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패대기 쳐졌을 때, 유머 있어야 뭉개지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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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독자를 웃기고 싶다'는 열망에서 글을 쓰는 작가가 있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넘어 성인독자의 마음까지 울린 베스트셀러 '순례주택'을 쓴 유은실(52)작가다.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작가는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경험이지만 픽션에는 담을 수 없는 것들이 누적돼 있었다. 마치 조각이불처럼 그런 삶의 조각들을 모아봤다"고 말했다.
"유년동화를 잘 써야 아동청소년 문학의 고수라고 생각한다. 중학년 독자를 대상으로 한 장편이 48색 크래파스로 그린 그림이라면, 유년동화는 12색 크래파스로 누구도 그리지 않았던 새로운 그림을 그려내야 하는 거다. 원고지 45매인 '나도 편식할거야'를 쓸 때가 '순례주택' 때보다 훨씬 힘들었다. 내가 어른이라는 한계 때문에 앞으로 더 못 나가는 것 같아서 머리를 박고 울었었다. 그 고비를 넘기고 나니 드디어 동화작가가 된 것 같은 기쁨이 있었다. 내 안에 있는 모든 건강함과 활기참을 담아낸 어린이 이야기라서, 힘들 때면 내 책 중에서 유일하게 꺼내보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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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독자를 웃기고 싶다’는 열망에서 글을 쓰는 작가가 있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넘어 성인독자의 마음까지 울린 베스트셀러 ‘순례주택’을 쓴 유은실(52)작가다. 2005년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으로 등단한 그는 ‘나도 편식할거야’ ‘멀쩡한 이유정’ 등 30여권의 작품을 발표하면서 특유의 유머와 풍자가 넘치는 작품 세계를 구축해왔다. 사는 곳, 학벌 등을 잣대로 차별이 만연한 세태를 꼬집은 청소년소설 ‘순례주택’은 세대를 넘은 공감을 받으며 30만 부 이상 판매됐다.
그가 최근 특별한 가족사와 투병기 등 쉽지 않은 여건 속에서도 웃음과 명랑함을 잃지 않고 지내온 삶을 되돌아본 에세이집 ‘나의 명랑한 생존기’를 펴냈다.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작가는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경험이지만 픽션에는 담을 수 없는 것들이 누적돼 있었다. 마치 조각이불처럼 그런 삶의 조각들을 모아봤다”고 말했다.
에세이집에는 류머티즘으로 수십년 간 휠체어 생활을 하면서도 농담과 여유를 잃지 않았던 아버지, 서울 독산동 골목을 뛰어다니며 유년 시절 내내 책과 담을 쌓고 살다 20대 중반 뒤늦게 아동문학의 매력에 빠진 일 등 그를 작가로 빚어온 내밀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책을 안 읽는 어린이도 자라서 작가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작가는 처음 만난다.
“음, 나도 이런 질문은 처음 받는다. (웃음) 강연에서 만난 아이들이 ‘저희도 책 읽지 마요?’하고 묻는데 그러면 ‘그때 못 읽는 책 지금 읽느라 지금 되게 바쁘다’고 말해준다. 어릴 때 집에 있던 계몽사 전집에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방랑의 고아 라스무스’가 있었는데 그걸 밟고 쌓고 놀기만 했지 읽지를 않았다. 그때부터 봤다면 더 좋은 작가가 됐으려나.”
유은실 작가에게 스웨덴 동화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특별하다. 요리학원 강사로 일하다 뒤늦게 문창과로 진로를 틀었던 20대, 과외 하던 학생 추천으로 린드그렌을 알게 됐다. 드라마로만 알던 ‘말괄량이 삐삐’에 원작 동화가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 ‘말괄량이 삐삐’를 시작으로 그의 작품을 섭렵하기 시작했고 린드그렌은 “작가로서의 출발점이자 지향점”이 됐다. 린드그렌 ‘덕후’를 자처했던 그는 2024년부터 4년 연속으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추모상 한국 후보로 선정되며 ‘성덕’이 됐다.
―린드그렌 문학세계의 어떤 점이 그렇게 매력적이었나?
“이렇게 쉬운 말로 인생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게 장엄했다. 당시만 해도 아동문학을 ‘마이너리그’로 여겼다. ‘아줌마들이나 쓰는 걸 왜 쓰냐’고 다들 말렸다. 하지만 더 어린 사람부터 읽을 수 있는 문학이 더 넓은 문학이란 생각이 들었다. 린드그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한 글을 쓰고 싶다’고 했는데 나 역시 그런 마음이었다.”

그의 또다른 문학의 뿌리는 몸이 불편했던 아버지다. 초등학교 교사였지만 류머티즘이 악화되며 일자리를 잃었고, 35년간 휠체어 생활을 했다. 하지만 늘 낙관과 웃음을 잃지 않았다. 거동이 어려운 상태에서 배에 장루를 내는 직장암 수술까지 받았지만 ‘직장암이 선물인 것 같다’며 이렇게 말했다. “휠체어 탄 사람이 배 쪽으로 배설을 할 수 있는 건 혁명이라고.”
―힘든 상황에서도 늘 농담을 건네며 웃음을 줬던 아버지가 ‘어린 독자를 웃기고 싶다’는 열망의 뿌리라고 했다.
“작가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헤밍웨이가 ‘그야 불행했던 어린 시절이지’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 말이 위로가 됐다. 내 어린 시절 불행은 아버지의 장애였다. ‘명랑하게 이겨냈으니까 불행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아버지가 그렇게 힘들고 어두운 삶을 살면서도 문학과 음악의 힘으로 그 시간을 통과하고 빛으로 나아가는 걸 보여주셨다. 어떤 어두운 이야기에서 출발하더라도 아동문학가라면 끝내 다다라야 하는 지점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무릎 관절 변형으로 안방 아랫목에서 방석을 밀며 다니던 아버지를 회상하면서 그는 “휠체어로는 넘을 수 없는 수많은 턱을 아프게 볼 줄 아는 어린이가 되었다. 그래서 작가가 된 것 같다”고 썼다.
―명랑함과 유머는 왜 중요한가.
“아이들도 나도 인간으로 살아야하니까. 사람으로 사는 일은 힘들다. 유머는 마음이 바닥에 떨어지고 패대기 쳐졌을 때, 뭉개지지 않게 해주는 완충장치 같은 것이다. ‘나의 명랑한 생존기’란 에세이 제목은 사실 내가 쓴 모든 책을 관통하는 이야기다. 아이들에게 명랑한 생존의 기운을 전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들의 명랑한 생존기’가 될 수 있도록.”
-유머에도 종류가 많다. 어떤 종류의 유머를 좋아하나?
“얼마 전에 인간극장을 봤는데 주인공이 뇌출혈로 언어능력에 손상을 입은 성악가였다. 노래는 되는데 말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 주인공 아버지가 ‘쟤는 다치기 전에 워낙 많이 말을 해서 이제 말을 좀 적게 해도 돼’라고 농담했다. 그 말에서 깊은 사랑이 느껴졌다. 그런 유머를 좋아한다. 슬픔의 강을 스스로 건넌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유머다.”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유년동화 ‘나도 편식할거야’ 등 정이 이야기 시리즈를 꼽았는데.
“유년동화를 잘 써야 아동청소년 문학의 고수라고 생각한다. 중학년 독자를 대상으로 한 장편이 48색 크래파스로 그린 그림이라면, 유년동화는 12색 크래파스로 누구도 그리지 않았던 새로운 그림을 그려내야 하는 거다. 원고지 45매인 ‘나도 편식할거야’를 쓸 때가 ‘순례주택’ 때보다 훨씬 힘들었다. 내가 어른이라는 한계 때문에 앞으로 더 못 나가는 것 같아서 머리를 박고 울었었다. 그 고비를 넘기고 나니 드디어 동화작가가 된 것 같은 기쁨이 있었다. 내 안에 있는 모든 건강함과 활기참을 담아낸 어린이 이야기라서, 힘들 때면 내 책 중에서 유일하게 꺼내보는 책이다.”

―‘순례주택’은 30만부 판매되며 한국문학 독자들이 사랑하는 스테디셀러가 됐다. 이렇게 많이 읽힐 것을 예상했나.
“성인 독자들이 좋아할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아동문학은 구매자와 독자가 다른 장르다. 부모란 허들을 넘어야 한다. 주거지 차별이나 함부로 말하는 어른 같은 문제를 다루니 싫어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 책을 쓸 때 문학이란 간접 경험을 통해서라도 어른다운 어른이 있는 작은 유토피아를 아이들에게 선물하고 싶었다. 성인 독자와의 만남이 있을 때면 ‘청소년 소설인데 좋으세요?’라고 물어보는데 ‘우리에게도 어른이 필요하다’고 답하시더라. 어른다움, 좋은 어른에 대한 고민을 하는 어른들도 많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유 작가는 그레이브스(자가면역질환), 섬유근육통 등의 질환을 앓으면서 작품활동을 해왔지만, 최근 통증이 심해지면서 쓰고 있던 장편소설을 포기해야 했다. 올해 제헌절 새벽에는 S자 결장 18.6cm를 잘라내는 응급수술을 받고 여전히 회복 중에 있다. 그는 “티코엔진에 무거운 화물을 싣고 달려온 것 같다”며 “이제 가벼운 티코가 돼 골목을 누비고 싶다”고 했다.
―‘티코’가 돼 앞으로 쓸 작품들은 어떻게 달라질지 궁금하다.
“픽션을 쓸 때는 플롯을 머리에 이고 산다. 수명이 줄어들 것처럼 몸이 힘들다. 그런데 에세이를 쓰면서 처음으로 고통스럽지 않은 글쓰기를 했다. 당분간 에세이에 집중하고 싶다. 또 지금 체력으로 쓸 수 있는 그림책 글 원고 작업을 주로 하게 될 것 같다.”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유은실 작품이 아무리 웃겨도 인간 유은실을 따라올 수 없다”고 한다고 했다. 어떤 작가로 남고 싶냐는 질문에 그는 웃으며 에세이의 한 구절을 가리켰다.
“최근에는 ‘작가 유은실이 앞으로 써낼 서사’보다 ‘유은실이라는 인간의 서사’가 독자들에게 미칠 영향을 많이 생각한다. 나의 어린 독자들이 ‘이렇게 살았으면’ 하는 삶을 나에게도 주고 싶다…늙도록 경쾌함을 잃지 않고, 이 세상에 태어난 걸 기뻐하며, 사람으로 사는 걸 고마워하며 살았다‘는 서사를 남기고 싶다. 끝끝내 희망과 행복을 찾는 찬란한 장르, 아동청소년문학이 그러하듯.”(215p)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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