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광주 정원 재발견]⑩ 보성 성림정원: 60년 숲이 건네는 어머니 품 같은 안식

박정석 기자 2026. 10. 25.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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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값진 유산은 푸른 산"…선친 뜻 이어받은 명품 숲
120만 송이 수국 피어나는 337㏊ ‘성스러운 안식처’
안개 낀 편백 숲 아래 수국…몽환적 풍광이 만든 ‘오픈런’
가든 스테이·8개 주제정원 조성…‘정원 치유’ 목표
편백나무 아래 피어난 형형색색의 수국이 성림정원의 여름을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다. /윤제림 제공
성림정원 내 수국원의 여름 풍경. /윤제림 제공
사람이 자연에 온기를 더해 완성되는 정원은 바쁜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가장 따뜻한 안식처를 내어준다. 남도일보는 전남광주 민간정원의 미학을 다루는 '정원 재발견' 시리즈의 열 번째 여정으로 보성군 겸백면 수남리 주월산 자락의 '성림정원(윤제림)'을 찾았다. 한국전쟁 이후 황폐해진 국토에 나무를 심기 시작한 선친 윤제(允濟) 정상환 선생의 뜻을 이어, 아들 정은조 윤제림 회장이 2대에 걸쳐 60년간 일궈낸 전라남도 제12호 민간정원 '성림정원(윤제림)'의 이야기를 풀어내려 한다. 337㏊(약 100만 평)에 달하는 울창한 편백·삼나무 숲과 5만 여 그루 수국의 조화, 그리고 아내를 향한 고마움이 담긴 숲정원의 세월과 안식을 현장에서 느껴봤다.
성림정원의 여름 풍경을 관찰하기 위해 모여든 방문객들의 모습. /윤제림 제공

◇2대에 걸쳐 일군 100만 평 명품 숲

보성군 겸백면 주월산 자락에 들어서면 하늘을 가릴 듯 우람하게 솟은 50년 이상 된 편백나무와 삼나무, 참나무들이 끝없이 펼쳐진다. 산림청 지정 대한민국 '100대 명품숲'이자 2020년 산림청 '산림명문가'로 지정된 윤제림이다. 이곳은 100만 평에 달하는 광활한 면적 위에서 휴양과 체험, 문화가 어우러지는 국내 대표 '산림형 6차산업 성공모델'로 꼽힌다.

이 푸른 기적의 시작은 한국전쟁 직후로 올라간다. 윤제림의 1세대 주역이자 정은조 회장의 선친인 고(故) 정상환 설립자는 1960년대 초 벌교와 순천에서 사업을 하던 중 산림 녹화의 깃발을 들고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오늘날 '윤제림'이라는 이름 역시 선친의 호에서 따온 것이다.

선친이 숲을 일구게 된 계기에 대해 정 회장은 "아버님께서 생전에 한 외국 기자의 글을 보셨는데 '일본은 산이 푸른데 한국은 살점이 비치는 빨간 산이었다'는 내용이었다"며 "'나라도 나무를 심어 파란 산으로 만들어야겠다. 이것이 후손들에게 남겨줄 가장 값진 유산'이라 말씀하시며 평생을 바치셨다"고 회상했다.

선친은 생전 265㏊에 달하는 임야에 밤나무와 편백, 삼나무를 심어 1978년 '조림왕'에 선정되기도 했다. 2005년 선친이 작고한 후, 맏이였던 정 회장은 형제들의 상속 지분을 모두 인수하고 사비를 털어 27㏊의 산을 추가 매입했다. 그는 "지속 가능한 산림을 위해 수익 모델이 필수적이었다"며 "노령화된 밤나무 밭을 정비하고 도로 관리와 계곡 재해 예방 사업부터 차근차근 기틀을 다졌다"고 말했다.
 
성림정원의 여름은 아침 안개와 파스텔 톤의 수국들이 어우러져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윤제림 제공

◇ 편백 아래 피어난 수국…전국 사로잡은 몽환적 풍광

단순한 임업 단지였던 윤제림이 대중적인 숲정원으로 거듭난 데는 정 회장의 끊임없는 연구와 과감한 모험이 있었다. 순천만국가정원을 다녀온 뒤 해외 명품 정원들을 벤치마킹하던 그는 일본 홋카이도의 '천년의 숲'에서 깊은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성림정원의 가장 독특한 조경 기법은 '편백·삼나무 숲과 수국의 조화'다. 당초 학계와 조경계에서는 피톤치드가 강하고 그늘이 짙은 편백나무 아래서는 식생이 자라기 어렵다는 것이 통설이었다. 하지만 정 회장은 친환경 자연주의 기법으로 이 통념을 깨부쉈다.

정 회장은 "그늘진 언덕과 자연 계곡 돌 사이에 수국을 심었다. 계곡 물소리와 새소리, 50년 넘은 편백 숲 그늘이 어우러졌을 때의 그림을 상상했다"며 "특히 아침 안개가 자욱하게 끼었을 때 나무 사이로 피어나는 수국의 몽환적인 풍광을 꼭 연출하고 싶었다"고 당시의 구상을 설명했다.
성림정원 내 수국원.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제공

이 과감한 시도는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별도의 광고 없이 SNS와 사진 작가들의 입소문만으로 첫해 20만 명의 관람객이 몰려들었다. 특히 안개 속 신비로운 숲 풍광을 담기 위해 서울과 경기, 강원도 등지에서 새벽 2시에 출발해 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새벽 오픈런' 풍경이 펼쳐졌고, 일부 SNS 게시물은 30만 뷰를 기록하며 전국적인 핫플레이스가 됐다.

현재 성림정원에는 80여 종, 6만 여 그루에 달하는 수국이 자라고 있다. 수국 꽃송이로 따지면 자그마치 120만 송이에 달하는 압도적 규모다. 정 회장은 이에 안주하지 않고 매년 네덜란드 등에서 '블랙 다이아몬드' 같은 희귀 신품종 수국을 새로 들여와 정원의 품격을 지속적으로 높이고 있다.
 
가을을 대표하는 분홍빛 핑크뮬리가 성림정원의 10월을 더욱 풍성하게 채워주고 있다. /윤제림 제공

◇아내 향한 고마움 스민 다채로운 주제정원

윤제림 내 4만㎡(약 1만 2천 평) 규모로 조성된 성림정원은 2020년 9월 전라남도 제12호 민간정원으로 공식 등록됐다. 1960년대 선친의 호를 딴 '윤제림'으로 시작된 숲의 역사 위에 정 회장의 아내인 최성림 원장의 이름을 붙인 '성림정원'이 더해지며 2대에 걸친 아름다운 스토리텔링이 완성된 셈이다.

정 회장은 정원 이름에 얽힌 비화에 대해 "산림 사업이라는 게 워낙 고되고 경제적으로 힘들어 아내의 노고가 말도 못 하게 컸다. 처음 정원을 넓힐 때 아내의 반대가 심해 허락도 안 받고 간판부터 '성림정원'으로 달아버렸다"며 "다행히 성스러울 성(聖)에 수풀 림(林) 자라 정원 이름으로 딱 들어맞았다. 본인 이름이 붙은 정원이 전국적인 사랑을 받으니 속으로는 은근히 뿌듯해하는 것 같다"고 웃어보였다.
 
성림정원 내 팜파스원. /윤제림 제공

현재 성림정원은 수국원을 비롯해 안개나무원, 억새원, 구절초원, 팜파스원, 핑크뮬리원, 황금느릅원, 치유원, 희망의정원과 넓은 잔디마당 등 다채로운 숲정원의 매력을 자랑한다. 여름철 몽글몽글한 수국 물결이 지나가면 가을에는 분홍빛 핑크뮬리와 거대한 팜파스, 구절초가 이어져 사계절 내내 끊임없이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역동성을 보여준다.

정 회장은 아내의 이름을 딴 정원 숙박시설인 '성림관(가든 스테이)'을 신축해, 정원 안에서 온전히 머무르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한 차원 높은 체류형 산림 복합 공간을 계속해서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
 
수국이 만개한 성림정원의 6월.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제공

◇ 숲과 사람 어우러지는 마음의 안식처

윤제림과 성림정원은 단순히 눈으로 보는 정원에 그치지 않는다. 편백 피톤치드 숲, 명상 숲, 맨발 산책로는 물론 숲 치유센터에서의 족욕과 반신욕 체험이 가능하다. 나아가 펜션과 아치하우스, 방갈로, 오토캠핑장, 카라반사이트 등 다채로운 숙박 시설과 임산물 체험장, 주월산 전망대, 패러글라이딩장, 어린이 숲속 놀이터까지 산에서 즐길 수 있는 다채로운 콘텐츠가 집약돼 있다.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산림특별위원장으로도 활동 중인 정 회장은 이제 정원의 미학을 넘어 '정원 치유'의 제도적 정착이라는 더 큰 미래를 꿈꾸고 있다.

정 회장은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정원의 가치를 역설하며 "산림과 해양, 정원을 아우르는 통합 치유 시스템을 구축해 병마와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이 실질적인 건강과 심신의 회복을 얻어가는 공공의 안식처를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강조했다.
 
주월산 패러글라이딩장에서 내려다본 산 아래 전경. /윤제림 제공
가을을 재촉하는 핑크뮬리의 분홍빛이 성림정원의 탐방로를 가득 메우고 있다. /윤제림 제공

끝으로 정 회장은 정원이 지닌 본질적인 의미에 대해 짚었다. 그는 "저에게 정원이란 '어머니의 품'이다. 누구나 이곳에 오면 어머니 품속에 안긴 것처럼 마음이 푸근해지고 깊은 안식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며 "유료 정원에 입장하지 않더라도 편백 숲길을 걷고 계곡 물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모든 시름을 잊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가실 수 있는 따뜻한 공간으로 윤제림을 지켜나가겠다"고 전했다.

선친의 집념에서 출발해 아내를 향한 사랑, 그리고 지친 현대인들을 품어내는 공공의 안식처로 진화해 온 보성 성림정원. 60년 세월이 빚어낸 푸른 숲과 120만 송이 꽃물결은 오늘도 남도를 찾는 이들에게 거대한 어머니의 품을 따스하게 내어주고 있다.
/박정석 기자 pjs@namdonews.com <공동기획=남도일보·한국언론진흥재단>
 
선친의 뜻을 이어 60여 년에 걸쳐 윤제림을 가꿔오고 있는 정은조 영농법인 윤제림 회장(오른쪽)과 그의 아내 최성림 성림정원 원장. /윤제림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