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력 떨어져도, 연륜 무시 못해”…나이 들수록 지혜로워지는 이유

정은지 2026. 10. 25.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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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수록 기억력은 예전 같지 않지만 오랜 경험으로 새로운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로 나이 든 뇌가 세세한 정보를 기억하는 일보다 이미 쌓아둔 지식으로 의미를 파악하는 데 더 힘을 쏟을 수 있다는 가설이 나왔다.

연구진은 뇌의 이러한 변화가 세부 정보를 모으는 데서 관계와 의미를 파악하고 기존 지식을 활용하는 쪽으로 우선순위를 옮기는 과정일 수 있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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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애리조나대 연구진, ‘적응적 노화 가설’ 제시…세부 기억보다 축적한 지식 활용에 무게 둘 가능성
나이들수록 기억력은 예전 같지 않지만 오랜 경험 덕분에 상황을 이해하는 지혜가 생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나이 들수록 기억력은 예전 같지 않지만 오랜 경험으로 새로운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로 나이 든 뇌가 세세한 정보를 기억하는 일보다 이미 쌓아둔 지식으로 의미를 파악하는 데 더 힘을 쏟을 수 있다는 가설이 나왔다.

미국 애리조나대 인지 신경시스템 분야의 파비안 호세 페르난데스 부교수가 참여한 연구진은 이러한 내용을 담은 '적응적 노화 가설'을 《심리과학의 관점(Perspectives on Psychological Science)》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분자생물학과 뇌 영상 분야의 기존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정상적인 노화에서 나타나는 뇌의 변화가 생애 후반기의 필요에 맞춰 적응하는 과정일 가능성을 제시했다.

연구진이 주목한 것은 해마와 전두피질의 역할 변화다. 해마는 어떤 일이 언제, 어떤 상황에서 일어났는지 구체적으로 기억하는 데 관여한다. 전두피질은 경험에서 핵심을 추려내고, 반복되는 패턴을 알아보며, 더 넓은 의미를 이해하는 데 관여한다.

연구진에 따르면 건강하게 나이가 드는 과정에서는 해마에 의존하는 비중이 줄고 전두피질을 활용하는 비중이 커지는 경향이 나타난다.

어린 시절에는 세상을 이해할 지식이 부족해 새로운 정보를 자세히 받아들이고 저장하는 일이 중요하다. 반면 성인기 후반에는 수십 년간 쌓은 기억과 지식, 경험이 있다. 새로운 일을 하나하나 정확하게 기억하기보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과 연결해 이해하는 일이 더 유용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연구진은 뇌의 이러한 변화가 세부 정보를 모으는 데서 관계와 의미를 파악하고 기존 지식을 활용하는 쪽으로 우선순위를 옮기는 과정일 수 있다고 봤다.

사람뿐 아니라 동물 모델에서도 유사한 변화가 관찰된다는 점은 진화적 배경이 있을 가능성을 뒷받침한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오래 살아남은 개체가 축적한 정보를 보존하고 전달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뇌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이러한 변화가 가르치기, 조언하기, 이야기를 통해 경험을 전하기 등 다음 세대와 지식을 나누는 역할로 이어질 수 있다. 페르난데스 부교수는 "나이 든 뇌는 젊은 뇌와 다른 일에 최적화돼 있다"며 축적한 전문지식을 공유하고 사회적 관계를 맺는 능력에 주목했다.

연구진은 정상적인 인지 노화와 알츠하이머병도 구분했다. 정상적인 노화에서는 해마의 활동에 두는 비중이 점차 줄어드는 반면, 알츠하이머병에서는 해마가 과도하게 활성화되는 양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밀로이드와 타우 같은 단백질이 관여하는 병리적 과정은 이러한 전환을 방해하고, 개인적인 경험을 기억하거나 저장된 단어와 의미를 떠올리는 신경회로를 교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페르난데스 부교수는 알츠하이머병을 정상적인 인지 노화가 더 심해진 상태로 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연구진은 노년층의 능력을 젊은 사람처럼 세부 사항을 정확히 기억하는지를 중심으로 평가하기보다, 오랜 경험과 지식을 활용하는 능력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연구진은 노년층의 사회적 교류와 세대 간 만남의 기회를 늘리는 방안을 제안했다. 경험과 전문지식을 나누는 관계가 나이 든 뇌의 강점을 발휘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페르난데스 부교수는 "수십 년 동안 활발하게 활동하며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한 뇌에는 엄청난 가치가 있다"며 "우리는 그 가치를 충분히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은지 기자 (jeje@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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