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에디는 에디, 앨리스는 앨리스일 뿐

유선희 기자 2026. 10. 26.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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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트랜스 여성이 있다.

국가에 의해 자행된 서울 용산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고자 했던 '두 개의 문'(2012), 참사 이후 살아남은 자들이 겪는 깊고 어두운 트라우마를 조명한 '공동정범'(2018) 등 한국 독립영화사에 한 획을 긋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온 김일란 감독이 8년 만에 신작 '에디 앨리스: 테이크'(2026년 10월28일 개봉)를 들고 돌아왔다.

영화는 트랜스 영화인 에디와 앨리스가 자신의 삶을 재정립하는 여정(트랜지션·Transition)을 영화의 필름 편집과 교차한다.

"이 다큐는 주인공들과 감독·스태프 사이 관계의 '밀도'가 높았기 때문에 가능했어요. 에디가 타이에 수술하러 갔을 때 마치 작은 공동체처럼 간병까지 함께 했으니까요. 다일레이션 장면은 에디가 '알려지는 게 필요하다'고 먼저 제안했어요. 수술을 결심한 트랜스 여성조차 잘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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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문’ 김일란 감독 신작 다큐 ‘에디 앨리스: 테이크’】
수영장 다니고, 춤 배우는 평범한 일상이 꿈… 두 트랜스 여성의 삶 담아
김일란 감독의 신작 다큐멘터리영화 ‘에디 앨리스: 테이크’ 포스터. 시네마달 제공

두 명의 트랜스 여성이 있다. 그들의 꿈은 수영장을 다니거나 춤을 배우는 것이다. 비트랜스 여성에겐 평범한 일상에 불과한 일들이 사회적 편견과 차별적 시선에 가로막힌 트랜스 여성에겐 이루고픈 꿈이다. 촬영을 위해 허름한 동네 목욕탕에 들어선 ‘앨리스’는 “난생처음”이라며 줄지어 늘어선 목욕 바구니를 보며 신기해한다. 따뜻한 욕탕에 몸을 담근 앨리스는 끝내 눈물을 흘린다. 곧 성확정수술(성전환수술)을 받을 예정인 ‘에디’는 조카에게 자신을 이렇게 설명한다. “남자로 태어났지만 여자인 에디. 아니, 에디는 그냥 에디일 뿐”이라고.

국가에 의해 자행된 서울 용산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고자 했던 ‘두 개의 문’(2012), 참사 이후 살아남은 자들이 겪는 깊고 어두운 트라우마를 조명한 ‘공동정범’(2018) 등 한국 독립영화사에 한 획을 긋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온 김일란 감독이 8년 만에 신작 ‘에디 앨리스: 테이크’(2026년 10월28일 개봉)를 들고 돌아왔다. 영화 개봉을 앞둔 10월20일 서울 용산구 한강로 한 카페에서 만난 김일란 감독은 ‘오랜만의 장편이라 반갑다’는 인사에 “그간 ‘연분홍치마’(성소수자 인권운동·미디어실천 단체) 활동을 하며 예능·웹드라마를 만들고 다큐나 극영화 프로듀싱도 하는 등 바쁘게 지냈다”고 했다.

‘두 개의 문’ ‘공동정범’ 등 사회적 이슈와 메시지를 던지는 다큐를 만들어온 김일란 감독이 이번엔 실험적 형식이 돋보이는 ‘에디 앨리스: 테이크’를 선보인다. 시네마달 제공

삶을 재정립하는 여정

‘에디 앨리스: 테이크’는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한 에디(박서연)와 앨리스(이정민)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영화다. 에디는 13년차 트랜스젠더 활동가이자 ‘잘하면 유쾌한 할머니가 되겠어’ 등의 에세이도 낸 작가고, 앨리스는 ‘동주’ ‘우리집’ 등 유명 영화의 촬영에 참여한 25년차 베테랑 조명감독이다.

“시작은 에디였어요. 워낙 유쾌 발랄하고 트랜스 여성 인권운동의 대표주자이기도 한 에디를 연분홍치마의 유튜브 예능 ‘퀴서비스’ 진행자로 섭외하면서 가까워졌어요. 그러다 에디가 ‘내 삶을 기록하는 활동을 하고 싶다’며 먼저 저한테 다큐를 제안했죠.” 대한민국 군인 최초로 성확정수술을 받은 변희수 하사 사망사건으로 모두가 힘들 때였다. 에디는 특히 변 하사와 개인적으로 가까운 사이였던 터라 더 심한 고통을 겪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를 망설이던 김 감독이 운명처럼 앨리스를 만났고, “이 두 명의 이야기라면 새로운 도전을 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단다.

‘메타-하이브리드 시네마’라는 이름이 붙은 것처럼, 영화는 형식적으로도 기존 기록형 다큐와는 결이 다르다. 논픽션과 픽션, 퍼포먼스 등이 뒤섞인다. 촬영 현장의 스태프와 감독의 디렉팅이 등장하고, 영화 현장의 조명감독 앨리스와 그가 비추는 에디가 등장한다. 그렇게 영화의 안과 밖이 허물어진다. 영화는 트랜스 영화인 에디와 앨리스가 자신의 삶을 재정립하는 여정(트랜지션·Transition)을 영화의 필름 편집과 교차한다. “둘의 이야기를 영화화할 때, 이미 ‘트랜지션’이란 말이 갖는 이미지를 어떻게 화면으로 구성할지를 고민했어요. 형식을 먼저 정한 거죠. 트랜스젠더의 정체화 과정이 영화와 닮았다고 생각했고, 그 단어를 에디와 앨리스의 삶과 서사를 꾸려가는 영화 안에서 형식적으로도 느낄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죠.”

그래서일까. 김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며 힘들었던 이유가 ‘감독으로서의 욕망을 드러내는 작업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전작인 ‘두 개의 문’이나 ‘공동정범’은 당위와 명분이 앞서는 영화잖아요. 이 작품도 운동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다큐의 형식과 미학에 관해 더 적극적인 고민과 표현을 한 작품이에요. 저에게도 큰 도전이었죠.”

영화엔 대구를 이루는 트랜지션이 반복된다. 앨리스에서 에디로 서사가 트랜지션되고, 둘이 다니는 서울 이태원이란 같은 공간이 낮에서 밤으로 트랜지션된다. 심지어 앨리스의 반려묘와 에디의 반려견까지 묘한 대구를 이룬다. 앨리스는 자신의 트랜지션이 끝났다고 말하고, 에디는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말한다. “사실 트랜지션이라는 건 모두가 겪는 과정이에요. ‘출산’을 예로 들어볼까요? 내 몸이 달라질 뿐 아니라 삶 속의 관계나 호칭도 모두 달라져요. ‘노화’도 마찬가지죠. 저한테 트랜지션은 ‘시간을 박음질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영화 속 앨리스는 ‘난생처음’ 목욕탕에 간다. 욕탕에 몸을 담근 그는 끝내 눈물을 보인다. 시네마달 제공
에디는 성확정수술을 받기 위해 타이행을 감행한다. 그리고 수술 후 다이레이션(질 확장 처치)까지 모든 과정을 공개한다. 시네마달 제공

그간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들

영화 속 앨리스는 영화에 빠져 영화 일을 시작했다. 조명감독은 “땀 흘리는 일(남성의 영역)을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나온 선택이다. 앨리스는 ‘남성’으로 살기 위해 안 해본 게 없다. 여성과 사귀고 결혼도 했다. 더는 남성으로 살 수 없단 생각에 이혼 후 방황이 시작됐다. 성확정수술을 하고 주민등록번호 ‘2’자도 얻었다. 하지만 드라마 촬영에 참여한 그에게 돌아온 건 ‘조명감독은 전체 리딩 과정에 참여하지 말라’는 사실상의 해고 통보였다. 앨리스는 “나이 40살이 돼 성형 같은 건 하고 싶지 않다”면서도 매일 몸의 치수를 재고 산부인과 검진도 받는다. 그의 꿈은 춤을 추는 것이다.

에디는 타이로 성확정수술을 받으러 갈 준비를 한다. 8년 넘게 호르몬주사를 맞으며 준비해왔다. 에디는 ‘잊히는 게’ 두렵다. 학창 시절과 군복무 시절 등 사진 속 에디의 얼굴은 모두 긁혀 사라졌다. 에디의 꿈은 자유롭게 수영을 하는 것이다.

김일란 감독은 에디가 타이에서 수술받는 전 과정까지 함께했다. 영화에는 에디의 ‘다일레이션’(Dilation·수술로 만든 질관의 깊이와 폭을 유지하기 위해 규칙적으로 확장하는 과정)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다큐는 주인공들과 감독·스태프 사이 관계의 ‘밀도’가 높았기 때문에 가능했어요. 에디가 타이에 수술하러 갔을 때 마치 작은 공동체처럼 간병까지 함께 했으니까요. 다일레이션 장면은 에디가 ‘알려지는 게 필요하다’고 먼저 제안했어요. 수술을 결심한 트랜스 여성조차 잘 모르니까요.”

김일란 감독은 영화를 상영한 후 관객과의 대화(GV) 대신 ‘시네마틱 디스포리아’라는 렉처 시리즈(연쇄 강연)를 준비했다. “트랜스젠더의 월경, 성적 즐거움, 가족계획 등 다양한 주제와 함께 얘기 나눌 전문가 패널이 준비돼 있어요. 아무도 ‘트랜스 여성도 월경을 해요?’라고 묻지 못해요. 사실 그들이 수술 후 다일레이션을 하며 흘리는 피가 ‘월경’과 같은 건데. 이 영화가 그간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를 밖으로 끌어내는 계기가 되길 바라요.” 렉처 시리즈는 어려운 독립영화 시장의 현실 속 ‘장기 상영’을 위한 포석이기도 하다. “관객을 만나는 방식은 다양하죠. 가장 좋은 건 극장 상영인데, 상영관조차 잡기 어려운 게 현실이잖아요. 공동체 상영, 지방 순회 상영 등 관객과의 접점을 넓히기 위해 영화와 강연을 패키징해보면 어떨까, 여러 가지로 고군분투하는 거죠.”

김 감독은 관객이 이 영화를 각자의 관점으로 자유롭게 관람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눠주길 원했다. 더불어 작은 소망은 “혐오와 차별이 판치는 현실 속에서 이 영화로 트랜스젠더의 삶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이라고 했다. 감독의 이런 바람은 차기작으로도 연결된다. 다음 작품은 “1980년대 이태원 트랜스클럽을 주름잡았던, 이제는 60·70대가 된 나이 든 트랜스 여성에 관한 다큐”란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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