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성희롱에도 “이용자 우선” 그저 참아야···왜 돌보는 사람은 돌보지 않나

누구나 생애 어느 시기에는 돌봄을 필요로 한다. 태어나 자라는 동안, 아프고 늙어가는 순간 타인의 돌봄이 삶을 지탱하고 사회를 꾸려간다.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며 돌봄은 국가의 ‘필수 노동’이 됐지만, 정작 우리 사회는 돌보는 사람을 돌보지 않는다. ‘사회적 약자’를 돌봐야 한다는 요구에 정작 돌봄 노동자의 권리는 자주 뒷전으로 물러난다. “그 순간 내게 선택지는 둘 뿐이었다. 대응을 해서 노인 학대로 몰리거나, 아니면 성추행 피해자가 되거나.” 9년차 요양보호사 이은복씨는 돌보던 환자에게 추행을 당했던 순간을 이렇게 표현했다.
성별화된 노동 구조는 돌봄을 전문성과 숙련을 갖춘 일 대신 여성의 헌신과 봉사의 영역으로 여기며 이들의 노동을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고용 구조에 묶어둔다. 앞으로 20년 뒤엔 국내 요양보호사가 99만명 부족해질 것이란 국책 연구기관 전망까지 나왔지만, 국가의 책임 강화보다 민간에 이를 떠넘기는 ‘돌봄의 외주화’로 양질의 돌봄 일자리는 줄어들고 있다.
이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최근 국가데이터처 경제활동인구조사 통계를 보면 2019년 이후 늘어난 비정규직 노동자 4명 중 3명은 돌봄 서비스를 담당하는 보건·사회복지업에 종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령화에 따른 돌봄 수요 확대에 따라 돌봄 일자리는 매년 늘고 있지만, 7년 새 늘어난 일자리의 74%는 비정규직이었다. 70만명에 이르는 요양보호사의 월 평균 임금은 지난해 기준 127만3000원에 그쳤다.
경향신문은 2023년 유엔이 지정한 ‘세계 돌봄의 날’(10월29일)을 맞아 공공운수노조와 함께 돌봄 현장에서 일하는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요양보호사, 간병사, 특수교육지도사, 노인생활지원사, 사회복지사 등 5개 직종 6명의 현장 노동자들이 모여 돌봄 노동자가 직면한 ‘일터 괴롭힘’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좌담회는 박경득 의료연대본부장의 진행으로 지난 22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열렸다.
“노인학대로 몰리거나, 피해에 속수무책 당하거나”
-본인 또는 주변에서 겪은 일터 괴롭힘 사례를 먼저 나눠봤으면 한다.
이은복(요양보호사) = 시설에서 근무하는 9년차 요양보호사다. 내가 일하는 곳에는 치매 등 질환을 앓고 있는 어르신이 많은데, 맞거나 성추행을 당해도 문제제기를 하기 쉽지 않다. 오히려 문제제기를 했을 때 비난 받는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은 두 시간마다 욕창 방지를 위해 체위 변경을 해야 한다. 두 손으로 어르신 몸을 지탱해야 해서 무방비 상태였는데, 그 순간 추행을 당했다. 뒤에는 벽이라 도망갈 수도 없었고, 그 분을 붙잡은 손을 놓으면 낙상될 수 있기 때문에 놓지도 못했다. 아픈 것보다 수치심과 두려움이 더 컸다. 혼자 거동을 못하는 힘 없는 노인에게 성추행 당했다고 하면 보호자도 기관도 믿어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시설에 얘기하니 폐쇄회로(CC)TV를 보자고 했고, 진단서를 제출했지만 공가를 내려면 3차 병원 진단서를 가져오라고 하더라. 정신적으로 힘들어 정신건강의학과에도 여러 차례 다녔다.
한영란(간병사) = 간병사로 일하면서 남성 환자에 의한 성희롱·성추행 피해를 많이 봐 왔다. 어떤 환자는 간병사가 병상 아래 간이침대에서 쉬고 있으면 ‘내 침대로 올라와서 같이 자자’고 한다. 또 어떤 환자는 간병사가 잠깐 졸면 ‘내가 24시간 돈 주는데 잠자지 말라’고 한다. 사람인데 어떻게 잠을 자지 말라는건가. 간병사는 환자와 1대1로 계약하는 구조여서 환자를 돌보다 다치거나 맞아도 병원의 보호나 산재 보상을 받을 수도 없다. 말 그대로 우린 ‘유령 노동자’다.
유승현(노인생활지원사) =우리는 이용자 자택에 방문해 일하는데 야한 동영상을 같이 보자고 하거나, 한 번 만져보자고 하거나. 그런 성추행·성희롱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더 두려운 건 이용자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이 방문 돌봄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용자가 성범죄 관련 전과가 있는지, 또는 어떤 감염병이 있는지 사전 정보가 제공되지 않은 채로 방문 돌봄을 해야 한다.
정유정(특수교육지도사) = 먼저 사진 한 장 보여드리겠다. 팔의 살점이 크게 떨어질 정도로 학생에게 심하게 물린 특수교육지도사 사진이다. 특수교육 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이렇게 물리거나 다치는 일이 많지만, 장애학생의 행동을 문제 삼기도 보호자에게 해결을 요구하기도 어렵다. 부모님 입장에선 아이의 작은 상처 하나에도 민감한데, 우리가 맞고 다치는 일은 뒷전으로 밀린다. 아이가 학교 밖 도로로 뛰쳐나가는 것을 붙잡다가 목 뒤가 긁힌 일이 아동학대 신고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팔을 심하게 다친 동료는 피부 이식을 받아야 했는데, 학부모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 수백만원을 자비로 충당해야 했다. 산재는 인정됐지만 피부이식은 비급여라 지원을 못 받았다.
“돌봄 현장 ‘위험’하다는 말…우리에겐 허락되지 않은 단어”
-인권 침해를 당해도 문제제기가 어려운 이유는.
유승현= 이용자에게 성추행 당한 일이 있었는데, 문제를 제기하니까 담당 사회복지사는 “이용자 보호가 우선이다”라고 했다. 특히 계약해지 걱정 때문에 문제제기가 어려운 문제도 있다. 우린 1년 단위로 위탁사와 계약한다. 위탁사는 민원 넣고 불만 얘기하는 사람은 재계약하지 않으려 한다. 너무나 부당하게 재계약을 못하는 일이 많고, 눈치가 보여 문제가 있어도 목소리 내지 못한다.
이은복= 문제제기를 했을 때 돌아오는 게 비난이라는 점이 가장 힘든 부분이다. 아무래도 돌봄 이용자 분들이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이겠지만,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다. 어르신이 우리를 괴롭혔다고 말하면, 보호자들도 믿어주지 않고 CCTV 등으로 확인되더라도 ‘당연히 감내해야 할 부분 아니냐’는 식이다.
정유정= 어떤 어머니는 저에게 “우리 애 덕분에 당신 일자리가 있는 거니 똑바로 해”라고 하더라. 예전에 특수교육 관련 토론회에서 노동조합이 교육 환경이 ‘위험하다’고 표현했다가, 학부모들이 공개 사과를 요구한 일이 있었다. 5대 일간지에 공개 사과문을 게시하라고 했다. 수 없이 위험에 직면하지만, ‘위험’은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은 단어다. 제가 일하는 지역 지자체에서 몇 년 전부터 심리상담비 지원 제도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첫 시행 때 공문 나가자마자 30분 만에 마감이 됐다고 하더라. 마음 아픈 사람들이 정말 많았구나 싶었다.
김지선(가명·사회복지사)= 장애인 사회복지재단에서 일한다. 사회복지기관 중 상당수가 설립자 가족 경영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꽤 있는데, 그러다 보니 폐쇄적이고 내부 비리 등 문제를 제기했을 때 오히려 징계를 당하기도 한다. 워낙 보수적인 분위기다 보니 요즘 세상에도 노조 활동을 이유로 비난받기도 한다.
“병원서 다쳐도 치료할 길 막막…간병사 산재보험 절실”
-현장에서 느끼는 제도 개선이 시급한 부분은?
한영란 = 간병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산재보험이다. 나도 70대지만, 많은 간병사들이 자신도 고령이면서 남들을 돌보는 사람이 많고, 거동을 돕다 보면 다치는 일도 많다. 최근엔 환자 한 분이 넘어지는 것을 붙잡으려다가 간병사 한 분이 허리를 크게 다쳤다. 병원에서 일하다가 다쳤어도 우리는 병원 직원도 아니고 사용자가 없으니까, 일은 일대로 못하고 치료비도 개인이 감내한다. 간병사들도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국가가 나서서 해결해줬으면 한다.
이은복 = 건강보험공단에서 요양보호사들에게 지침이 자주 내려온다. 목욕은 주 몇 회 시켜야 한다든지, 매달 몸무게를 재라든지 어르신 이용자들에 대한 지침을 상당히 구체적이다. 그런데 우리가 일하다 피해를 입었을 때 구제받을 수 있는, 현장 노동자 보호를 위한 실효성 있는 지침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이용자나 보호자 교육도 필요하다고 본다. 요양보호사 인권 존중을 위한 기본적인 교육이 좀 돼 있으면 좋겠다. 응급실에서 난동 부린 환자를 안 받을 수 있는 일종의 패널티 제도가 병원에는 있는데, 요양시설에도 있었으면 한다. 그런 보호장치가 없으니 개인한테 무조건 참으라고 하는 것 아닌가.
정유정 = 특수교육지도사는 같이 일하는 동료인 특수교사와의 갈등 관계에도 자주 직면한다. 특수교사와 특수교육지도사는 한 학급에서 함께 학생을 지원하지만, 현장에선 교사가 지시하고 지도사가 따르는 위계적 관계가 굳어진 경우가 많다. 장애인특수교육법 시행규칙의 ‘교사의 지시에 따라 보조’라는 표현이 이런 갑을관계를 고착시킨다. 2021년 법을 개정해 특수교육지도사를 ‘보조 인력’에서 ‘지원 인력’으로 변경했지만, 시행규칙에는 여전히 이 규정이 남아 있다. 보조가 아닌 교육을 지원하는 동료로 규정하도록 법령과 시행규칙을 고쳤으면 한다.
유승현 = 돌봄 노동을 주로 여성이 맡는데, 사회적으로 저평가되는 문제가 있다. 최저임금 간신히 넘는 급여부터 올라가야 한다. 가계를 지탱하는 임금노동자로선 부족한 월급인데, 여자가 하면 ‘주부의 용돈벌이’ 식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우리가 어르신을 돌보는 사람이라면, 이젠 사회가 돌봄 노동자들도 좀 돌봐줬으면 좋겠다. 우리가 어르신의 존엄한 노후를 지키기 위해 일하는 것처럼 돌보는 이들의 존엄한 노동도 보장돼야 한다. 돌보는 사람이 존중받아야 좋은 돌봄도 가능하지 않을까.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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