팔렸지만, 이후 적자를 내는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고요. 2010년 금융위기로 휘청거리던 포드가 볼보를 헐값(18억 달러)에 내다 팔았죠. 이 볼보를 인수한 건 바로 중국 지리자동차였습니다.
‘중국 자본이라니, 볼보의 프리미엄 브랜드로서의 가치도 이제 끝이구나.’ 솔직히 모두가 이렇게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놀라운 반전이 펼쳐집니다. 지리그룹은 볼보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는 동시에 자율성을 부여했죠. 그냥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둔 거예요. 덕분에 볼보 엔지니어들은 포드 시절엔 만들지 못했던 독자 플랫폼(SPA)을 마음껏 개발할 수 있었고요. 2015년 출시된 신형 XC90이 전 세계적으로 대히트를 칩니다. 토르의 망치 모양을 본뜬 LED 헤드라이트는 볼보의 새로운 상징이 되었고요. 볼보는 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했죠.

하지만 너무 자신만만했던 걸까요. 2021년 3월 사무엘슨 CEO는 과감하다 못해 도박에 가까운 계획을 발표합니다. 바로 2030년까지 100% 순수 전기차만 판매하겠다는 계획이었죠. 내연기관차는 물론,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량까지 모두 단종하고 순수 전기차에 올인하겠다는 파격 선언이었습니다. ‘이제 전기차 시대’라고 보고 과감하게 베팅한 셈이었는데요.
2022년 3월, 10년의 임기를 마치고 물러난 사무엘슨 CEO의 뒤를 이은 건 가전기업 다이슨 출신인 짐 로완이었어요. 전기차 시대에 필요한 건 소프트웨어 혁신이라고 본 이사회가 비자동차 업계 출신을 파격적으로 발탁했죠.

아마 그땐 아무도 몰랐을 겁니다. 이 화려한 공개행사가 볼보에 닥친 재앙의 시작점이었단 걸요.
소프트웨어 재앙이 닥치다
2023년에 접어들자, 전기차 시장의 공기가 180도 달라집니다. 얼리어답터 시장에서 대중시장으로 넘어가기 직전의 골짜기, 이른바 ‘캐즘’이 닥친 거죠. 가팔랐던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가 눈에 띄게 둔화하기 시작했는데요.
각국 정부마저 태도가 돌변했습니다. 2023년 12월 유럽 최대 자동차 시장인 독일이 기습적으로 전기차 보조금을 전면 폐지했고요. 영국·프랑스·네덜란드도 줄줄이 전기차 정책을 후퇴시켰죠. 게다가 2025년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미국의 연방 세액공제 중단까지. 외부 환경이 온통 볼보의 ‘전기차 올인’ 전략과는 정반대로 흘러갔어요.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볼보 전동화 전략의 핵심인 플래그십 모델 EX90에 있었죠. 소프트웨어 개발 때문에 수차례 출시가 지연된 EX90은 결국 2024년 9월 미완성 상태로 세상에 나옵니다. 볼보가 자랑했던 최첨단 라이다 센서가 지붕에 달리긴 했는데, 이를 이용할 소프트웨어가 끝내 개발되지 않았어요. 또 각종 소프트웨어 오류가 속출했는데요. 주행 중 갑자기 ‘즉시 안전한 곳에 정차하시오’ 같은 엉터리 경고가 뜨거나, 인포테인먼트 디스플레이가 통째로 꺼져버리기도 했고요. 주차한 차량의 컴퓨터 시스템이 밤새 꺼지지 않은 바람에, 배터리가 방전되어 버렸죠. 심지어 고속도로에서 주행 중 ‘시스템 통신 오류’를 표시하며 차가 서버리는 위험한 상황까지 발생했어요.

테슬라는 하나의 중앙 컴퓨터가 차량의 모든 하드웨어를 통제하는 방식을 개척했죠. 그래서 테슬라 차량은 무선 업데이트만으로 완전히 새 차처럼 달라집니다.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을 추구한 볼보 역시 테슬라식의 중앙 컴퓨터 방식을 채택했어요. 그 방향 자체는 틀리지 않았죠.
문제는 볼보 엔지니어들이 이런 걸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볼보 같은 전통 완성차 제조사는 부품 협력사들이 부품별 소프트웨어까지 모두 제공하는 구조이고요. 엔지니어들은 150개에 달하는 이 작은 컴퓨터들을 조립해서 연결하는 일을 해왔는데요. 갑자기 전체 차량을 통합 제어하는 거대한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내라니, 그게 쉽게 될 리가 있나요. 소스코드가 뒤죽박죽으로 엉키면서 치명적 오류가 줄줄이 쏟아지고 말았죠.
그리고 이건 단순한 소프트웨어 개발 실패가 아닌, 볼보의 최대 강점인 ‘안전’에 대한 신뢰도마저 흔드는 문제였습니다. 게다가 미국은 수입차 관세를 대폭 올리고, 중국에선 토종 전기차 업체가 저가 공세를 펼치면서 외부 환경은 갈수록 악화일로였고요. 2025년 4월 볼보 이사회는 짐 로완 CEO를 경질합니다. 그리고 위기 관리를 위한 구원투수로 투입된 건? 3년 전 물러났던 전 CEO 호칸 사무엘손이었죠.
퍼스트 펭귄의 결말은?
결국 ‘퍼스트 펭귄’의 저주였습니다. 볼보는 완성차 업계에서 가장 빠른 ‘2030년 100% 순수 전기차 전환’을 선언하며 과감하게 치고 나갔는데요. 시장도, 기업 역량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과속한 바람에 문제가 터지고 말았죠.
여기엔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과거 볼보는 새로운 안전 기술을 도입할 때마다 수천 번의 충돌 테스트를 거쳐 완벽히 검증된 뒤에야 시장에 내놨거든요. 그 신중함이 지난 100년간 브랜드의 신뢰도를 지탱해 온 비결이었는데요. 그런데 유독 100년 만에 찾아온 전기차 전환이란 큰 변화에 있어서만은 정반대였어요. 조급하고, 과장되고, 무모했었죠.
또 다른 아이러니는 바로 그 도박에 가까운 미래 계획을 처음 내놨던 CEO가 이제 그걸 바로잡고 있단 점입니다. 호칸 사무엘손 CEO는 2025년 볼보에 돌아오자마자, 누더기 같은 1세대 소프트웨어(SPA2)를 폐기하고 전기차 판매 목표를 대폭 조정했어요. 이로 인해 무려 114억 크로나(1조5200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손상차손이 발생했고요. 동시에 강도 높은 구조조정으로 비용을 줄이기에 나섰습니다.

올해 초 유럽에서 출시된 EX60은 차세대 전기차 플랫폼(SPA3)을 기반으로 하는 중형 전기 SUV이고요. 무려 5만대의 주문이 몰렸을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볼보를 다시 일으켜 세워줄 효자 모델로 기대를 모았는데요.
그런데 웬걸. 주문은 쏟아졌는데, 차가 도통 안 나옵니다. 9월 말까지 인도된 차량이 고작 5000대 정도에 그쳤어요. 주당 2000대를 생산하겠다던 스웨덴 토르슬란다 공장에서 실제 생산되는 물량은 주당 200대뿐이죠.
왜 이러냐. 볼보가 야심 차게 도입한 ‘셀투바디(Cell-to-Body, C2B)’ 자동화 조립 공정 때문입니다. 셀투바디란 배터리 셀을 차체 하부 바닥과 하나로 합친 걸 말하죠. 보통 배터리는 셀 여러 개를 모아 모듈을 만들고, 모듈 여러개를 모아 팩으로 만들어 차량에 탑재하는데요. 모듈과 팩을 전부 생략한 겁니다. 그만큼 원가도 절감되고 무게까지 줄일 수 있어 훨씬 효율적인데요.

이에 대해 사무엘손 CEO는 이렇게 말합니다. “(셀투바디 자동화 공정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새로운 조립라인입니다. 저는 우리가 이 기술을 완벽하게 마스터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해요. 우리가 중앙 컴퓨팅 시스템 도입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제는 도입할 수 있게 된 것처럼요.”
지금의 고난은 학습의 과정일 뿐, 시간이 지나면 극복하게 될 거란 희망 섞인 이야기인데요. 판매부진과 현금 소진에 직면한 상황에선 걱정스럽기만 합니다.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 보이거든요. 과연 차가운 바다로 뛰어든 퍼스트 펭귄 같은 볼보 자동차는 이 겨울을 무사히 버틸 수 있을까요. By.딥다이브
*이 기사는 10월 28일(수요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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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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