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몸이 새로운 뇌와 뉴런을 만든다 [뇌·몸·학습의 베리타스]

2026. 10. 29.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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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100% 활용의 전제조건인, 사람 본연의 자연지능에 대한 심층적 이해와 일상생활에서의 그 강화 방안을 소개합니다.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던 오후, 잠깐 산책을 나갔다 돌아온 뒤 갑자기 막혔던 크고 작은 문제를 풀 수 있는 실마리가 떠오른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DMN이 활성화 되면, 뇌는 지나간 경험을 불러오고, 아직 오지 않은 상황을 그려 보고, 흩어져 있던 기억과 지식을 이어 보게 된다.

AI가 불러올 미래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처럼 수십년 뒤의 디스토피아적 상황을 예고하는 전문가들의 전망과 뉴스가 반복되는 요즘, 자연지능과 인공지능의 근본적 차이는 오히려 지금 이 시대에 우리 뇌가 잘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라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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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새로운 경험으로 확장되는 자연지능
편집자주
AI 100% 활용의 전제조건인, 사람 본연의 자연지능에 대한 심층적 이해와 일상생활에서의 그 강화 방안을 소개합니다.
산책 후 경험하는 창의적 사고
'뇌 DMN' 활성화에 따른 결과
인류 미래는 여전히 자연지능
삽화=신동준 기자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던 오후, 잠깐 산책을 나갔다 돌아온 뒤 갑자기 막혔던 크고 작은 문제를 풀 수 있는 실마리가 떠오른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흔히 이것을 '기분 전환' 정도로 여기지만, 산책을 하며 움직이던 뇌 안에서는 조용히 근본적 변화가 생긴다. 한 문제에 너무 오래 매달리면 뇌는 집중과 통제를 담당하는 신경망들이 활성화되면서 같은 정보를 반복해서 점검하고, 이로 인해 정해진 문제 풀이의 틀에 갇히기 쉽다. 하지만 자연을 벗삼아 걷기 시작하면 시선이 움직이고, 호흡과 걸음의 리듬이 생기며, 뇌가 주변 풍경과 소리를 흡수한다. 이 과정에서 뇌는 주어진 문제 하나에만 붙들고 있던 신경망의 긴장을 조금씩 푸는데, 이러면 우리의 생각은 기존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향으로 움직일 여지가 생긴다.

이렇게 기존 틀에서 벗어난 창의적 사고를 위해서는 뇌의 '기본모드신경망(Default Mode Network)', 즉 DMN이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알려져 있다. DMN은 우리 뇌의 외부 환경에서 벌어지는 일에서 주의를 거두고, 내 안의 생각에 잠길 때 동시에 활동이 활발해지는 뇌 영역들의 네트워크다. DMN이 활성화 되면, 뇌는 지나간 경험을 불러오고, 아직 오지 않은 상황을 그려 보고, 흩어져 있던 기억과 지식을 이어 보게 된다. 그래서 산책 중에는 문제와 직접 관계없어 보이던 장면, 대화, 읽었던 문장, 오래된 경험이 불쑥 떠오르기도 한다. 그 연상들 가운데 하나가 현재의 문제와 맞물릴 때, 우리는 그것을 '갑자기 생각났다'거나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고 느낀다. 따라서 산책은 뇌를 비우는 시간이 아니라, 뇌가 서로 다른 생각들간의 연결을 시험해 볼 수 있게 하는 시간이다.

움직임으로 기본모드신경망이 활성화되는 과정을 설명한 그래픽. 이인아 교수 제공

DMN에 속한 주요 신경망이자 과거를 회상하고 미래를 상상하며 '맥락적 틀'을 잡을 때 필수적인 뇌 영역은 뭘까. 바로 해마다. 특히 해마의 치아이랑(dentate gyrus) 영역에서는 성인이 된 이후에도 평생동안 새로운 뉴런들이 계속 태어난다는 보고가 있다. 중요한 것은 새 뉴런들이 얼마나 많이 만들어지고, 얼마나 오래 살아남는지, 기존 회로에 얼마나 잘 편입되는지는 그 사람의 생활 방식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는 점이다. 실험실 쥐를 좁은 우리에 홀로 두면 뉴런 생성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반대로 여러 마리의 쥐가 함께 지내며 다양한 물체와 미로가 있는 풍요롭고 운동을 촉진하는 환경에 두면 뉴런 생성이 뚜렷하게 늘어난다. 여기에 규칙적인 유산소 운동이 더해지면 그 효과는 더욱 두드러진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규칙적인 걷기와 달리기가 뉴런 생성을 촉진하여 해마의 부피 감소를 늦추거나 심지어 되돌리는 경향이 반복해서 관찰되기도 했다.

해마 속 치아이랑 위치와 치아이랑에서 뉴런 생성 과정을 보여주는 그래픽. 이인아 교수 제공

해마의 치아이랑에서 일어나는 뉴런 생성이 중요한 이유는 해마가 서로 비슷한 경험을 미세하게 구별해 저장하는 '패턴 분리' 능력에 새 뉴런들이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억의 해상도가 높아진다는 것은 겉으로 비슷해 보이는 상황들 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기억하고, 반대로 차이가 있어 보이지만 사실은 같은 범주의 두 경험을 하나의 기억으로 묶는 등의 인지적 유연성을 의미한다. 이 인지적 유연성은 결국 멀리 떨어져 있던 두 경험 사이의 뜻밖의 연결을 만들게 해주는데, 이는 우리 뇌의 창의성과 직결된다. 움직이는 몸이 새 뉴런을 부르고, 새 뉴런이 새로운 연결의 가능성을 여는 셈이다.

최근 몇 년 사이 대형 언어 모델을 탑재한 인공지능(AI)의 성능은 이른바 '스케일링 법칙'을 따라 급격히 향상되었다. 즉 파라미터(매개변수)의 개수를 늘리고 학습 데이터를 늘리면 성능이 좋아진다는 것이다. 이 법칙은 놀랍도록 실용적이지만, 이런 방식은 인간의 뇌가 성장하는 방향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외부에서 방대한 데이터와 막대한 계산 자원을 투입해야만 발전하는 AI에 비해, 인간의 뇌는 자기 몸을 세상 속에서 움직이며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스스로의 하드웨어를 갱신한다. 걸음 하나, 계단 오르기 하나, 낯선 골목에서의 길찾기와 같은 경험들이 쌓여 뇌 회로의 미세한 재편성을 돕는 것이다.

그래서 몸의 움직임은 건강 관리 문제인 동시에 학습과 인지 능력을 지탱하는 중요한 생활 조건이 된다. 다양한 환경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일, 즉 낯선 도시를 걷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익숙하지 않은 취미를 시도하는 일은 시간 낭비가 아니라 기억의 해상도를 높이는 해마 훈련이다. 특히 하루의 상당 시간을 화면 앞에서 보내는 현대인에게, 이 훈련은 아무리 바쁜 일상에서도 필수적이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책상 앞이 아니라 산책길에서, 샤워 중에, 낯선 도시의 골목에서 튀어나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AI가 불러올 미래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처럼 수십년 뒤의 디스토피아적 상황을 예고하는 전문가들의 전망과 뉴스가 반복되는 요즘, 자연지능과 인공지능의 근본적 차이는 오히려 지금 이 시대에 우리 뇌가 잘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라고 조언한다. 우리에게는 아직 우리가 원하는 인류의 미래를 선택할 능력이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뇌의 움직임에서 시작된다.

이인아 서울대 뇌인지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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