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주 더봄] 사다리 끝에 달린 달

양선주 시인·한국미니픽션작가회 회원 2026. 10. 25.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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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주의 미니픽션]
어머니와 아들의 마지막 포옹을 이어준 것

전갈이 왔다. 어머니가 위독했다. 죽음에 붙잡힌 어머니, 나는 어머니가 있는 병실에 가야 한다. 한때 나는 아편 환자로 낙인찍혀 공공장소에 출입이 불가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편을 하지 않는다. 깊은 우울과 불안에 시달렸을 때 아편에 매달린 적이 있다. 허나 지금은 깨끗이 씻었다.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한 채 청결하다. 누구에게나 나의 건실함을 보여줄 수 있다. 하지만 한때의 씻지 못할 오명으로 병원 출입이 불가능해 혹 어머니의 임종을 지킬 수 없을까 두렵다. 어떤 방법으로든 어머니의 마지막을 함께해야 한다.

이곳의 밤은 깊고 춥다. 두터운 옷을 여러 겹 입고 외투를 걸쳤는데도 몹시 춥다. 원인 모를 불안과 초조가 나의 목을 조인다. 무엇보다 그 전갈을 받은 뒤로 손발까지 떨려온다. 확실한 원인은 알 수 없다. 추측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나의 과거 때문에 어머니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공포다. 게다가 엊그제 시내 한복판에서 친구 라파엘이 총살당했다. 레지스탕스 이후 총성은 빈번했지만 나의 벗 라파엘이 사유가 불분명한 채 독일군에게 죽임을 당했다. 참을 수 없는 비극들이 거리 가득 난무했다. 온통 스산한 분위기로 밤낮없는 공포가 도시를 휘감아버렸다. 

자정 무렵, 이런 분위기를 뚫고 어머니가 있는 병원 앞에 도착했다. 정문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들은 말이 떠올랐다. 후문 담벼락 밑에 개구멍이 있다는, 나는 그곳을 향해 숨죽여 걸었다. 다행히 경비는 개구멍 주변에 한 명도 없었다. 그곳에서는 어머니의 병실이 보이지 않았다. 다만 어머니의 병실로 들어가는 복도를 창문을 통해 올려다볼 수 있다. 마치 사건을 풀 수 있는 단서를 손에 쥔 형사처럼 숨죽인 채 병실 아래를 수없이 서성거렸다. 보이지 않는 시계 속 초침 소리가 내 심장을 꾹꾹 찌르는 듯 했다. 

전갈에 의하면, 어머니는 중환자실에서 나와 일반 병실, 그것도 제일 꼭대기 5층 구석에 위치한 병실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한 번 더 참혹했다. 그때 아편 중독으로 실신해 눈을 뜬 곳이 병실이었다. 어딘가에 꽉 닫힌 심정이었다. 아편 중독이 심해 끊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른 사람들은 마지막에는 방치 상태에 둔다. 독방에 넣어, 스스로의 죽음을 감당하도록, 자멸의 시간을 주는 것이다.

이것은 일방적인 격리 수준을 넘어, 죽음을 방임하는 것이다. 대책 없이 시간을 기다리게 하는 것이다. 마치 내 어머니가 지금 그런 상태에 놓인 것 같았다. 견딜 수 없었다. 내가 겪었던 참혹한 순간을 어머니가 그대로 겪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어머니를 봐야 했다. 어머니에게 평화를 주고 싶었다.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임 /챗GPT

방법은 단 하나, 사다리. 준비한 사다리를 5층 꼭대기 창문 난간을 향해 세웠다. 긴 사다리는 어머니가 있는 병실 창 난간 끝에 닿았다. 다행히 창문은 열려 있었고, 비교적 움직임이 없는 조용한 꼭대기 층이라 그림자조차 어른대지 않았다. 

새벽이 오기 직전, 가장 인적이 드문 시간, 아직 새벽별조차 떠오르지 않아 주위는 어둡고 적막했다. 신경 안정제를 먹은 뒤라 잠깐 어지러웠지만 두 눈을 번쩍 떴다. 

드디어 긴 사다리를 타고 한 발씩 밤하늘을 향해 올랐다. 까마득했던 별이 내 눈동자 속으로 하나씩 삼켜지기 시작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만약 거센 바람이 불거나 누군가 저 밑에서 사다리를 흔들면 나는 곧장 추락할 것이다. 나는 혹 누군가의 발소리일까 미세한 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깜깜한 밤을 향해 두 눈을 활짝 열었다. 그리고 천천히 한 칸씩 사다리를 타고 올랐다. 

—레오, 세상에서 누가 제일 좋아?

—엄마.

내 사랑하는 엄마는 저 달과 함께 있다. 나는 이 긴 사다리를 타고 달에게 올라간다. 달이 있는 곳에, 어머니가 있는 곳에, 곧 따뜻한 천국으로 가실 엄마에게 작은 레오처럼 노래를 불러줘야지. 그날의 기쁜 에델바이스를, 엄마와 정원에서 함께 불렀던 그 노래를, 밤하늘 속 메아리가 퍼지도록. 한밤의 깊은 노래를 불러야지. 기다려요. 나의 사랑하는 맘.

병실 꼭대기, 창밖으로 작은 별빛이 들락거렸다. 모두 깊이 잠든 밤, 숨소리조차 까맣다. 4층을 통과해 5층 창문 가까이 올라갔다. 이때 갑자기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검은 물체가 창문을 향해 쓰윽 다가왔다. 나는 마지막 힘을 다해 사다리를 밟고 5층 꼭대기에 우뚝 올라섰다. 그 순간 검은 정체와 두 눈이 딱 마주쳤다. 그것은 바로 어머니, 나의 사랑하는 맘이었다. 어머니는 모두 잠든 밤 혼자 휠체어를 끌고 복도 창가로 다가온 것이다. 아주 긴 시간을, 느린 휠체어 바퀴를 손수 밀며, 창가 내가 오르는 사다리로 살며시 다가선 것이다.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임 /챗GPT

—맘!

나는 작지만 아주 큰 기쁨의 목소리로 사다리 맨 끝에 달린 엄마를 불렀다. 나의 하나밖에 없는 어머니를. 단 하나뿐인 나의 달을. 

—오! 내 아들 레오!

달 아래 창문을 통해, 엄마와 나는 휠체어와 사다리를 온몸에 끼고 길고도 행복한 포옹을 했다. 아무도 없었고 우리를 지키는 단 하나의 목숨, 저 달만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노란 목숨이 우리를 환하게 밝혔다. 지금 나를 휘감고 있는 이 온기에 언젠가 엄마가 불러준 노래처럼 온몸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나의 달을 힘껏 끌어안았다.

여성경제신문 양선주 시인·한국미니픽션작가회 회원
zoo-mouse@hanmail.net

☞미니픽션=아주 짧은 분량 속에 완결된 서사를 담아낸 초소형 소설을 말한다. '한 뼘 소설', '손바닥 소설(掌篇小說)', '플래시 픽션(Flash Fiction)' 등으로도 불리며 주로 설명은 생략하고 상징이나 묘사를 통해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끝맺는다. 짧은 틀 안에 소설적 재미와 철학을 압축해 놓은 '문학의 에스프레소'라고 할 수 있다. 

양선주 시인·작가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응용언어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으며 대산창작기금을 수혜하며 문단에 데뷔해 시집 <사팔뜨기>를 출간했다. 건강 문제로 인한 긴 공백기 끝에 2025년 시집 <열렬한 심혈관>, 산문집 <시는 내 곁으로 와 눕고>(공저)를 펴내며 다시 활발한 작품 활동을 재개했다. <소설미학>에서 동화, <월간문학>에서 동시 부문 신인상을 수상하며 장르를 넘나드는 문학적 역량을 펼치고 있으며, 동화책과 동시집 발간을 앞두고 있다.

*여성경제신문 기사는 기자 또는 외부 필자가 작성 후 AI를 이용해 교정·교열하고 문장을 다듬었음을 밝힙니다. 기사에 포함된 이미지 중 AI로 생성한 이미지는 사진 캡션에 밝혀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