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아 만평 ‘안마봉’] 모로코판 ‘철의 여인’, 정치 중심에 서다

황승경 예술학 박사·문화칼럼니스트 2026. 10. 27.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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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 만평 '안마봉'은 과거 '신동아'와 '동아일보'에 실린 만평(동아로 보는 '카툰 100년')에서 영감을 얻어 같은 그림체로 오늘날의 세태를 풍자한 만평입니다.

모로코 역시 여성의 사회·정치 참여를 확대해 온 나라로, 이번 총리 지명은 그런 사회 변화가 정부 최고위층으로 이어졌다는 상징성을 보여준다.

'신동아' 1932년 10월호 만평에는 머리띠를 두른 여성 선수가 라켓을 들고 한쪽 팔을 높이 치켜든 모습이 그려져 있다. '동아일보사 주최 제10회 여자정구대회'라는 제목 아래, 여성은 경기를 구경하는 사람이 아니라 직접 승부를 겨루는 선수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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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 만평 ‘안마봉’은 과거 ‘신동아’와 ‘동아일보’에 실린 만평(동아로 보는 ‘카툰 100년’)에서 영감을 얻어 같은 그림체로 오늘날의 세태를 풍자한 만평입니다.

ⓒ정승혜
북아프리카의 모로코에서 사상 처음 여성이 정부 수반에 올라 또 하나의 금기를 깼다. 모하메드 6세 국왕은 9월 29일 파티마 에자흐라 엘만수리(50) 국토계획·도시개발·주택 장관을 총리로 지명하고 새 정부 구성을 맡겼다.

변호사 출신인 그는 역사문화도시로 유명한 고향 마라케시에서 33세의 나이에 여성으로는 처음 시장에 당선됐다. 당시 33세였다. 이후 재선에 성공하고 하원의원, 장관, 당 지도부 등을 거치며 모로코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 정치인이 됐다. 모메드 5세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부동산·토지 전문 변호사로도 활동했다. 서방 언론은 영국의 첫 여성 총리인 마거릿 대처의 별명을 따 그를 모로코판 '철(鐵)의 여인'으로 부르고 있다.

그가 총리가 된 데에는 소속 정당 신뢰현대당(PAM)이 9월 23일 총선에서 하원 395석 가운데 97석을 얻어 최대 의석을 차지했기 때문. 모로코는 입헌군주제로 2011년 개헌 이후 국왕은 총선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얻은 정당에서 정부 수반을 임명하고 있다.

아랍권 이슬람 국가에서 여성 총리가 나온 사례는 드물다. 여성의 사회·법적 권리를 비교적 일찍부터 확대해 온 튀니지에서 2명의 총리가 배출됐다. 지질학자 출신 나즐라 부덴은 2021년 10월 총리에 지명돼 2023년 8월까지 재임했고, 이후 2025년에 다시 여성 총리인 사라 자프라니 젠즈리가 임명돼 현재 재임하고 있다.

모로코 역시 여성의 사회·정치 참여를 확대해 온 나라로, 이번 총리 지명은 그런 사회 변화가 정부 최고위층으로 이어졌다는 상징성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그의 앞날이 장밋빛만은 아니다. 고질적인 경제난을 극복하고 청년층의 교육·의료서비스 개선 요구 등 불만도 해소해야 한다. 2030년 월드컵 준비도 해야 한다. 소속 정당이 과반 의석에 크게 미치지 못한 만큼 다른 정당들과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연합정치를 펼쳐야 하는 등 설득과 타협의 앞날이 예상된다. 관습과 고정관념이라는 벽을 넘어 그가 모로코 정치 중심에서 어떤 변화를 이끌어낼지 자못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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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로 보는 '카툰 100년'

1932년
라켓을 든 조선 여성, 경기장에 서다

동아일보사 주최 제10회 여자정구대회 - ‘신동아’ 1932년 10월호 
1932년 가을, '동아일보'가 주최한 '제10회 전조선여자정구대회'의 우승 학교를 맞히는 행사에 15만3000여 통의 엽서가 날아들었다. 우승은 개성 호수돈여학교가 차지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여성의 공개 운동경기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시선이 적지 않았다. 그사이 조선의 경기장에서는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

‘신동아' 1932년 10월호 만평에는 머리띠를 두른 여성 선수가 라켓을 들고 한쪽 팔을 높이 치켜든 모습이 그려져 있다. 뒤편에는 '전조선'이라고 적힌 깃발과 경기장 풍경이 보인다. '동아일보사 주최 제10회 여자정구대회'라는 제목 아래, 여성은 경기를 구경하는 사람이 아니라 직접 승부를 겨루는 선수로 등장한다.

근대 스포츠가 조선에 도입된 뒤에도 여성의 운동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여성의 몸가짐과 활동 범위를 제한하던 사회에서 뛰고 경쟁하는 스포츠는 낯선 행동이었다. 그러나 여학교가 늘고 체육교육이 확산되면서 정구와 농구, 배구 등이 여학생들에게 보급됐다. 당시 정구는 고무공을 사용하는 연식정구로, 오늘날의 소프트테니스에 해당한다.

1923년 '동아일보'는 제1회 전조선여자정구대회를 개최했다. 여러 여학교의 학생들이 참가했지만 사회적 반응이 모두 호의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1932년 9월 23일자 '동아일보' 사설 '십주년을 맞는 여자정구대회'는 첫 대회 무렵을 회고한다. 여성은 집 안에서 바느질이나 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고, 정구를 남성의 영역에 대한 침범으로 여기는 시선도 존재했다고 전했다.

제10회 대회에는 10개 학교에서 80명의 선수가 출전했다. 신문은 선수들의 기량이 크게 향상됐다고 평가했다. 초기에는 학교 유형에 따라 경기를 나누어 치렀으나 이후에는 구분 없이 실력을 겨루게 됐다.

1932년 9월 23일자 ‘동아일보’ 석간 7면에 실린 ‘제10회 전조선여자정구대회’ 기사. 대회 일정과 함께 참가 여학교 선수들의 단체사진이 실려 당시 여성 체육의 성장과 달라진 사회적 관심을 잘 보여준다.
복장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초기 대회에서는 치마저고리와 서양식 운동복이 함께 등장했지만, 점차 활동하기 편한 운동복과 학교별 유니폼이 자리 잡았다. 여자 정구가 발전하는 과정은 경기 운영과 복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대중의 관심도 커졌다. '동아일보'는 우승 학교 예측과 경품 추첨을 통해 독자의 참여를 이끌었다. 응모 엽서의 양을 실제 관중이나 열성 팬의 수로 볼 수는 없지만, 여자 정구가 학교 체육행사를 넘어 대중의 관심을 끄는 스포츠로 성장했음을 보여준다. 여학생 경기는 이제 신문 독자들이 승패를 예상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행사가 됐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모든 여성에게 동일한 기회를 제공한 것은 아니었다. 근대적인 학교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여성은 제한적이었고, 대다수 여성에게 운동장은 여전히 먼 공간이었다.

여성 체육의 필요성도 개인 권리보다는 건강한 다음 세대와 사회의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강조됐다. 여성 운동을 장려하면서도 그 필요성을 여성 개인 삶보다 가정과 사회에 대한 역할에서 찾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10년 사이 여성 체육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변화가 나타났다. 1923년 여성의 공개 경기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1932년에는 그들의 승패를 예상하고 결과에 주목하는 대중도 형성됐다. '신동아' 만평 속 높이 치켜든 팔은 이러한 변화를 상징한다. 한때 낯설게 여겨지던 여성의 운동이 대중의 관심을 받는 경기가 된 것이다. 라켓을 든 여성 선수는 그렇게 조선의 경기장 한가운데 서 있었다.

황승경 예술학 박사·문화칼럼니스트 lunapiena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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