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주 더봄] 한용운의 '사랑의 측량'
멀어질수록 더 커지는 사랑의 역설
거리로는 잴 수 없는 그리움을 통해
한용운이 말한 ‘님’의 의미를 되새기다
<사랑의 측량>
한용운
즐겁고 아름다운 일은 양이 많을수록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의 사랑은 양이 적을수록 좋은가 봐요.
당신의 사랑은 당신과 나와 두 사람의 사이에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양을 알려면 당신과 나의 거리를 측량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당신과 나의 거리가 멀면 사랑의 양이 많고, 거리가 가까우
면 사랑의 양이 적을 것입니다.
그런데 적은 사랑은 나를 웃기더니 많은 사랑은 나를 울립니다.
뉘라서 사람이 멀어지면 사랑도 멀어진다고 하여요.
당신이 가신 뒤로 사랑이 멀어졌으면 날마다 날마다 나를 울리는

공항에 서 있는 수인과 현우, 둘의 손목은 떨어질 줄 모른다. 떠나보내야 하는 수인의 눈동자에 파도가 몰아친다. 마치 떠내려가는 현우의 손을 붙잡을 수 없게 물결이 수인의 온몸을 휘감아 버린다. 떠나는 현우를 끝내 붙잡지 못한다. 당장 강물이 현우를 휩쓸어 버리는데도 말이다. 수인은 울음을 삼키며 현우를 보낸다.
떠나는 현우의 열 손가락은 바르르 떨린다. 수인의 손목을 놓고 싶지 않다. 그녀를 데리고 이 공항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다. 갑작스러운 파병. 그는 머나먼 전쟁터로 고국을 떠나야 한다. 그들의 이별은 무지막지한 형벌 같다. 한 발의 총알 같다. 그들은 이렇게 헤어진다.
사랑의 거리, 이들의 사랑의 양을 헤아려 보자. 이 둘이 이렇게 떨어져 있어도, 그들의 사랑은 줄지 않는다. 줄기는커녕 오히려 더 커진다. 당신이 가까이 있을 때는 가까이 있어 웃었는데, 당신이 멀어지자 나는 무자비하게 슬퍼 마냥 운다.
당신이 멀어져 거리가 늘어나 사랑의 양도 많아져 날마다 그리워 몹시 우는 것이다. 누가 거리가 멀어져 사랑이 멀어졌다고 한다면, 당신이 떠난 뒤 날마다 엉엉 우는 나는 그럼 무엇이란 말인가. 사랑이 적어서? 결국은 뭐다. 당신을 무조건 사랑한다.
다시 한 번 우리가 좋아하는 요점 정리를 해 볼까.
당신과의 사랑을 거리로 측량한다면, 거리가 멀면 그만큼 사랑이 많고 거리가 가까우면 사랑이 그만큼 적다. 그런데 거리가 먼 사랑은 나를 울리고 거리가 짧은 사랑은 나를 웃게 만들더라.
그렇다면 거리가 멀면 사랑이 적은 것인가. 그렇지 않더라. 거리가 멀어지니 나는 당신이 그리워 날마다 울더라. 이것이 과연 사랑이 적다고 할 수 있는 건가? 그런가? 이렇게 당당히 되묻는다. 이것은 당신을 향한 사랑이 변함없음을, 오히려 멀어지니 더 많음을. 아니 사랑은 거리를 측량할 수 없음을 말한다. 멀고 가까움에 관계없이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 이것이 이 시의 핵심이다.
참 어렵다, 사랑. 어쩌면 시인 한용운도 사랑이라는 것이 무척 어려워 <사랑>을 이렇게 돌리고 돌려가며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일목요연하게 표현할 수 없어, 아니 그렇게 표현하기에는 몹시 어려운 사랑 때문에, 이렇게 말의 유희를 보여주며 표현한 것이 아닌가 한다. 요즘 말로 그의 시적 재능이 빛을 발하면서.
이 시는 대조의 기법으로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을 역설에 기반을 두고, 측량이라는 제목을 달고 거리를 이용하여 꾸려 놓은 시다. 당신을 향한 사랑의 분량을, 어찌 보면 말장난처럼 언어를 맘껏 누리며 제대로 효과를 본 시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이 시가 조금이라도 가벼운가. 절대 그렇지 않다. 이 시는 어느 수학 문제보다도 어렵다. 한 문장씩 꼭꼭 씹어 그 의미를 따져 물어야 한다. 나는 이 시를 사랑만큼 어렵게 느꼈다. 센티로 측량할 수 없는 것은 얼마나 큰 숙제인가. 그런 사랑은, 그런 그리움은, 만약 저명한 수학자에게 이 시를 읽게 했다면···.
"대조법은 궁극적으로 시의 인상을 강렬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우리에게 <검은 고양이>를 쓴 추리소설의 대가로 알려진 애드거 앨런 포의 말이다.
한용운의 시에는 기본적으로 역설이 깔려 있다. 비단 이 시뿐만 아니라, 그의 시는 전반적으로 대조를 본으로 삼고 전개되는 시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는 지구 나아가 우주까지, 세계 더불어 세상까지 이 대조의 원리가 기반이 되어 움직이고 발전한다고 믿었다. 이것이 원동력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두 상반된 것이 짝을 이루어야 모든 것이 돌아간다는 것을. 이 큰 원리를 누구보다 빠르게 간파하여 그의 시까지 운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만해 한용운 앞에는 몇 개의 타이틀이 붙는다. 시인이자, 승려이자, 독립운동가이자 신시의 선구자 등. 이름 붙일 수 있는 여러 활동의 업적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가 놓을 수 없었던, 우리가 놓치면 안 되는 불멸의 이름은 '님'이다.
그는 그 규정지을 수 없는 '님'을 향해 맹목적이었다. '님'은 누구나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이 말은 시인 한용운이 선택한 님을 우리도 우리 뜻대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님'을 열어 두었다. 누구에게나 활짝 그러나 간절함을 바탕으로. 시인이라는 자유로운 영혼을 빌어.
보라! 저기 당신의 님에게 날아가는 나비 한 마리가 보이는가.
zoo-mouse@hanmail.net

양선주 시인·작가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응용언어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으며 대산창작기금을 수혜하며 문단에 데뷔해 시집 <사팔뜨기>를 출간했다. 건강 문제로 인한 긴 공백기 끝에 2025년 시집 <열렬한 심혈관>, 산문집 <시는 내 곁으로 와 눕고>(공저)를 펴내며 다시 활발한 작품 활동을 재개했다. <소설미학>에서 동화, <월간문학>에서 동시 부문 신인상을 수상하며 장르를 넘나드는 문학적 역량을 펼치고 있으며, 동화책과 동시집 발간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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