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빈의 스몰데이터] 최애는 한 명인데, 앨범은 왜 여러 장을 살까

김하빈 국립순천대 조교수 2026. 10. 27.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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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비자가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의 음반 45장을 69만 7500원에 샀다.

앨범 한 장이 몇 번의 반복 구매를 유도하는지, 그 비용은 얼마이며 팬들이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다섯 멤버로 구성된 그룹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2025년 앨범 《별의 장: TOGETHER》 기본 버전(일반반)에는 다섯 멤버 중 한 명의 포토카드가 무작위로 한 장 들어간다.

45장을 산 소비자가 바란 것은 음반 45장이 아니라 사진 한 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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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원 조사, 랜덤 굿즈 구매자 같은 음반 평균 4.1개 구매
원하는 멤버 1장 만나기까지 평균 5장…5장 사고도 셋 중 하나는 빈손
뽑기는 세계 공통의 판매법이지만 상업성 피로감은 임계점
해외 팬덤의 보이콧 경고등, 해법은 ‘구매의 출구’를 여는 것

(시사저널=김하빈 국립순천대 조교수)

2023년 12월10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23~2024 한국방문의 해 기념 K·Link 페스티벌에서 관객들이 콘서트를 즐기고 있다.ⓒ연합뉴스

한 소비자가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의 음반 45장을 69만 7500원에 샀다. 음악을 45번 들으려던 것이 아니다. 음반마다 무작위로 들어가는 사진 카드 중 원하는 멤버를 뽑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45장을 뜯어도 같은 사진만 거듭 나왔고, 소비자는 교환을 요구했다. 한국소비자원 상담 사례에 남은 이야기다.

이 사진 카드, 즉 포토카드는 아이돌 사진을 신용카드 크기로 인쇄한 수집용 카드다. 중고 거래 플랫폼 번개장터에서 2025년 포토카드 거래는 160만 건으로 전년보다 93% 늘었다. 음악은 멜론이나 유튜브 등으로 그때그때 듣고, 종이에 인쇄된 사진은 따로 사고파는 시장이 생긴 것이다.

문제는 원하는 사진을 얻는 길이 좁다는 데 있다. 카드가 무작위로 들어가면 가장 아끼는 멤버, 이른바 '최애'의 카드를 골라 살 수 없다. 언론은 희귀 카드를 모으거나 팬 사인회에 당첨되려고 수백만 원에서 1000만 원 넘게 쓰는 팬들의 지출을 조명했고, 국회는 2024년 국정감사에서 이를 '음반 밀어내기'라 부르며 기획사 대표들을 불렀다. 

팬의 열정 탓인지 기획사의 상술 탓인지를 두고는 시선이 갈린다. 어느 쪽을 탓하기 전에 숫자부터 보자. 앨범 한 장이 몇 번의 반복 구매를 유도하는지, 그 비용은 얼마이며 팬들이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음반 구매와 음악 감상은 별개의 소비

한국소비자원이 2022년 유료 팬덤 활동 경험자 500명을 조사한 결과, 음반 구매자의 48%는 무작위 상품이 든 음반을 굿즈(팬 상품) 때문에 샀다고 답했고, 원하는 상품을 얻으려고 같은 음반을 평균 4.1개 샀다. 반면 음악을 CD로 듣는다는 응답은 음반 구매자의 5.7%에 그쳤다. 음반 구매와 음악 감상이 사실상 분리돼 움직이는 셈이다.

음반 출고량과 온라인 음악 이용 순위를 집계하는 써클차트를 보면 이 분리는 시장 전체의 흐름이기도 하다. 상위 100개 앨범의 연간 출고량은 2018년 1933만 장에서 2023년 9417만 장으로 4.9배가 됐다. 같은 기간 상위 100곡의 음원 이용 지수 합계는 절반 수준(0.54배)으로 줄었다. 국내 음원 소비 지표는 반 토막이 났는데 음반 판매량만 수직 상승하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원하는 사진 한 장을 얻는 비용은 평균 12만 2000원

다섯 멤버로 구성된 그룹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2025년 앨범 《별의 장: TOGETHER》 기본 버전(일반반)에는 다섯 멤버 중 한 명의 포토카드가 무작위로 한 장 들어간다. 멤버별 확률이 같고 앨범마다 따로 뽑힌다고 가정하면, 원하는 멤버를 처음 만나기까지 평균 다섯 장을 사게 된다. 정가 2만 4400원이면 12만 2000원, 온라인 서점의 17% 할인가(2만 300원)를 적용해도 10만 1500원이다.

문제는 5장을 산다고 원하는 카드가 보장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앨범을 열 때마다 원하는 멤버가 아닐 확률은 80%이고, 이 일이 다섯 번 연달아 일어날 확률은 0.8을 5번 곱한 약 33%다. 5장을 사고도 셋 중 한 명은 빈손이 된다. 블로그와 카페의 '앨범 깡' 후기 중 개봉 장수를 숫자로 적은 117건의 중앙값도 5장이었고, 열에 하나는 20장 이상이었다.

한 번 결제할 금액은 정해져 있지만, 원하는 카드를 손에 넣고 구매를 끝낼 총액은 정해져 있지 않다. 같은 팬심, 같은 정가라도 카드를 고를 수 있는지, 앨범 한 장에 몇 장을 넣는지에 따라 필요한 지출이 달라진다. 결국 팬이 지갑을 여는 횟수는 팬심의 크기만이 아니라 상품의 설계 방식이 좌우한다.

값을 정하는 것은 사진이 아니라 사진을 얻는 규칙

포토카드에는 정가가 없다. 팬들끼리 사고파는 값이 사실상 유일한 가격표이고, 그 값에는 카드를 얼마나 원하는지와 얼마나 구하기 어려운지가 함께 담긴다. 번개장터에서 하이브 계열 12팀의 포토카드 매물 약 12만 9000건을 살펴보니, 어떤 경로로 얻은 카드인지에 따라 호가가 뚜렷하게 달랐다.

입수 경로가 명확한 낱장 매물 약 2만 5000건의 호가 중앙값을 보면, 앨범에 기본으로 들어가는 무작위 카드는 4500원 선이었다. 반면 특정 판매처 특전이나 콘서트·팬 행사 현장 카드는 1만 원을 훌쩍 넘겼고, 앨범 구매자를 추첨해 주는 '럭키드로우' 카드는 1만 5000원까지 뛰었다. 같은 팀, 같은 멤버의 얼굴을 인쇄한 카드라도 기본 앨범 카드보다 럭키드로우 카드가 3배 넘게 비쌌다. 사진의 인기와 발행량도 영향을 주지만, 결국 카드 값은 기획사가 세워 둔 관문이 까다로울수록 비싸진다. 

뽑기는 세계의 판매법, 그러나 피로감은 임계점을 넘었다

사실 무작위 뽑기 자체는 수집품 산업의 오랜 흥행 공식이다. 포켓몬 카드는 뜯기 전까지 내용을 모르는 '랜덤 팩'으로 세계 수집용 카드 시장을 100억 달러 규모로 키웠고, 중국 팝마트는 내용물을 모르고 사는 '블라인드박스' 인형 라부부의 열풍에 힘입어 지난해 상반기 매출을 3배로 늘렸다. 하지만 사람에 대한 애정과 유대로 움직이는 '휴먼 브랜드'에서는 공식이 달라야 한다. 아이돌 팬은 완성된 물건만 사고 돌아서는 단순 소비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동안 팬들은 아티스트를 키우기 위해 밤낮으로 음원을 스트리밍하고, 3분짜리 영상통화 팬사인회 영상을 직접 편집·배포해 신규 팬을 모으는 대가 없는 노동까지 자처해 왔다. 그러나 기획사가 이 헌신을 구매량과 투표수라는 숫자로만 줄 세우면서 팬덤 안에는 서열과 피로감이 깊어졌다. 

올해 초 동남아시아 팬들이 포토카드를 가위로 자르며 '#SEAblings'와 '#CancelKorea' 보이콧에 나선 이유도, 표면적인 온라인 설전 너머에 이러한 상업적 피로감이 임계점에 달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6 해외한류실태조사'에서 동남아 핵심 시장인 필리핀의 10~30대 41% 이상이 한류의 부정적 인식에 공감했는데, 제1원인은 '지나치게 상업적(29.4%, 1+2순위)'이라는 점이었고 K팝 이용 중단 이유 역시 과도한 경쟁을 부추기는 '팬덤 문화(17.1%)'였다. 팬의 애정을 판매량 실적으로만 챙길 뿐 동등한 파트너로 존중하지 않는 구조에 팬들이 직접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열정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의 문제

결국 뽑기의 재미가 소비자의 권리와 신뢰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앞선 소비자원 조사에서 응답자의 59.6%는 굿즈와 음반의 분리 판매를, 80.4%는 정확한 획득 확률 공개를 요구했다. 팬들은 뽑기를 없애 달라는 것이 아니라, 확률을 투명하게 알고 구매할 선택지를 달라고 말하고 있다.

그 선택지는 이미 시장 안에 있다. 세븐틴의 《HAPPY BURSTDAY》 DAREDEVIL 버전에는 무작위 포토카드가 네 장씩 들어 있고, 방탄소년단 《ARIRANG》의 Rooted 두 버전은 '포토카드 7종 1세트'를 통째로 넣어 모으기 위한 반복 구매를 없앴다. 핵심은 뽑는 재미를 남겨 두더라도 원할 때 구매를 끝낼 출구를 함께 열어두느냐에 있다.

45장을 산 소비자가 바란 것은 음반 45장이 아니라 사진 한 장이었다. 그 한 장에 닿는 길을 몇 장짜리로 만들지는 기획사가 정하고, 그 길을 걸을지는 팬이 정한다. 팬의 열정과 기획사의 상술을 따지기 전에 확인할 것은 하나다. 한 장으로 구매를 끝낼 길이 열려 있는가. 열려 있다면 몇 장을 살지는 팬의 선택이고, 닫혀 있다면 그것은 열정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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