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인이 '발롱도르' 들던 날...손흥민 '완장'은 더 무거워졌다 [박순규의 창]

박순규 2026. 10. 28.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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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축구의 정점을 상징하는 황금빛 트로피 발롱도르가 마침내 해리 케인의 품에 안겼다. 잉글랜드 선수로는 2001년 마이클 오언 이후 25년 만의 쾌거다.

2021~2022시즌 손흥민이 23골로 아시아 선수 최초의 EPL 득점왕에 올랐을 때도 곁에는 케인이 있었다.

모레노 감독은 소통과 납득할 수 있는 팀 운영으로 신뢰를 쌓아야 하고, 대한축구협회도 선수들이 축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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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케 듀오’의 엇갈린 현재…세계 최고 오른 케인과 시험대 선 손흥민
29일 명단 발표 앞둔 모레노호, 대화와 신뢰로 대표팀 결속해야

토트넘에서 손흥민과 함께 '손케 듀오'를 이룬 잉글랜드의 해리 케인이 27일 세계 축구계의 최고 선수에게 수여하는 '발롱도르' 트로피를 안고 있다./런던=신화.뉴시스

[더팩트 | 박순규 기자] 세계 축구의 정점을 상징하는 황금빛 트로피 발롱도르가 마침내 해리 케인의 품에 안겼다. 잉글랜드 선수로는 2001년 마이클 오언 이후 25년 만의 쾌거다. 오랜 세월 따라붙었던 ‘무관의 제왕’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내고 세계 정상에 오른 옛 동료를 향해 손흥민은 27일 주저 없이 "내 GOAT(역대 최고 선수)"라며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두 사람은 2015년부터 8년 동안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에서 함께 뛰며 무려 47골을 합작했다. 디디에 드로그바와 프랭크 램파드가 첼시에서 세웠던 36골을 넘어선 EPL 역대 최다 기록이다. 케인이 중원으로 내려와 공을 찔러주고 손흥민이 번개처럼 수비 뒷공간을 파고들던 움직임은 상대 수비수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2021~2022시즌 손흥민이 23골로 아시아 선수 최초의 EPL 득점왕에 올랐을 때도 곁에는 케인이 있었다. 서로의 움직임을 읽고 장점을 살려준 두 선수는 ‘손케 듀오’라는 이름으로 토트넘을 넘어 프리미어리그의 역사에 오래 남을 장면들을 만들었다.

그러나 2023년 여름 케인이 바이에른 뮌헨으로 떠난 뒤 두 사람의 길은 달라졌다. 케인은 독일에서 오랜 우승 갈증을 풀었고, 2025~2026시즌에는 공식전 51경기 61골을 기록하며 분데스리가와 독일축구협회(DFB) 포칼 우승,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을 이끌었다. 그리고 마침내 축구 선수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개인상까지 품었다.

2015년부터 8년 동안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에서 함께 뛰며 무려 47골을 합작한 손흥민(위)과 해리 케인./AP.뉴시스

손흥민도 2025년 토트넘의 주장으로 유로파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오랜 무관의 아쉬움을 털어냈다. 하지만 한국 대표팀의 주장으로서 맞닥뜨린 현재는 그리 평온하지만은 않다. 대표팀을 둘러싼 갈등설과 세대 간 불화 논란 속에서 ‘캡틴’의 리더십도 시험대에 올랐다.

그렇다고 손흥민이 일군 업적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그는 10년 넘게 세계 최고 수준의 무대에서 활약하며 한국 축구의 지평을 넓혔다. 지난 6일 우즈베키스탄과의 평가전에서는 A매치 59호 골을 터뜨려 차범근 전 감독의 기록을 넘어섰다. 151번째 A매치에서 이룬 한국 남자 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 기록이다.

그가 걸어온 길에는 득점 기록만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헌신도 있다.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안와골절 부상에도 마스크를 쓰고 뛰었다. 주장으로서 동료들과 함께 포르투갈을 꺾고 16강에 오른 장면은 한국 축구팬들의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다.

이제 그에게는 또 다른 과제가 놓여 있다. 그라운드에서 골을 넣는 일만큼이나, 대표팀 동료들이 서로를 믿고 같은 곳을 바라보도록 힘을 보태는 일이다.

맹자(孟子)는 "천시(天時)는 지리(地利)만 못하고, 지리는 인화(人和)만 못하다"고 했다. 좋은 때와 유리한 형세가 중요하지만, 사람의 마음이 하나로 모이는 것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지금 한국 축구가 되새겨야 할 말이다.

모레노호의 10월 A매치 마지막 경기를 2-0 승리로 이끈 한국 선수들./용인=KFA

마침 대표팀은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있다. 로베르트 모레노 임시 감독은 29일 11월 중동 원정에 나설 대표팀 명단을 발표할 예정이다. 9~10월 국내에서 4차례 평가전을 치른 뒤 내놓는 ‘모레노호 2기’ 명단이다. 대표팀은 11월 13일 사우디아라비아, 17일 카타르와 카타르 도하에서 잇따라 맞붙는다.

어떤 선수들이 부름을 받을지, 모레노 감독이 대표팀을 둘러싼 우려에 어떤 해법을 내놓을지 관심이 쏠린다. 이번 명단 발표는 선수들의 이름을 확인하는 자리를 넘어, 아시안컵을 앞둔 대표팀의 방향과 분위기를 가늠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2027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을 향한 여정도 한층 구체화됐다. AFC와 사우디아라비아 대회 조직위원회는 26일 경기 시작 시간과 장소를 포함한 대회 최종 일정을 발표했다. E조에 속한 한국은 내년 1월 10일 예멘, 15일 베트남, 20일 아랍에미리트(UAE)를 차례로 상대한다. 예멘과의 첫 경기는 제다에서, 베트남 및 UAE와의 경기는 리야드에서 열린다.

목표가 어느덧 눈앞으로 다가왔다. 1960년 이후 67년 만의 아시아 정상 탈환을 위해서는 실전 준비와 함께 대표팀의 신뢰를 다지는 일도 서둘러야 한다. 11월 중동 원정은 아시안컵을 앞두고 현지 환경과 상대에 대한 적응력을 살피는 동시에, 선수들이 한자리에 모여 호흡을 맞출 기회다.

29일 중동 원정 2기 모레노호 명단을 발표하는 한국축구대표팀의 임시 사령탑 로베르트 모레노 감독./더팩트DB

바깥에서 본 몇몇 장면과 소문만으로 대표팀 내부 사정을 단정할 수는 없다. 대한축구협회도 확인되지 않은 정보와 추측성 주장, 선수들을 향한 인신공격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선수들의 관계를 함부로 재단하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

그럼에도 대표팀을 둘러싼 우려를 외면할 수는 없다. 선수 개인의 이름값이나 전술적 역량이 아무리 뛰어나도 서로를 향한 신뢰가 흔들리면 팀은 제 힘을 내기 어렵다. 반대로 생각이 다르더라도 서로의 말을 듣고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면 그 차이는 팀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힘이 될 수 있다.

우리 대표팀의 저력은 선후배가 서로를 존중하며 어려운 고비를 함께 넘는 데서 나왔다. 시대가 바뀌고 선수들의 개성이 다양해졌어도 존중과 신뢰의 가치는 달라지지 않는다. 선배는 후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후배는 선배의 경험을 존중할 때 비로소 진정한 ‘원팀’이 만들어진다.

그 출발점에서 손흥민의 역할을 기대한다. 가장 오래 태극마크를 달아온 선수 중 한 명이자 주장으로서 먼저 대화의 문을 열어주면 어떨까. 후배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서로 서운한 일이 있다면 허심탄회하게 풀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한국축구대표팀의 2027 아시안컵 조별리그 일정./AFC

이것은 주장 한 사람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동료들 역시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야 한다. 모레노 감독은 소통과 납득할 수 있는 팀 운영으로 신뢰를 쌓아야 하고, 대한축구협회도 선수들이 축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주장 완장은 혼자 모든 짐을 짊어지라는 뜻이 아니라 함께 짐을 나눌 수 있도록 앞장서라는 의미일 것이다.

케인은 무관의 아쉬움과 숱한 비판을 견디며 마침내 발롱도르를 품었다. 손흥민과 한국 대표팀도 오랜 기다림 끝에 아시아 정상에 설 수 있다. 다만 그 길은 한 사람의 골이나 이름값만으로 열리지 않는다. 동료를 향한 믿음과 서로를 위해 한 발 더 뛰는 마음이 함께할 때 비로소 가까워진다.

손흥민은 케인의 영광을 누구보다 진심으로 축하했다. 함께 땀 흘린 동료의 성공을 기뻐할 줄 아는 그의 넉넉한 마음이 이제 대표팀 안에서도 대화와 신뢰를 잇는 힘이 되기를 바란다.

케인과 함께 47골을 만들어낸 것은 서로의 움직임을 믿었기 때문이다. 이제 태극마크를 단 동료들과도 그 믿음을 나누며 같은 곳을 향해 달릴 차례다. 한국 남자 축구의 최다 득점자가 동료들과 힘을 모아 67년의 기다림을 끝낸다면, 그것은 ‘캡틴’ 손흥민의 축구 인생에 또 하나의 가장 빛나는 장면으로 남을 것이다.

skp2002@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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