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타지 말걸" 40년 터전 잿더미…구룡마을의 눈물 [현장+]

박수빈 2026. 10. 28.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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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약재고, 녹용이고, 약재 다 탔잖아. 계약서도 탔어어떻게 해."

구룡마을 화재는 전날 오후3시50분께 시작됐다.

개포동 구룡마을은 서울 강남의 '마지막 판자촌'으로 불린다.

이번 화재로 구룡마을 1~3지구에서 77가구(107명)가 피해를 본 것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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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시간 이어진 불길에 으스러진 집들
반지 찾으러 잿더미 속으로 들어가기도
구룡마을 77가구 107명 피해 입어
반복되는 불길에 주민들 불안 느껴
28일 오후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7지구. 이곳에서 1988년 때부터 40년간 한약방을 운영한 조모씨(75·여성)의 자가용이 화재로 타 있다. /사진=박수빈 기자


"한약재고, 녹용이고, 약재 다 탔잖아. 계약서도 탔어…어떻게 해."

28일 오후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7지구. 이곳에서 1988년 때부터 40년간 한약방을 운영한 조모씨(75·여성)는 가게 부지를 보며 이 같이 말했다. 벽이 있던 곳은 바스러져 사라져 있었다. 그 너머 약재실 속 기계들만 남아있었다. 보일러실도, 자가용도 모두 타 뼈대만 남았다. 타다 남은 늙은 호박만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조씨는 "어제…요새 장사 안 되니까 약 배달한다고 차 안 타고 버스 탔는데…그러지 말걸……. 차 안에 약값 받은 돈도, 계약서도 다 두고 다녔는데 다 사라졌어. 다, 다"라고 되뇌었다.

28일 오후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7지구. 이곳에서 1988년 때부터 40년간 한약방을 운영한 조모씨(75·여성)의 한약방이 화재로 타 있다. 외관 벽도 으스러진 채 한약 달이는 기계만 남아있었다. /사진=박수빈 기자

구룡마을 화재는 전날 오후3시50분께 시작됐다. 마을 2지구 가건물에서 난 불은 3·7지구로 번졌다. 약 13시간 동안 불길에 휩싸였던 구룡마을은 이날 마을 초입에서부터 경미한 탄내가 났다. 검회색으로 으스러진 7지구에 다가갈수록 가재도구, 철, 플라스틱이 뒤엉켜 탄 냄새가 강하게 났다.

주민들은 폴리스라인을 왔다 갔다 하며 탄 곳을 살폈다. 한 주민이 폴리스라인 밖 의자에 앉아있다 다시 들어가려 하자 다른 주민이 "왜 들어가?"라며 물었다. 폴리스라인으로 고개를 들이민 주민은 "반지 찾으러!"라고 말하고 곧바로 들어갔다.

28일 오후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이 전날 화재로 타 있다. /사진=박수빈 기자

한 80대 부부는 탄 부지를 멍하니 바라봤다. 부부는 지난 1월 16일 화재로 이미 집을 잃었다. 이번에는 창고가 탔다. 남편 A씨는 "우리는 1월에 이미 집이 탔다"며 "그때 우리 둘 다 움직이기 어려워서 냄비 하나 못 건지고 슬리퍼만 신고 나왔다. 29세 때 장가가 80될 때까지 모았던 귀중품 하나도 못 건졌다. 여기가 무허가 건축물이라 해서 보상이 어렵다고 하더라. 임대 아파트로 옮겨가라 해서 지금 위례에 있다"고 했다.

당시 집이 무허가 건축물이라는 이유로 보상이 어렵다는 설명을 들었다는 A씨는 현재 서울 위례의 임대아파트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이번에 불탄 창고는 과거 '서울식품'이라는 구멍가게를 운영할 때 사용하던 곳이다.

이어 A씨는 "1월에 집 탔을 때는 귀중품도 못 건지고, 보상도 못 받아서 나라를 뜨고 싶을 정도로 너무 화가 났었다"며 "이젠 탄 게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진다"고 했다. 말을 마친 A씨는 허리가 아파 땅바닥에 앉아 있던 아내 B씨를 챙겨 자리를 옮겼다.

지난 27일 오후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에서 불이 나고 있다. /영상=주민 제공

화재가 반복되자 일부 주민은 방화 가능성을 의심하기도 했다. 화재로 사라진 6지구에 거주했던 김종호 목사는 "우리끼리 말하지만 다음엔 다른 지구에 불이 날 것이라고 모두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소방관들도 호스를 버리고 가더라. 지난번에는 제가 버려진 호스를 잡고 불길에 물을 뿌리기도 했다"며 "불을 제대로 끄지 않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다만 이는 주민의 주장으로, 화재 원인과 진화 과정에 대한 별도 확인이 필요하다.

개포동 구룡마을은 서울 강남의 '마지막 판자촌'으로 불린다. 올해 1월16일과 지난해 9월과 7월, 2023년 1월에도 크고 작은 화재가 발생했다. 지난해 보상과 소유권 이전 절차를 마무리하고 자연 친화 주거단지로의 재개발을 앞두고 있다.

전날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은 장비 110대와 인력 232명을 동원해 진화 작업에 나섰다. 이번 화재로 구룡마을 1~3지구에서 77가구(107명)가 피해를 본 것으로 집계됐다. 주민 39명은 자력으로 대피한 것으로 파악됐다. 강남구청은 개포중과 구룡중 체육관에 대피소를 마련했다.

이날 경찰과 소방은 구룡마을에서 발생한 화재의 원인과 발화지점을 파악하기 위한 현장 조사에 돌입했다. 관계 당국은 발화지점을 특정하기 위해 구획을 정하는 등 조사를 이어가고 있다.

박수빈 한경닷컴 기자 waterbe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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