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원가 14만원 보청기, 팔 땐 132만원… 9배 뻥튀기의 비밀

박경담 2026. 10. 26.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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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인의 필수품인 보청기를 살 때 최대 131만 원을 지원받습니다.

우선 청각장애인이 보청기 관리를 5년 동안 얼마나 받을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지원금을 먼저 주는 건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만약 청각장애인이 보청기 피팅을 많이 받지 않아도 사용할 수 있다면 판매업체는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고도 건보 지원금 속 관리비를 그대로 가져가게 된다.

한국보청기판매자협회 관계자는 "청각장애인은 1년에 네 차례 이상 관리 서비스를 받기 때문에 오히려 지원금이 늘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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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뻥튀기 보청기의 비밀]
<상> 보조금의 역설
2015년, 최대 지원금 34만→131만 원
가격 올리고 이윤 큰 고가제품 판매 집중
자부담 적은 청각장애인, 값비싸도 선택
건보·판매업체, 관리비 선반영 감안 필요
박지원 "건보료 쓰는 지원금, 재산정해야"
편집자주
청각장애인의 필수품인 보청기를 살 때 최대 131만 원을 지원받습니다. 귀를 열어주고 비용 부담도 덜어주는 장애인 지원에 반대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그런데 지원금이 판매업체 이윤을 보장하고 있다면 말은 달라집니다. 이에 한국일보는 거품 낀 보청기 시장을 해부하고 재정을 낭비하지 않으면서 장애인을 지원할 방법을 모색해봤습니다.
21일 서울의 한 보청기 가게 간판. 기사 내용과 무관함. 정다빈 기자

19일 세종시의 한 보청기 판매점을 찾았다. 청각장애인용 보청기를 묻자 직원은 세 제품을 보여줬다. 각각 99만 원, 115만 원, 130만 원짜리였다. 청각장애인용 보청기는 모두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이 정한 가격(고시가격)이라 더 깎기 어려운 최저가라고 했다. 청각장애인은 보청기값 대부분을 건보에서 지원받는다. 일반 청각장애인은 보청기 고시가격의 90%, 최대 99만9,000원까지 받을 수 있다. 130만 원짜리를 사면 본인 부담은 30만1,000원이다. 직원은 "지원금을 최대한 받기 위해 아무래도 손님들이 비싼 보청기를 고른다"고 말했다.

청각장애인 필수품인 보청기가 이처럼 기본 100만 원(한쪽 기준)을 웃도는 고가에 팔리고 있지만 정작 판매업체는 20만~30만 원대에 공급받는 것으로 본보 취재 결과 확인됐다. 원가는 이보다 더 낮은 10만 원대에 불과하다. 판매업체가 원가, 공급가에서 크게 부풀린 금액으로 팔아 마진을 많이 남기는 셈이다. 비밀은 건보 지원금에 있다. 제품가의 대부분을 건보에서 지원하다 보니 가격을 높게 받는 배짱 영업이 가능하다. 국민이 낸 건강보험료가 새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건보에서 받은 '보청기 지원 현황'에 따르면 청각장애인 보청기 지원액은 2014년 42억 원에서 2016년 671억 원으로 16배 뛰었다. 이후 해마다 600억 원 안팎의 건보 재정이 투입된다. 2024년 628억 원, 2025년 566억 원 등이다.

장애인 보조기기 전체의 지원 규모와 비교하면 보청기 지원 규모가 얼마나 큰지 알기 쉽다. 건보는 장애인 보조기기 90종(지난해 기준)의 구입비를 지원한다. 지난해 총 지원액은 931억 원이었다. 이 중 60.8%가 보청기였다. 지원 인원도 보청기가 가장 많았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지원액이 급증한 건 2015년 11월 1인당 지원 상한선인 기준액이 뛰면서다. 1997년 도입된 보청기 지원은 청각장애인에게 가격의 90%(차상위계층·기초생활수급자 100%)를 5년마다 지원하는 사업이다. 기준액은 도입 첫해 24만 원이었는데 2005년 34만 원으로 오른 뒤 2015년 131만 원으로 크게 늘었다.

청각장애인의 비용 부담을 덜기 위한 조치였다. 문제는 보청기값도 따라 올랐다는 점이다. 감사원은 2019년 감사에서 45만 원이던 보청기가 기준액 인상 후 131만 원으로 3배 가까이 뛰었다고 밝혔다. 301개 제품의 평균 판매가격은 55% 높아졌다. 지원을 늘릴수록 값이 오르는 '보조금의 역설'이다.


지원 줄었는데, 더 커진 보청기 시장

이에 보건복지부, 건보는 2020년 7월 청각장애인용 보청기 가격을 통제하는 내용의 제도 개선책을 내놨다. 지원 대상 제품과 가격을 정부가 정해 공개하는 가격 고시제를 도입한 것이다. 또 기준액 131만 원도 명목을 둘로 나눴다. 111만 원은 살 때 준다. 기기값 91만 원과 첫 1년 관리비 20만 원을 합친 금액이다. 나머지 20만 원은 2~5년 차 관리비다. 실제 관리를 받으면 해마다 5만 원씩 지급한다.

그 결과 보청기를 구매할 때 받는 지원금 한도는 줄었다. 차상위계층은 111만 원, 일반 청각장애인은 99만9,000원(111만 원의 90%)이다. 고시가격이 111만 원 이상이라면 무엇을 사든 지원금은 같다. 개편 전에는 어떤 보청기를 구입해도 취약계층은 131만 원, 일반 청각장애인은 117만9,000원(131만 원의 90%)을 받았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하지만 건보에 등록한 판매업체가 2014년 1,940개에서 2020년 3,110개, 2025년 3,520개로 매년 늘어나는 등 청각장애인용 보청기 시장은 위축되기는커녕 더욱 커졌다. 보청기 공급가와 원가를 보면 건보 지원금은 제도 개편 이후에도 여전히 이익을 내기에 충분한 금액임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재 가격이 고시된 보청기는 206개인데 오티콘, 스타키, 시그니아, 벨톤, 포낙 등 5개 글로벌 브랜드 제품이 198개나 된다. 고시가격은 51만~175만 원(400만 원 초과 3개 제품 제외)이다.

본보는 시그니아, 오티콘, 스타키 본사가 판매점에 넘기는 공급가를 입수했다. 20만~30만 원대로 낮았다. 예컨대 고시제품 중 고가인 한 제품의 고시가격은 132만 원으로 공급가 36만 원보다 3.7배 비쌌다.

원가를 기준 삼으면 가격 거품은 더 심해진다. 건보가 박지원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이 제품 수입원가는 14만3,395원에 그쳤다. 고시가격이 수입원가에서 아홉 배 뻥튀기한 금액인 셈이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회정책국장은 "제약사가 가격 상한선에 맞춰 복제약 가격을 높여 받아 이익을 내는 약제 시장과 비슷한 구조로 가격 체계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보통 값이 오르면 덜 팔리지만 보청기 시장은 달랐다. 지원금이 최대 111만 원이라 본인 부담이 적은 청각장애인은 값 때문에 구매를 망설이지 않는다. 판매점은 지원금을 한도까지 꽉 채워 받을 수 있는 고가 제품을 권한다. 비쌀수록 남는 게 많아서다. 건보 지원금이 판매업체 이윤을 떠받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기기값 거품, 현실화 땐 236억 아껴

판매 실적에서도 이런 흐름이 확인됐다. 지난해 가장 많이 팔린 고시제품 5개는 △130만 원 2개 △115만 원 2개 △109만 원 1개였다. 이 가운데 130만 원과 115만 원인 제품은 지원금이 한도까지 나온다. 같은 해 보청기를 산 전체 청각장애인의 23.4%(1만3,466명)가 이 5개 제품을 선택했다. 2024년에는 31.0%였다.

건보는 선택지가 많다고 반박한다. 지원금을 최대치까지 받지 못하는 고시가격 111만 원 이하인 제품이 전체의 68%라는 것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중저가 제품은 외면당하고 있다. 수도권의 한 보청기 판매업체 대표는 "건보에서 지원하는 보청기는 대체로 2, 3년 전 모델"이라며 "구식이라 가격이 저렴하면 기능도 떨어져 보통 100만 원대 초중반 모델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게티이미지뱅크

건보는 보청기 제품 특성을 감안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보청기는 기기값에 관리 비용을 더해 가격이 정해지는 터라 소비자 판매가가 수입원가, 공급가와 크게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보청기를 사면 뇌가 새로운 소리에 적응하는 구입 초기는 물론 이후에도 청력 변화 시 피팅(성능을 조절하는 것)을 지속적으로 받아야 한다.

건보 관계자는 "의료용 스쿠터 등 다른 장애인 보조기기는 제품 구입 후 바로 사용 가능하고 고장 등 문제가 생기지 않으면 특별한 관리 없이 사용할 수 있다"며 "반면 보청기는 관리를 받지 못하면 정상적으로 쓰기 어려워 사용 기간 5년 동안 관리를 위한 인건비와 기술료가 가격에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설명만으로는 의문이 남는다. 우선 청각장애인이 보청기 관리를 5년 동안 얼마나 받을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지원금을 먼저 주는 건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만약 청각장애인이 보청기 피팅을 많이 받지 않아도 사용할 수 있다면 판매업체는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고도 건보 지원금 속 관리비를 그대로 가져가게 된다. 이는 의료 이용 내역을 증빙해야 지원하는 통상적인 건보 재정 운용 방식과 정반대다. 그렇다고 건보는 실제 관리 여부를 사후에 확인하지도 않는다.

관리비를 빼도 기기값 지원은 넉넉하다. 131만 원 중 관리비는 40만 원으로 기기값 지원 한도는 91만 원인 셈이다. 고시제품 공급가가 20만~30만 원대인 점을 감안하면 그 차액은 판매업체 이익으로 돌아간다. 다만 보청기 판매업체 쪽에선 이윤이 많지 않다고 맞선다. 한국보청기판매자협회 관계자는 "청각장애인은 1년에 네 차례 이상 관리 서비스를 받기 때문에 오히려 지원금이 늘어야 한다"고 말했다.

건보 재정 낭비를 막기 위해선 지원 기준을 다시 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건보에서 보청기 지원 업무를 맡았던 전직 직원은 판매업체 마진을 보장해도 평균 고시가격은 50만 원이 적정하다고 했다. 이 주장대로라면 기기값 최대 지원금 91만 원을 적용할 경우 지원 1건당 41만 원, 지난해 5만7,474건 기준 236억 원의 재정을 아낄 수 있다. 박지원 의원은 "보청기 지원에는 세금이나 마찬가지인 건보료가 들어가는 만큼 투명하게 확보한 수입원가, 공급가, 관리비를 기준으로 기준액을 재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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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담 기자 wall@hankookilbo.com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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