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에 녹아 든 '겸손한 휴게소' [산 속의 건축]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건축가의 작품을 소개해 달라는 독자의 요청이 들어왔다. 서울월드컵경기장과 올림픽공원체조경기장 등 대규모 건축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건축가 류춘수의 이름을 일찌감치 각인시킨 작품은 설악산 한계령에 자리한 작은 휴게소다.
한계령휴게소는 류춘수 건축가가 김수근의 건축사무소 '공간'에서 일하던 1979년 설계를 시작해 1982년 완공한 작품이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건축가의 작품을 소개해 달라는 독자의 요청이 들어왔다. 한국 현대건축의 1세대로 꼽히는 김수근 건축가(1931∼1986)와 그의 제자 류춘수 건축가(1946~)가 떠올랐다. 서울월드컵경기장과 올림픽공원체조경기장 등 대규모 건축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건축가 류춘수의 이름을 일찌감치 각인시킨 작품은 설악산 한계령에 자리한 작은 휴게소다.
한계령휴게소는 류춘수 건축가가 김수근의 건축사무소 '공간'에서 일하던 1979년 설계를 시작해 1982년 완공한 작품이다. 그해 한국건축가협회 대상을 받으며 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거대한 기념비도, 화려한 문화시설도 아닌 산길의 작은 휴게소도 하나의 건축 작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한계령휴게소의 첫인상은 "엥?"이었다. 전체적인 인상은 어둡다. 검은색에 가까운 나무로 외벽을 둘렀다. 고작 이걸 보려고 엑셀과 브레이크를 번갈아 밟으며 꼬불꼬불 산길을 돌아 해발 1,000m까지 올라올 가치가 있을까 싶었다. 왜 높은 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은 걸까? 한동안 침묵 속에 휴게소를 바라보았다. 30분쯤 되었을까, 건물이 산처럼 보였다. 친환경 개념이 거의 없던 50여 년 전 건축가는 건물이 아닌 산을 보았던 게 아닐까.

어두운 톤과 목조 자재는 한계령을 찾은 이들의 시선이 인공 건축물에 빼앗기지 않고, 오롯이 설악산의 비경을 향하도록 한 장치일 테다. 설악산 서북능선의 흐름과 그대로 이어진 지붕은 마치 모자를 푹 눌러쓴 것처럼 아래로 깊게 내려앉아 있다. 겨울에 1m 이상 내리는 눈도 지붕 모양을 결정하는 데 한몫했다. 가파른 암벽 비탈을 깎아 평지를 만드는 대신 기둥의 길이를 다르게 세웠고, 허공에 뻗어 나온 테라스 덕분에 공중에 떠서 남설악을 감상할 수 있다.
30여 분 동안 휴게소에 멈춘 차량은 10대 남짓. 서울-양양 고속도로가 뚫려서 이제 한계령을 찾는 발걸음은 뜸해졌지만, 휴게소는 여전히 제 역할을 하고 있다. 서북능선을 오르내리는 등산객과 바이크족, 그리고 옛길의 정취를 더듬으러 온 여행객만으로도 휴게소 내부는 제법 온기가 돈다. 예상컨대 그가 그리던 휴게소의 모습이 이러하지 않았을까. 기회가 된다면 건축가와 이곳에서 차 한 잔 나누며 묻고 싶다.
"선생님은 산을 짓고 싶으셨던 겁니까?"
* 건축 매거진 C3의 큐레이션 및 자문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월간산 10월호 기사입니다.
Copyright © 월간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