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까맣게 타버린 구룡마을… "입고 있는 옷이 전재산" [현장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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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찾은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지난 1월 대형 화재가 발생했던 구룡마을이 지난 27일 불과 9개월 만에 또다시 불길에 휩싸였다.
구룡마을에서 40년 가까이 살아왔다는 70대 여성 이모씨의 손에는 불길을 피해 황급히 빠져나오며 챙긴 가방 하나만 남아 있었다.
경찰은 구룡마을 화재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현장감식에 착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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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곳곳 경보시설 확충했지만
사이렌 소리 못들었다는 주장도

28일 찾은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화마가 휩쓸고 간 자리에는 검게 그을린 가스통과 엿가락처럼 휘어진 철판,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불에 탄 가재도구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주차돼 있던 승용차도 불길을 피하지 못한 채 앙상한 뼈대만 남았다. 마을 뒤편으로 고층 아파트들이 우뚝 솟아 있었지만 그 아래 주민들이 수십 년간 일궈온 삶의 터전은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변했다. 백발의 한 남성은 허리를 굽혀 불에 탄 집터를 살피며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지난 1월 대형 화재가 발생했던 구룡마을이 지난 27일 불과 9개월 만에 또다시 불길에 휩싸였다. 서울시와 관계기관이 소방도로 개설과 화재 예방시설 확충 등 안전대책을 추진했지만 비닐과 천막으로 뒤덮인 판자촌의 구조적 화재 위험까지 해소하지는 못했다.
■"옷 한 벌도 못 건져" 맨몸 탈출
화재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은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은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구룡마을에서 40년 가까이 살아왔다는 70대 여성 이모씨의 손에는 불길을 피해 황급히 빠져나오며 챙긴 가방 하나만 남아 있었다. 이씨는 "밤에 일하고 낮에 잠을 자던 중 연락을 받고 반바지 차림으로 뛰쳐나왔다"며 "휴대전화를 챙기려고 다시 집에 들어갔다가 가방 하나만 들고 나왔다. 옷 한 벌도 건지지 못하고 전부 타버렸다"고 토로했다.
다른 주민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부 주민들은 학교 등 임시 대피시설로 몸을 옮겼지만 오랜 세월 살아온 보금자리를 잃은 불안감에 이른 아침부터 화재 현장을 찾아 상황을 지켜봤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화재 당시 대피 경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불만도 터져 나왔다. 마을 곳곳에 화재 경보시설이 설치돼 있었지만 정작 불이 났을 때 사이렌 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특히 경사가 심하고 주택이 밀집한 구룡마을의 지형적 특성상 경보음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강일 구룡마을 토지주민협의회장(61)은 "사이렌과 소화기 등은 몇 년 전부터 설치했고 고장 난 시설도 교체해 왔다"면서도 "마을에 높낮이 차이가 있어 위쪽에서 사이렌을 울리면 아래쪽에서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이웃 주민들이 직접 소리를 질러 화재 발생 사실을 알리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불길 키우는 판자촌 구조는 그대로
구룡마을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1월 화재 이후 관계기관이 소방도로 개설과 화재 예방시설 확충 등 안전대책을 추진한 지 불과 9개월 만에 또다시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반복되는 화재의 배경에는 불길이 빠르게 확산할 수밖에 없는 열악한 주거환경이 자리 잡고 있다. 비닐과 천막 등 가연성 자재로 지어진 주택들이 좁은 공간에 밀집해 있고 내부에도 각종 가재도구가 쌓여 있어 작은 불씨가 대형 화재로 번질 위험이 크다.
주택 지붕을 덮은 비닐과 천막도 진화 작업의 걸림돌로 지목된다. 외부에서 뿌린 물이 지붕에 가로막혀 내부까지 닿기 어려운 구조라 주택 안쪽으로 번진 불길을 잡는 데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전해졌다. 소방차가 현장에 진입한 뒤에도 좁고 복잡한 골목 탓에 소방호스를 연결하고 진화 공간을 확보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초기 진화가 지연되면 인접 주택으로 불길이 빠르게 옮겨붙어 피해 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주민들은 소방도로 개설과 소화기 추가 설치 등 기존 안전대책만으로는 화재에 취약한 주거환경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소방시설 확충과 함께 노후 주택의 구조 개선과 주민 이주 대책이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주 조건을 둘러싼 주민들과 관계기관 간 협의가 장기간 난항을 겪으면서 주거환경 개선도 좀처럼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경찰은 구룡마을 화재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현장감식에 착수할 예정이다. 우선 발화 추정 구역을 특정한 뒤 감식 결과에 따라 2차 현장감식 등 추가 정밀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moving@fnnews.com 이동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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