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의 뉴스 솎아내기] 엉터리 세수추계, ‘주먹구구’ 나라살림

강현철 2026. 10. 28.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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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한 가계가 400만원의 월 수입을 예상하고 매달 500만원을 쓴다면 어떻게 될까.

가계로 치면 한 해 수입이 얼마일지도 모르고 매달 수백만원씩을 더 쓴 셈이다.

더 심각한 것은 빚을 내서 빚을 갚는 악순환 속에 2030년 연간 국채 이자 비용으로만 50조원이 넘는 혈세가 투입될 것이란 점이다.

나라살림의 신뢰가 바닥으로 추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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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철 논설실장


만약 한 가계가 400만원의 월 수입을 예상하고 매달 500만원을 쓴다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얼마 가지 않아 파산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의 나라살림이 딱 그렇다. 감사원 감사 결과, 문재인과 윤석열 대통령 집권 시기인 2021년부터 2024년까지 4년간 연평균 51조5000억원이라는 사상 초유의 세수(세금수입) 오차를 냈다. 매년 50조원이 넘는 세수가 더 들어올 것으로 보고 재정을 운용했다는 뜻이다.

가계로 치면 한 해 수입이 얼마일지도 모르고 매달 수백만원씩을 더 쓴 셈이다. 국가 재정의 기본 중 기본인 세수 추계가 이토록 엉망인데, 어떻게 올바른 나라살림과 경제정책 운용이 가능하겠나라는 비판이 나온다.

물론 세수 추계는 틀릴 수 있다. 문제는 세수 펑크가 경기 변동 탓이 아니라, 관료들의 안일함과 부실한 모형 설계 등 '인재'(人災)에 가까운 구조적 결함에서 비롯됐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글로벌 경제가 요동치고 기업 실적이 꺾이는 경고음이 도처에서 울렸음에도, 당국은 과거의 낙관적인 통계 평균치를 그대로 돌렸다. 세법 개정에 따른 세수 증감도 감안하지 않고 주먹구구식 가정을 고집했다. 세계경제의 변화와 시장의 역동성을 따라가지 못하는 관료들의 전문성 결여와 타성이 고스란히 드러난 셈이다.

더 큰 문제는 빗나간 세수 추계가 가져온 재정 운용의 파행이다. 돈이 모자라자 정부는 국회의 엄격한 심의와 통제를 우회하는 '임의적 기금 돌려막기'라는 편법을 동원했다. 외환시장 방어의 보루인 외국환평형기금 등에서 수십조원을 일반회계로 전용하며 미래의 재정 부담을 키웠다. 개별기금의 자금을 공공자금관리기금을 거쳐 일반회계로 이전해 부족 재원을 충당하거나 지방교부세 미교부 등 일반회계 지출을 축소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감액 추경'을 통해 국민과 국회에 솔직하게 사정을 밝히고 지출을 줄이는 정공법 대신, 꼼수로 눈앞의 위기만 모면하려 한 것이다.

감사원은 2034년까지 10년간 공공자금관리기금으로부터 빌린 자금 24조5000억원과 연 평균 8330억원의 이자를 갚아야 하는 등 미래 재정 운용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가 이렇게 국회 패싱과 꼼수 돌려막기로 세수 펑크를 임기응변식으로 땜질하는 사이, 나라 곳간의 펀더멘털은 무너졌다. 세수 부족분을 감당하기 위해 발행한 국채 등으로 인해 적자성 채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재정적자를 심화시켰다. 국민 세금으로 메워야 하는 '질 나쁜 빚'인 적자성 채무는 2030년 1300조원을 돌파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까지 나온다.

제미나이가 그린 일러스트.


더 심각한 것은 빚을 내서 빚을 갚는 악순환 속에 2030년 연간 국채 이자 비용으로만 50조원이 넘는 혈세가 투입될 것이란 점이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쓸 수 있는 재량 지출은 줄어들고, 가만히 앉아서 새어 나가는 이자 비용이 나라살림 전체를 짓누르는 재정의 경직성이 극에 달하고 있다.

그 청구서는 고스란히 민생과 지방으로 전가됐다. 중앙정부가 예산을 쥐어짜며 사실상의 '강제 불용'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복지와 연구개발(R&D) 등 민생 직결 예산이 가위질당했다. 예고도 없이 지방교부세를 대폭 삭감당한 지자체들은 무리하게 지방채를 발행해 이자 부담을 떠안거나 취약계층 병원 진료비 지원 같은 필수 의료급여 사업마저 접어야 했다. 나라살림의 신뢰가 바닥으로 추락한 것이다.

이런 방만한 나라살림 운영을 막을 수 있는 마지막 보루는 결국 재정준칙의 법제화뿐이다. 관리재정수지 적자 폭을 국내총생산(GDP)의 일정 비율 이내로 엄격히 제한하는 재정준칙은 정권이나 정당의 정치적 이해관계나 관료들의 무능으로부터 나라 곳간을 지키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이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36개국이 도입해 운용 중일 정도로 글로벌 스탠더드로 자리 잡았다. 매번 세수 결손이 날 때마다 정치적 공방을 피하려 꼼수만 부리는 정부와, 정파적 이해득실에 밀려 법안을 방치하고 있는 국회 모두의 직무유기를 묵과할 수 없다.

정확한 세수 예측은 국가 재정이라는 거대한 건축물을 짓기 위한 설계도다. 설계도가 엉터리인데 제대로 된 건물이 지어질 리 만무하다. 정부는 이제라도 국회예산정책처나 민간 경제연구소, 학계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독립적인 세수추계검증기구를 제도화해야 한다. 그리고 국회는 미래 세대의 생존이 걸린 재정준칙 법제화를 한시라도 빨리 통과시켜야 한다. 프랑스처럼 국가 재정의 둑이 터지고 나서야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우를 범할 것인가.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강현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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