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니] 와인 풍미를 빚는 24개월⋯ 실버오크의 오크통 고집
“가격 낮추기보다 품질 앞세워 프리미엄 전략 고수”

와인 한 잔을 만드는 데 포도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와인이 오랜 시간 머무는 오크통이다. 어떤 나무를 고르고, 얼마나 말리고, 어느 정도로 굽느냐에 따라 와인에 배어드는 향과 질감이 달라진다. 1972년 캘리포니아에서 시작해 한국 시장에서만 21년을 버틴 실버오크는, 그 마음가짐을 오크통에 눌러 담고 있었다.
하이트진로는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WSA 와인아카데미에서 ‘더 오크 아카데미’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미국 프리미엄 와이너리 실버오크의 2세대 경영진인 팀 던컨 최고매출책임자(CRO)와 아시아 담당자 아미야 첸이 직접 한국을 찾았다. 하이트진로가 국내에 수입하는 실버오크는 2005년 한국 시장에 진출해 올해로 21년째를 맞았다.
실버오크는 와인 한 병이 완성되기까지의 여정을 나무에서부터 풀어냈다. 이후 오크통 제작 과정을 살펴보고 서로 다른 빈티지와 숙성 방식을 적용한 와인 4종을 맛보는 자리였다.
1972년 레이 던컨과 와인메이커 저스틴 마이어가 설립한 실버오크는 미국 캘리포니아를 기반으로 나파 밸리와 알렉산더 밸리에서 카베르네 소비뇽을 생산한다.
이 와이너리가 남다른 건 와인뿐 아니라 와인을 재우는 통까지 직접 만든다는 점이다. 북미에서 오크 제작소를 직접 소유한 가족 경영 와이너리는 실버오크가 유일하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던컨 일가는 2000년 미주리주 오크 제작소 지분 50%를 확보했고, 2015년 나머지 지분까지 인수해 완전히 손에 넣었다. 통 하나가 와인의 성격을 좌우한다면, 그 통을 남의 손에 맡기지 않겠다는 계산이다.

출발점은 나무다. 오크통 제작은 나무를 고르는 일부터 까다롭다. 실버오크는 미국 여러 산림 가운데 미주리산 오크를 고집한다. 첸 담당자는 “미주리에서 나는 오크가 우리가 원하는 아로마와 텍스처를 가장 잘 내준다”고 설명했다.
소나무처럼 향이 강한 수종도 있지만 목재가 너무 무르다는 게 이유다. 오크는 단단하고 오래 쓸 수 있는 데다 새는 일이 적어 배럴 재료로 적합하다는 얘기다.
나무를 직접 베지는 않는다. 오크통 재료인 판자 형태의 목재 ‘스테이브(Stave)’를 공급받는다. 이 단계에서 100% 사람 손으로 등급을 매겨 최상급만 고른다. 대규모 상업용 배럴 제작소에서 기계를 이용해 등급을 분류하는 것과 차이가 있는 대목이다.

선별된 목재는 야외에서 비와 바람, 햇빛에 노출하며 건조하고 숙성하는 ‘시즈닝’ 과정을 거친다. 나무에 남은 수분과 성분이 시간에 따라 변화하면서 이후 와인에 전달되는 향과 질감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 과정에서 실버오크가 특히 공들인것은 시간이다. 자체 제작소를 인수한 뒤 시즈닝 기간을 달리하며 실험한 결과, 16개월부터 36개월까지 다양한 조건 가운데 24개월이 회사가 추구하는 풍미를 구현하는 데 가장 적합했다고 한다.첸 담당자는 토스팅에 대해 “오크통의 향을 끌어내 와인의 풍미에 영향을 주는 과정”이라며 “와인의 최종 결과물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마지막 단계는 누수 테스트다. 완성된 오크통에 물을 넣고 압력을 가해 새는 곳이 없는지 확인한다. 나무를 고르고 말리고 굽는 긴 과정을 거쳤더라도, 와인을 담을 통에 문제가 있다면 모든 작업이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다. 꼼꼼한 검수를 마친 오크통은 캘리포니아에 있는 실버오크 와이너리로 보내진다.
미주리주 오크 제작소에서는 하루 약 25개, 연간 5000개가량의 오크통을 생산한다. 오크통 제작 과정을 따라가다 보니 와인의 품질을 좌우하는 것은 포도와 양조 기술만이 아니라는 점이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와인이 머무는 공간을 만드는 일에도 적잖은 시간과 공을 들이고 있었다.

이어진 시음에서는 실버오크의 개성을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이날 준비된 와인은 알렉산더 밸리 카베르네 소비뇽 2012년과 2022년, 나파 밸리 카베르네 소비뇽 2019년, 타임리스 나파 밸리 2019년 등 총 4종이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와인은 타임리스 나파 밸리 2019년이었다. 잔을 가까이 가져가자 한 가지 향이 두드러지기보다 여러 아로마가 어우러져 복합적이면서도 우아한 인상을 줬다. 입안에서는 신선한 산도와 고급스러운 탄닌이 균형을 이뤘다. 향과 질감, 균형감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으면서도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와인이었다.
나파 밸리 카베르네 소비뇽 2019년 역시 부드러운 질감과 은은한 오크향이 조화를 이뤘다. 단단한 구조감과 균형 잡힌 풍미가 돋보였고, 마신 뒤에도 여운이 길게 이어졌다.
물론 이 같은 프리미엄 와인을 즐기기 위해서는 가격이라는 문턱도 넘어야 한다. 실버오크 와인은 제품에 따라 병당 수십만원대에 판매되며, 일부 제품은 시중 가격이 100만원에 달할 정도로 고가다. 프리미엄 시장을 겨냥한 만큼 가격 부담이 작지 않지만, 실버오크는 한국 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가격을 낮추는 전략을 택할 생각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던컨 CRO는 실버오크가 미국에서도 프리미엄 와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정말 좋은 와인을 만들고 싶기 때문에 저렴한 와인을 만들 수는 없다”며 “소비자들이 처음에는 저렴한 와인을 찾더라도 와인을 경험하고 시장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수록 더 좋은 와인을 찾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어 “실버오크 와인이 다른 와인보다 조금 더 비쌀 수 있지만, 소비자들이 성장하면서 더 좋은 품질의 와인을 찾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신단아 기자 shindana@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