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에서 행위로, 다시 수행으로…하정웅컬렉션 재발견
곽인식·이우환·박서보 등 재일·한국 작가 11인 작품 60점 한자리
모노하·실험미술·단색화로 살펴보는 60-70년대 현대미술 흐름



캔버스 위에서 아래로 길게 내려오는 올곧은 붓질의 흔적이 발걸음을 사로잡는다.
작품은 이우환의 ‘From Line’(1980)이다. 선의 시작과 끝을 눈으로 다시 따라갔다. 진했던 시작의 색은 아래로 내려갈수록 옅어지면서 여백으로 퍼져나간다. 시선을 따라 선을 다시 읽다 보니 남겨지는 여운이 진하다.
단순해 보이는 선들에는 붓을 움직이는 행위와 그 과정에서 흐르는 시간이 담겨 있다.
정상화의 ‘무제 85-12-2’(1985)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완성됐다. 붓으로 형태를 그리는 대신 캔버스를 접어 생긴 조각을 떼어내고, 빈자리를 물감으로 다시 메우는 과정을 반복한 작품이다. 화면에 남은 것은 특정한 형상이 아니라 물감을 입히고 덜어내는 과정에서 드러난 재료 자체의 모습이다.
서로 다른 방식이지만 두 작품 모두 작가의 반복적인 행위, 즉 동양적 수신(修身)의 철학이 중요한 요소라는 점에서 맞닿아있다.
지난 21일 2026 하정웅컬렉션전 Ⅱ ‘사물의 재발견: 재일 작가와 한국 현대미술’ 기자 프레스투어를 진행한 하정웅미술관 제1·2·3전시실. 전시에서는 1960-70년대 재일 작가와 한국 작가들이 사물과 물질을 바라본 방식, 그리고 작품의 수행 속 형성된 ‘현대미술의 흐름’을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었다.
전시는 하정웅컬렉션에 포함된 곽인식, 세키네 노부오, 이우환, 곽덕준, 김구림, 문승근, 손아유, 박서보, 정상화, 하종현, 최명영 등 작가 11인의 회화·드로잉·판화·사진 60점을 선보인다.
전시를 기획한 최수연 학예연구사는 작가 개인의 생애에 따른 연구가 아닌 1960-70년대 미술을 이끈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일본 모노하와 한국의 실험미술, 개념미술, 단색화의 관계를 조명하는 데 전시의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총 3부로 구성된 전시는 제1부에서 ‘사물과 관계, 모노하의 태동’에서는 곽인식, 세키네 노부오, 이우환, 곽덕준의 작품을, 제2부 ‘개념과 행위, 매체의 확장’에서 김구림, 문승근, 손아유의 작품을 통해 사물을 다루는 행위와 과정을 만나 볼 수 있다. 제3부 ‘반복과 축적, 단색화의 수행’에서는 박서보, 정상화, 하종현, 최명영 등 단색화 작가 4인의 작품을 소개한다.
최수연 학예연구사는 단색화 작가들이 화면 위에 물질을 쌓거나 덜어내고, 닦거나 밀어내는 반복적인 작업을 통해 자신만의 표현 방식을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반복 행위에는 동양적 수신과 수행의 철학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윤익 관장은 “이 전시는 디아스포라와 ‘기도의 미술’로 조명돼 온 하정웅컬렉션을 현대미술사 안에서 새롭게 읽어 보려는 시도”라며 “재일 작가와 한국 작가들이 서로 교차하며 만들어 낸 한국 현대미술의 전환점을 전시장에서 만나 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2026 하정웅컬렉션전 Ⅱ ‘사물의 재발견: 재일 작가와 한국 현대미술’전은 오는 11월29일까지 하정웅미술관 제1·2·3전시실에서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하정웅 명예관장이 1993년부터 2018년까지 여덟 차례에 걸쳐 기증한 작품 2천603점을 토대로 마련됐다./오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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