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바꾸기의 귀재들이 호령하던 경마장… 그곳은 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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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순택의 풍경동물: 어릴 적부터 동물 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동물을 키우려고 부모님 속을 썩인 적도 많았지요. 대신 동물책을 많이 읽었지요. 작업을 위해서, 또는 다른 일로 국내외 여러 곳을 오갈 때면 자주 동물원에 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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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순택의 풍경동물]

같은 소리를 내면서도 , 다른 뜻을 가진 말들은 무척이나 흥미롭다 . 줄여 말하면 , 동음이의어 .
이런 낱말들을 가지고 말장난하기란 얼마나 즐거운가 . 밤에 밤을 구우니까 고소하구나 . 배에서 배를 먹으면 배가 부릅니다 . 차에서 차를 마시면 어떡하니 !
그런 말 중에 말이 있다 . 말은 우리를 사람이게 한다 . 지구에서 인간과 다른 생명체를 구별 짓게 하는 핵심 능력이 바로 말 아닌가 . 깨어나서 잘 때까지 , 말은 우리를 감싸는 일상이고 현실이다 . 하지만 또 다른 말은 일상과 살짝 떨어져 있다 . 돌아보라 , 우리 주변 어디에 말이 있는가 . 그 말은 마치 ‘ 백마를 탄 왕자님 ’ 처럼 어딘가 있을 테지만 , 곁에는 없는 환상처럼 느껴진다 . 갈기를 휘날리며 초원을 달리는 그런 말은 영화나 잡지 속에서나 익숙할 뿐이다 . 말과 더불어 말을 탄 사람도 어딘가 멀고 , 어딘가 근사해 보인다 .
2019 년 11 월 29 일 , 문중원이 죽었다 . 말을 타던 사람이었다 . 가장 빠른 말들이 달리는 경마장에서 15 년 말을 탄 베테랑 기수였다 . 말에서 떨어진 게 아니었다 .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첫 죽음이 아니었다 . 그가 속했던 한국마사회 부산경남경마공원 개장 이후 일곱 번째 죽음이었다 . 문중원은 경주마를 관리하고 기수를 감독할 수 있는 조교사 면허를 취득했지만 , 5 년 넘도록 마구간을 배정받지 못했다 . 갓 면허를 취득한 기수도 넙죽넙죽 배정받는 마구간을 왜 배정받지 못했을까 . 그가 남긴 유서는 한국마사회의 구조적 갑질과 만연한 부조리를 폭로했다 . 마사회 실력자들은 ‘ 말 잘 타는 ’ 기수보다 ‘ 말 잘 듣는 ’ 기수를 원했다 . “ 이번엔 살살 타라 ” 고 말하면 군말 없이 승부조작에 협조하라는 뜻이었다 . 거부하면 따돌림과 불이익이 뒤따랐다 . 기수들은 알아서 기고 , 알아서 줄 대고 , 술대접에 나서야 했다 . 오죽하더라도 살아야 하는 것이 산 자의 책무라지만 , 오죽하면 목숨을 끊고 억울함을 글로 남겼을까 .
용기를 낸 동료들과 유족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 공식 사과와 재발 방지책 마련을 요구하며 한겨울 거리농성을 벌였다 . “ 죽음의 경주를 멈춰라 !” 며 경기도 과천경마장에서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까지 오체투지로 얼어붙은 아스팔트를 기었다 . 말 바꾸기로 일관하며 사태 해결을 방관하던 마사회도 여론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 진상조사와 문제 개선에 합의하면서 100 여 일 만에 장례가 치러졌다 .
수사와 기소로 책임자들이 심판대에 올랐으나 1 심은 모두 무죄였다 . 2 심은 달랐다 . 이들의 부정거래와 갑질 , 증거인멸이 사실로 인정됐다 . 대법원에서 최종 유죄가 확정되기까지 6 년 세월이 걸렸다 .
경마장에서 달리는 말을 직접 본 적도 없는데 , 경마장 앞에서 오체투지로 기어가던 흰옷 입은 사람들의 행렬을 본 뒤로 내게 과천경마장은 달리는 말이 아니라 , 기어가던 사람들이 떠오르는 곳이 되었다 . 말 바꾸기의 귀재들이 말과 사람을 호령하던 그곳은 달라졌을까 . 사진으로 본 문중원은 작은 사람이었다 . 말에게 무겁지 않도록 . 어느새 7 주기가 다가온다 .
사진·글 노순택 사진사
*노순택의 풍경동물: 어릴 적부터 동물 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동물을 키우려고 부모님 속을 썩인 적도 많았지요. 책임의 무게를 알고부터 키우는 건 멀리했습니다. 대신 동물책을 많이 읽었지요. 시골로 내려와 살기 시작하면서 개와 닭과 제가 한 마당에서 놉니다. 작업을 위해서, 또는 다른 일로 국내외 여러 곳을 오갈 때면 자주 동물원에 들릅니다. 편안한 마음과 불편한 마음이,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스며들거든요. (격주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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