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핀란드에서 찾은 디자인의 다음 장, 부산

전시·그래픽디자이너로 일하며 나는 하나의 시각적 아이디어를 다양한 매체로 확장하고, 일관된 경험으로 만드는 일에 집중해 왔다. 어떻게 하면 더 잘 보이고, 더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가 늘 중요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실무 경험이 쌓일수록 또 다른 질문이 생겼다. 잘 보이게 만드는 것만으로 좋은 디자인이라 할 수 있을까? 디자인이 사람의 행동과 관계까지 변화시킬 수 있다면 디자이너의 역할도 결과물을 만드는 것보다 더 넓어질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고민을 안고 부산시와 부산디자인진흥원의 ‘부산 미래 디자이너 양성 지원 사업’을 통해 핀란드 알토대학교(Aalto University)의 글로벌 디자인 연수에 참여했다.
알토대학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정답을 알려주지 않는 수업’이었다. 강사는 해결책을 먼저 제시하기보다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고, 우리는 하나의 문제를 둘러싼 사람과 사회, 기술과 환경의 관계를 살펴보며 스스로 방향을 찾아갔다. 빠르게 답을 찾고 결과물을 만드는 데 익숙했던 나에게는 낯설면서도 신선한 과정이었다. 그동안 ‘무엇을 만들 것인가’를 먼저 고민했다면, 이곳에서는 ‘왜 이것을 만들어야 하는가’를 오래 질문했다. 결과보다 질문이 먼저라는 단순한 순서의 변화가 디자인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 변화는 핀란드의 전시 현장에서 더욱 선명해졌다. 하비타레(Habitare)에서는 부모와 아이가 같은 형태 위에 저마다의 색을 더하고, 가족이 함께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AD Museum의 ‘Craft Punk’에서도 관람객의 참여와 흔적이 전시의 일부가 되었다. 완성된 것을 조용히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손을 움직이고 생각을 더하면서 전시가 계속 달라지는 모습이 특히 기억에 남았다. 알토대학에서 경험한 ‘함께 생각하는 디자인’이 이곳에서는 ‘함께 만드는 디자인’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알바 알토 하우스(Alvar Aalto House)’와 ‘아르텍(Artek)’에서는 또 다른 힌트를 발견했다. 건축, 가구, 조명, 재료가 각자 돋보이기보다 서로 관계를 맺으며 하나의 경험을 만들고 있었다. 특히 하나의 기본 원리를 다양한 형태로 확장해 나가는 아르텍의 방식은 내가 하나의 시각 요소를 여러 매체로 확장해 온 작업 방식과도 닮아 있어 반가웠다. 동시에 그래픽 역시 공간이 완성된 뒤 더해지는 장식이 아니라 공간과 동선, 오브젝트와 사람을 연결하는 하나의 시스템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핀란드에서의 경험은 귀국과 함께 끝나지 않았다. 현재 준비 중인 전시 프로젝트에서도 그래픽의 완성도만이 아니라 공간과 관람객이 어떻게 관계를 맺을지 고민하고 있다. 앞으로는 디자이너가 기본적인 시각 언어와 규칙을 제안하고 시민이 직접 색과 형태를 선택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더해, 그 결과가 다시 전시의 일부가 되는 ‘워크숍처럼 작동하는 전시’를 만들어보고 싶다. 알토대학에서 시작한 팀 프로젝트 역시 브랜드 경험 디자인으로 발전시켜 공모전 출품을 준비하고 있다.
핀란드에서 가져온 가장 큰 것은 새로운 스타일이나 유행이 아니었다. 오히려 디자인을 시작하는 질문이 달라졌다. 보여주는 디자인에서 함께 생각하는 디자인으로, 그리고 함께 만드는 디자인으로. 앞으로 부산에서도 시민이 단순한 관람객이 아니라 디자인 과정에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더할 수 있는 장면을 만들고 싶다. 세계에서 얻은 경험을 부산의 현장에서 다시 실험하고, 그 경험이 또 다른 사람의 참여로 이어지는 것. 어쩌면 내가 핀란드에서 발견한 디자인의 미래는 바로 그런 모습에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