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되새김질]대사도 집어삼킨 제주도 바람 소리…홍상수·김민희 ‘눈 둘 데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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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때 말 못한 볼만한 영화를 되새겨 봅니다. 세번째 작품은 홍상수 감독의 35번째 영화 '눈 둘 데가 없네'입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눈 둘 데가 없네'는 제주도의 거센 바람 소리가 너무나 잘 들린다.
다만 이전 영화들과 달리 홍 감독 자신보다 김민희란 인간에 보다 집중돼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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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때 말 못한 볼만한 영화를 되새겨 봅니다. 세번째 작품은 홍상수 감독의 35번째 영화 ‘눈 둘 데가 없네’입니다. 저화질은 기본, 영화에 외부 소음이 이렇게나 크게 들린다며 놀랄 관객들을 위해 썼습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눈 둘 데가 없네’는 제주도의 거센 바람 소리가 너무나 잘 들린다. 주연 배우 김민희의 내레이션이 잘 들리지 않을 정도다.
이번 영화는 홍 감독이 홀로 영화 전체의 동시녹음을 책임진 첫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저예산 영화의 열악함이라거나 홍 감독 특유의 실험정신 정도로 치부하기 쉽지만, 그건 오해에 가깝다.
자연의 정제되지 않은 소음을 그대로 들려주는 것, 그러한 세계 속에 던져져 ‘눈 둘 데’를 애써 찾는 상희(김민희)의 태도가 중요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역시 제주도를 배경으로 찍은 ‘물 안에서’가 풍경을 의도적으로 아웃포커싱해 시각적 이미지에 변화를 꾀했다면, 이번 영화는 청각적 이미지를 적극 활용했다.

영화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상희는 남동생 상원(신석호)과 10년 만에 엄마(최명길)의 제주도 집을 방문한다. 상희는 부모가 어릴 적 이혼하면서 조부모와 함께 살았고, 엄마와 왕래가 뜸했다.
오랜만에 만난 엄마와의 조우는 반갑지만 불편하다. 남동생은 자신과 달리 전에도 몇 번씩 엄마와 만났던 것 같다. 상희와 엄마는 서로의 현재를 잘 몰랐고,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워 보인다. 상희에게 엄마는 음식점과 펜션을 운영하는 “사업수완이 뛰어난” 사람이다. 엄마에게 상희는 “어릴적 예술적 재능이 뛰어난 미술하던 아이” 정도에 그친다.
그리고 엄마의 남편, 그러니까 상희의 새아버지(권해효)가 있다. 그는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단편 영화를 찍는 상희와 접점이 있지만, 상희는 그를 가족으로 여기길 주저한다. ‘그 사람’이나 ‘이 분’ 정도로 부를 뿐이다. 그리고 새아버지의 딸인 주원(박미소)는 처음 본 사이지만, 상희의 작업을 동경하며 예상보다 친근해진다.
상희는 화목해 보이는 이들 사이에 끼어들기 주저한다. 대화 사이의 어색한 침묵이나 미묘한 표정, 속마음을 좀처럼 말하지 않는 상희의 내레이션으로 불편함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기본적으로 상희는 사람의 말은 ‘비껴나야 하는 것’이라며 경계하는 인물이다.

이해할 수 있는 지표가 많지 않은 영화에서 크게 의지할만한 요소는 제주도의 날씨다. 우선 큼지막한 명조체의 챕터별 제목 모두 날씨와 관련돼 있다. 제주도의 바람 소리는 물론, 이착륙하는 비행기의 굉음, 그밖에 다양한 외부 소리가 거칠게 들린다.
고막을 때리는 자연의 소리를 통해 상희가 변덕스러운 세계 한복판에 내던져져 있음이 실감난다. 엄마에게조차 마음 붙이지 못했던 상희는 나름대로 제 갈 길을 가면서 ‘눈 둘 데’를 찾는 고독한 인물이다.
날씨는 상희와 가족간 거리, 그리고 상희의 내면적 심리와도 조응한다. 그리고 영화 중반 “많은 다큐멘터리는 특정한 방향성을 가진 사기”라며 열변을 토하는 상희가 가진 ‘정직성’의 윤리와도 통한다. 홍 감독은 외부 소음을 차단하지 않고 살리면서, 상희가 던져져 있는 영화 속 세계를 되도록 통제하지 않는 방법을 택했다. 자연(세계)과 상희(인간)의 관계를 가장 정직하게 기록하기 위한 홍상수식 미니멀리즘이다.

영화 말미 다른 가족들은 상희가 찍은 단편을 본다. 영화 속 영화 역시 ‘지지직’ 거리는 거친 바람 소리가 여과없이 들린다. 이어지는 상희의 내레이션을 통해 관객은 평생 마음 둘 곳 없던 상희가 자기만의 ‘눈 둘 데’를 찾았고, 꿋꿋이 나아가겠다는 그의 의지를 느낀다.
“어려서부터 나는 눈 둘 데가 없었다. / 얼마 전 바람이 많았던 날, 햇빛을 받으며 흔들리는 꽃을 보고 있었습니다. / 그런데 한참을 보고 있으니 그 꽃이 제게 말을 거는 것을 느꼈습니다. / 난 순하다. / 난 조용하다. / 난 언제나 뭔가를 좋아하고 있어.”
홍 감독의 전작들처럼 자신과 주변 인물들이 투영된 듯 하다. 다만 이전 영화들과 달리 홍 감독 자신보다 김민희란 인간에 보다 집중돼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남녀 관계나 부녀 관계보다 모녀 관계에 초점을 맞춘 것부터 그렇다.
이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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