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6700억 vs 5.7조… 셈법따라 손실 보상 9배 차이

전준범 기자 2026. 10. 29.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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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최고가격제 보상 신경전
2일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9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보다 2.9% 상승했다. 석유류 가격은 14.8% 올랐으며, 정부는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0.6%포인트 낮춘 것으로 추정했다. 사진은 이날 서울 시내 한 주유소 모습. /뉴스1

지난 3월 도입된 석유 최고가격제의 사후 정산을 두고 정부와 정유업계가 팽팽한 줄다리기를 벌이는 이면에 최대 9배에 달하는 손실액 셈법 차이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28일 조선일보가 입수한 에너지 업계 내부 문건에 따르면, 최고가격제가 시행된 지난 3월 13일부터 9월 말까지 정유사들의 손실 규모는 산정 방식에 따라 최소 6700억원에서 최대 5조7100억원까지 벌어지는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가 제시하는 기준인 원유 도입 가격 상승분만 반영할 경우 손실액은 6월까지 4400억원, 9월 말 기준 6700억원 수준이다. 여기에 정제비·운송비 등 각종 부대 비용 상승분을 더하더라도 손실 규모는 1조8000억원에 그친다. 정부가 2·3분기 보상을 위해 확보해 둔 예비비(4조2000억원) 범위 안에서 충분히 정산할 수 있다고 말하는 배경이다.

그래픽=백형선

반면 정유업계가 주장하는 기준인 국제 석유제품 가격을 대입하면 규모가 완전히 달라진다. 해외 현물 시장에 휘발유·경유를 팔았을 때 받을 수 있었던 가격을 기준으로 삼으면 손실액은 6월 말 3조5000억원에서 9월 말 5조7100억원으로 급증한다. 정부가 주장하는 원가 기준(6700억원)과 비교하면 최대 9배 차이가 나고 예비비 한도를 훌쩍 뛰어넘는다.

◇정부·정유사, 보상 기준 줄다리기

정부는 국민 세금이 재원으로 투입되는 만큼, 정유사들이 국제 유가 급등기에 누렸을 이익까지 세금으로 메워줄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고물가 고통 분담 차원에서 시작된 정책인데, 국제 시세를 그대로 반영하면 막대한 혈세가 대기업으로 흘러들어간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산업통상부는 지난 7월 고시를 통해 원가 외에 ‘적정 수준의 마진’을 고려하겠다고 밝혔지만, 시세 반영에는 선을 긋고 있다. 산업부 고위 관계자는 “원유 도입가 변동분에 부대 비용과 운임비 등을 반영할 방침”이라면서도 “국제 시장의 석유제품 가격을 기준으로 삼는 방안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못 박았다.

반면 업계는 정부가 내수 가격 상한을 묶는 동시에 수출 물량까지 제한해 놓고, 사후 보상은 원가 기준으로만 하겠다는 것은 시장 원리에 어긋난다고 항변한다. 내수에서 밑지고 파는 손실을 수출로 만회할 퇴로마저 막아선 상태에서 원가만 보전해 주면, 결국 기름값 안정의 비용을 민간 기업에 고스란히 전가하는 셈이라는 주장이다.

국책연구기관에서도 정부 기준보다 업계의 마진을 더 폭넓게 인정해야 제도가 작동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연구원은 지난 26일 보고서를 통해 “실제 원유 도입 가격과 운송·정제비에 정상 마진까지 반영해 투명하게 정산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가격 상한이 사실상 정유산업에 대한 강제 부담으로 전환된다”고 지적했다. 김수동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소비자가 져야 할 부담을 정유사가 대신 진 것인 만큼, 가격 인상 억제분에 대해 마진을 포함한 전반적인 보상이 이뤄져야 제도가 지속 가능하게 작동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내 타결 불투명

현재 정부는 각 정유사가 제출한 자료를 검토하며 일부 항목의 수정을 요구 중이다. 정부는 11월 말까지 2분기 보상액을 확정해 이의신청이 없으면 12월 중 첫 지급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양측의 입장 차가 워낙 커 이의신청이 이어질 경우 실제 지급은 해를 넘길 공산이 크다.

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전 에너지경제연구원장) 역시 “수출이 가능한 석유제품의 특성상 기회비용인 국제 시세를 기준으로 보전하는 것이 시장 질서에는 부합한다”면서도 “문제는 그 손실 보전에 재정을 투입한다는 것 자체가 기름을 많이 쓴 사람이 아닌 일반 납세자에게 부담을 떠넘긴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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