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장미, 적대를 부수는 ‘환대’ [이문영의 당신은 소설]

이문영 기자 2026. 10. 28.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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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현(38)이 손을 번쩍 들었다.

지난해 환승구역에서 이집트 인권변호사(5개월 구금 뒤 2025년 11월 승소)를 만나면서 상현의 파란장미 선물은 시작됐다.

파란장미 꽃다발을 건네며 상현이 말했다.

상현이 파란장미를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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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_꽃으로 싸우는 사람들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상현(38)이 손을 번쩍 들었다.

“저 보이세요?”

인천공항 1터미널 3층에서 이정표가 솟았다. 한손으로 전화기를 붙든 상현이 사방을 둘러보며 남은 손을 흔들었다. 어디서든 그 손이 보이길 바랐다.

여기 있어요!

여기 있으니 어느 방향에서든 그를 놓치지 않길 바랐다. 망망한 바다에서 표류하는 조각배도 항로표지 하나면 길을 잡을 수 있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던 남자가 멀리서 그 손을 봤다. 남자는 들고 지고 끌며 한가득 짐을 데려왔다. 상현이 달려가 나눠 받았다.

“제이비라고 불러주세요.”

남자가 약칭 이름을 알려줬다.

제이비(40)는 6년 전 아이티에서 입국했다. 경기도 평택에 살았다. 그가 서울 중구의 ‘맵’(MAP·난민 지원 비영리단체 ‘아시아평화를향한이주’) 사무실까지 찾아가 개별 포장된 종이 가방들을 가져왔다.

생활용품들로 가득 채운 가방들이었다. 상현이 ‘공항 난민들’을 접견하며 파악한 필요를 알려주면 맵이 해당 물품들을 준비(인도적 지원 사업)했다. 그 물품들을 한국에서 생활하는 ‘난민 선배들’이 공항으로 운반(당사자 역량 강화 사업)했다. 상현과 함께 난민들을 만나 전달하고 의사소통(통역)을 도왔다. 이날 역할을 맡은 난민 당사자는 제이비였다.

“이상현(공익법단체 두루) 변호사님? 이쪽으로 오세요.”

기다리고 있던 공항 출입국외국인청 직원이 두 사람을 안내했다. 환승구역에 머무는 난민을 출국 심사 없이 만날 수 있는 민간인은 그들을 지원하는 변호사(절차에 따른 사전 요청)와 통역뿐이었다. 상현과 제이비가 공항 상주직원전용출입문으로 들어갔다. 신분 확인과 소지품 검색을 거친 뒤 직원을 따라 면세구역으로 빠져나갔다.

공항은 여행의 기대와 흥분으로 충만한 공간이었다. 이 들뜬 환승장 안에 일반인들은 모르는 구금시설이 있다는 사실이 상현에겐 물에 섞이지 못하는 기름처럼 미끈거렸다. 접견 장소로 이동할 때면 공항에서 노숙인이 돼 떠돌던 얼굴들이 어른거렸다. 1심 재판(2019년 4월 난민 인정 심사 불회부 결정 취소 소송) 패소 뒤 절망하던 루렌도 가족(콩고 출신 앙골라 국적 부부와 4자녀)의 표정이 환승구역 곳곳(287일간 체류)에 달라붙어 있었다. 변호인이던 상현도 크게 낙담했다. 미리 잡아둔 여름휴가가 닥치자 공항 가기가 두려웠다. 출국장을 통과한 순간부터 그 얼굴들(2021년 10월 난민 인정)과 마주칠까 조바심내던 자신의 얼굴도 떠올랐다.

“당신과 딸을 위한.”

상현이 접견실 테이블 위에 노트북을 꺼냈다. 그가 쓴 한국어 문장을 번역기가 암하라어로 옮겼다.

“물품들을 조금 가져왔어요.”

출국대기실 출입구 데스크 뒤로 “이용 대상”이 공지돼 있었다. “송환 대상 외국인.” 공항에서 난민 인정 신청이 가능해진 2013년 이후 심사 불회부에 맞선 수많은 법정 싸움이 지난 시간 아래 쌓여 있었다. 항공사들이 법적 근거 없이 공동 운영했던 출국대기실(열악한 수용 환경으로 비판받은 옛 송환대기실)은 상현이 소송을 대리한 ‘콩고민주공화국 난민 응고마 사건’(420일 최장 구금)을 계기로 국가운영제로 전환(2022년)됐다.

“감사합니다.”

에티오피아인 엄마(35)가 한국어로 짧게 말했다. 그의 이름이 적힌 종이가방엔 보온용 옷과 슬리퍼, 여성용품 등이 담겨 있었다. 4살 딸아이를 위한 가방에선 제이비가 장난감을 꺼냈다.

“웨어 아 유?”

제이비가 도저히 못 찾겠다는 듯 아이를 불렀다. 아이는 접견실 테이블 아래 엎드려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다. 그 짧은 순간에도 낯가림 없이 장난을 쳤다.

“지금 가장 힘든 것은 무엇인가요?”

상현의 질문을 읽은 엄마가 휴대폰 통역기로 답했다.

“아이가 밥을 잘 안 먹어요.” “딸을 위해 제공되는 음식이 있나요?” “없어요. 노 밀크.” “아이에게 맞는 식사 제공을 출국대기실에 요청할게요.”

에티오피아 소수민족 출신인 엄마는 인종과 정치 박해를 피해 딸을 데리고 한국(4월)에 왔다. 공항에서 입국이 막혔고 난민 인정 신청도 거부됐다.

“뽀로로 뽀로로.”

상현이 엄마와 대화하는 동안 제이비는 아이와 놀아줬다. 학습용 장난감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아이가 곱슬머리를 흔들며 따라 불렀다. 엄마의 무겁고 지친 표정과 달리 아이는 밝고 천진했다. 접견을 마치고 나가는 아이를 보며 어떤 상황에서도 노래하고 까르르 웃는 ‘신비’가 그의 곁에 오래 머물러주길 상현과 제이비는 기도했다.

“재판이 막 시작됐어요. 빠르면 3개월 안에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고 있어요.”

상현의 말을 제이비가 프랑스어로 옮겼다. 말리에서 온 청소년(19)이 말했다.

“인샬라!”

성년에도 이르지 않은 십대가 지하디스트 세력을 피해(“군대에 신고했다는 이유로 생명 위협”) 지난 5월 한국으로 도망쳤다. 한달 전 말리에선 무장 조직들이 수도 바마코 등을 동시 공격했다.

“선물이 하나 더 있어요.”

생필품을 전달한 상현이 무언가를 꺼냈다. “공항에서 하루빨리 나와 한국 땅을 밟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며 꽃다발을 안겼다. 파란장미 다발이었다.

“꽃말이 ‘자유’와 ‘기적’이에요.”

청소년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어렸다. 파란색 장미는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꽃이었다. ‘불가능’을 상징했던 신화 속 꽃이 유전공학의 힘을 빌려 현실의 꽃이 되자 의미도 ‘기적’으로 바뀌었다. 지난해 환승구역에서 이집트 인권변호사(5개월 구금 뒤 2025년 11월 승소)를 만나면서 상현의 파란장미 선물은 시작됐다. 정부로부터 탄압받는 사람들을 돕다 위험에 빠져 한국으로 피신한 법률가였다. 그를 꽃으로라도 응원하고 싶었다. 그 꽃에서 따온 이름이었다.

파란장미법률지원단.

‘거절 전문 변호사’가 됐다는 자괴감에 시달리던 상현이 제안한 모임이었다. 공항과 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된 난민·이주민들의 지원 요청이 “쇄도”했지만 응할 수 있는 시간과 자원은 ‘절대 부족’이었다. 희망 고문을 줄 순 없어 거절할 땐 매몰차게 했다. 출국대기실에서 면담했던 부르키나파소 난민은 ‘도와줄 수 없다’는 상현의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상현의 답답함을 16명의 변호사가 나눠 안았다. 공익 변호사뿐 아니라 긴급 상황마다 조력해온 로펌 변호사들도 꽃(지난봄 출범식 없이 활동 시작)을 들었다. 일차 목표는 구금 해제였다. 변호인이 생겼다는 사실만으로도 난민들을 대하는 기관의 태도는 달라졌다.

“내 한국 친구에게 아들들 상황을 이야기해줘.”

2터미널로 이동하는 셔틀버스 안에서 제이비가 인공지능 앱을 열고 말했다. 그동안 에이아이(AI)와 대화하며 학습시켜 둔 ‘스토리’를 그는 한국인을 만나 도움을 호소할 때마다 불러냈다. 에이아이가 제이비 대신 한국말로 설명했다. … 정치와 치안이 불안한 아이티에 제이비의 17·13·9살 세 아들이 있어, 무장 조직이 강제로 데려가려 해서 숨어 지내고 있어, 제이비(인도적 체류·G-1-6)도 같은 이유로 한국에 왔는데 이젠 아이들까지 위험해…. 에이아이가 물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안전하게 데려올 수 있을까?”

2터미널 출국대기실에서 만난 말리 여성(29)은 강제결혼을 피해 지난 5월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긴급] 실종자 수배 공고.”

히잡을 두른 그가 말리의 여동생한테 받은 메시지를 상현에게 보여줬다. 아버지가 아프리카 전역에 뿌렸다는 전단 이미지였다. 일면식 없는 남자와의 매매혼을 거부하며 도망친 딸(☞25회 ‘절대 돌아오지 마!’)을 아버지가 수배했다. 청첩장 사진과 위협하는 말들도 잇따라 보냈다.

“너를 위해 이곳에 남아 있는 건 파헤쳐진 무덤뿐이라는 걸 똑똑히 명심해라.”

상현이 “저와 함께 당신 사건을 맡을 변호사팀 구성이 거의 완료됐다”며 소송 진행 상황을 전했다.

“사건 특성을 고려해서 여성 변호사 위주로 짰습니다.”

말수 적은 여자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난민이에요.”

통역하던 제이비가 자신이 통과해온 시간을 설명하며 용기를 줬다. 상현은 한국에서 난민과 이주민을 향한 혐오가 확산되고 있음을 가까이서 느꼈다. 그 혐오를 어떻게 막아낼 수 있을지 뚜렷한 해법이 보이지 않았다.

“잘 말려서 간직하고 있다가 공항 밖으로 나오는 날 제게 돌려주세요.”

파란장미 꽃다발을 건네며 상현이 말했다. 제이비가 휴대폰을 들고 셋이서 사진을 찍었다. 사진 속에서 꽃을 든 여자는 비로소 웃었다. 그 조각 웃음에 상현은 안도했다. 막막해도 끝내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이란 마른 사막 같은 얼굴에 떨어지는 웃음 방울의 모습을 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한방울 한방울 모여 언젠가 물줄기가 될 것이란 믿음은 파란장미에 ‘기적’이란 꽃말을 붙인 마음과도 다르지 않았다.

여기 있어요!

상현이 파란장미를 흔들었다. 어디서든 그 꽃이 보이길 바랐다. 어디서 보든 그 꽃말을 놓치지 않길 바랐다. 기적을 간절히 기대했지만 혐오에 맞서는 일을 기적에만 맡겨둘 순 없었다. 파란장미에 법률지원단이 새기고 싶은 새 꽃말이 있었다.

‘환대’. 적대를 부수는 단어였다.

이문영 | 이슈팀 기자. 책 ‘웅크린 말들’ ‘노랑의 미로’ ‘왼쪽 귀의 세계와 오른쪽 귀의 세계’ ‘루카스’ 등을 썼다. 세기적 사건의 주인공이 되진 못해도 누구든 자신만의 ‘작은 이야기’(小說)의 주인공은 될 수 있다. ‘이야기의 자격’을 인정받은 적 없는 이야기들이 글이 되고, 읽히고, 연결될수록 언어와, 기록과, 서사의 틈들도 조금은 메워질 것이라 믿는다. 부끄러운 것이 많다.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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