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불타든 말든 권력에만 욕심, 지금이 최악”···공항은 ‘투표 귀국’ 행렬로 붐볐다[이스라엘 총선 르포]

조형국 기자 2026. 10. 27.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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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나란히 선 사진이 붙은 버스가 지나가고 있다. 예루살렘|조형국 기자

10·27 제26대 이스라엘 의회(크네세트) 총선을 하루 앞둔 26일(현지시간) 오전 4시, 이스라엘 벤구리온 국제공항은 한가득 짐을 끄는 이스라엘 시민들로 붐볐다. 180여석 규모의 만석 항공편에서 내린 이들은 입국심사장 앞에서 두 갈래 길로 갈라졌는데, 그중 외국인 입국심사대로 향한 이들은 20명이 채 되지 않았다. 이른 새벽 고국으로 돌아온 이들의 표정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걸음은 분주했다. 일부가 서둘러 떠난 후에도 공항엔 꾸역꾸역 입국 승객이 몰려들었다. 가족을 기다리는 노인들, 연인과 통화하는 청년들, 택시를 기다리는 여행객들이 뒤섞여 공항 1층 카페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이날 텔아비브 ‘인질광장’에서 만난 야이르 밀레(64)도 이틀 전 고향에 도착했다. 뉴욕에서 건축가로 일하는 그는 매년 여름 휴가철 텔아비브에 오지만, 올해는 총선 일정에 맞춰 휴가 일정을 미뤘다. 그는 “내가 타고 온 비행기도 내내 만석이었다”며 “투표 귀국은 사례가 아니라 현상”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파리에 사는 그의 친구는 이날 밤 귀국해 총선 당일 아침 투표하고 곧장 파리로 돌아간다고 했다.

1940년대 유럽에서 넘어온 부모에게서 태어나 평생 텔아비브에서 살아온 닐리 슐(76)도 광장에서 ‘투표 귀국’을 기다리고 있었다. 독일에 사는 그의 아들과 손녀가 막 귀국해 지금 광장으로 그를 만나러 온다고 했다. “지금 이곳에서 가족과, 희망을 기다리고 있다”며 들뜬 표정을 짓던 그는 울리는 전화에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26일(현지시간) 야이르 밀레(64)가 텔아비브 인질 광장에서 기념물을 촬영하고 있다. 텔아비브|조형국 기자

총선을 하루 앞둔 텔아비브와 예루살렘의 거리는 여느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투표할 거냐’는 질문 앞에서 이스라엘 시민들은 속에 품어왔던 각자의 열망을 쏟아냈다. 고수할 것이냐, 변화할 것이냐 저마다 방향은 달랐지만 더 나은 이스라엘의 미래라는 희망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삶을 위해 일어날 시간” 텔아비브선 변화 열망 꿈틀

인질 광장은 평온했다. 시민들은 가자지구 지하터널을 형상화한 시설물 근처를 거닐거나 광장 한가운데 설치된 피아노 곁에 앉아 대화를 나눴다. 터널 상징물은 2023년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 공격이 벌어진 날이 적힌 포스터로 뒤덮여 있었는데, 포스터에는 “삶을 위해 일어날 시간 6시29분”이라고 적혀 있었다.

10·7 참사는 변화를 바라는 이들의 이유였다. 밀레는 “10월7일의 책임은 현 정부에 있다”며 “국가 차원의 진상조사가 100% 필요하다”고 했다. 슐은 “비비(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별명)에게 중요한 건 시민 안전이나 국가 안보가 아니라 그 자신의 자리”라며 “그는 나라가 불타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화가 켈 케이나(45)는 현재 이스라엘의 정치가 “역사상 최악”이라고 했다. 그는 “반사회성 인격장애 집단에 시민들이 인질로 잡힌 느낌”이라며 “투표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케이나는 “오직 바라는 게 권력뿐인 이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오래 걸리겠지만 우리는 고쳐낼 것”이라며 흑연과 파스텔을 나눠 든 양손으로 광장 곳곳에 설치된 기념물과 이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풍경을 화폭에 옮겨 담았다.

고등학교 교사 곤(52)이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재집권에 반대하는 이유는 ‘경제’와 ‘교육’이었다. 그는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는 것부터 연료비와 집세까지 모든 것이 부담”이라며 네타냐후 집권 20년에서 이어져 온 정책 실패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또 그는 국가적 자원이 안보에 쏠리면서 교육 예산이 급격히 줄었다며 “이스라엘 교육은 수년째 후퇴하고 있다”고 했다.

평화와 민주주의의 회복을 말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요하르(31)는 “현 정부에서 무너진 민주주의를 서둘러 회복하고, 전쟁 역시 빨리 끝나야 한다”며 “변화가 있을 것이라 믿는다”고 했다. 케이니는 “가자지구와 정착촌의 끔찍한 폭력도 모두 멈춰야 한다”며 “나는 그림을 그리며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싶을 뿐”이라고 했다.

변화를 바라는 시민들에게 이번 선거는 단순한 정권 교체 이상의 의미였다. 민주주의와 전쟁, 치솟는 물가, 교육 소외, 종교인 특혜, 정착촌에서 빈발하는 폭력까지 “바꿔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의 이유는 다양했다.

“비비를 믿는다” 네타냐후 지지층은 결집
27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한 거리에서 선거운동 티셔츠를 입은 청년들이 극우 정치인 베잘렐 스모트리히의 사진이 인쇄된 홍보물을 들고 춤을 추고 있다. 예루살렘┃조형국 기자

보수 성향이 강하고 종교적 색채가 짙은 예루살렘에서는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거리와 광장에서는 리쿠드당과 종교·극우 정당의 선거 운동이 이어졌다. 이날 예루살렘 시온 광장에서는 구레나룻을 따 내리고 키파를 쓴 청년들이 베찰렐 스모트리치 대표 사진이 붙은 ‘하치오누트 하다디트’(종교적 시오니스트당) 깃발을 흔들며 구호를 외치고 춤을 췄다. 차도에는 네타냐후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나란히 선 선거 광고가 붙은 버스가 지나다녔다. 예루살렘으로 들어서는 길목의 차도에는 모즈타바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조란 맘다니 뉴욕시장·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등이 나란히 선 사진 아래 “그들이 이기게 두지 말라”는 문구가 적힌 광고가 설치됐다.

26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예루살렘 야파 거리에서 만난 모셰 토티아슈빌리(72)가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고 있다. 예루살렘|조형국 기자

네타냐후 지지자들은 그의 카리스마에 호응했다. 벤예후다 거리에서 금은방을 운영하는 요나탄(43)은 “이스라엘을 운영할 수 있는 이는 ‘빅보스’뿐”이라며 “비비는 안보 문제에서 절대 협상하지 않는 진실한 사람”이라고 했다. 방산업체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는 모셰 토티아슈빌리(72)는 “비비가 많은 일을 했지만 아직 못다 한 일들이 많다”며 “과제를 끝낼 수 있게 기회를 더 줘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파가 더 적극적으로 투표해야 조작된 사건으로 난처해진 비비를 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26일(현지시간) 이스라엘 벤예후다 거리에서 만난 하레디(초정통파 유대교인) 시몬 푹스(22)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선거 현수막 옆에 서 있다. 예루살렘|조형국 기자

외부 인사를 끌어들이는 네타냐후 총리의 선거 전략은 지지층 결집에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리쿠드당 선거운동을 돕는 하레디(초정통파 유대교인) 청년 시몬 푹스(22)는 네타냐후 총리를 지지하는 이유로 “트럼프 대통령과 관계가 좋다”는 점을 꼽았다. 그는 “이틀 전 네타냐후 총리가 왔었는데 선거 유세 분위기가 매우 뜨거웠다”며 “빨리 하레디 징집 문제를 해결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토티아슈빌리는 “가디 아이젠코트(야샤르당 대표)는 아랍인, 하마스 지지자들과 의회에 들어가려 한다”고 했다.

27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모라샤 커뮤니티센터에 마련된 투표소 앞에서 유대교 전통 복장을 한 어린이들과 주민들이 오가고 있는 가운데 선거운동복을 입은 운동원이 홍보물을 나눠주고 있다. 예루살렘┃조형국 기자

예니브(51)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가 선거의 변수가 되긴 어렵다며 “그 전에 표심을 정할 조건이 충분히 많았다. 트럼프 지지는 그 결심을 각자 방향으로 강화할 뿐”이라고 말했다.

27일 실시되는 이스라엘 총선은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진행된다. 출구조사 결과는 이날 오후 10시(한국시간 오전 5시) 발표될 예정이다.

텔아비브·예루살렘 | 조형국 기자 situat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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