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박사’, 연민이 주체적 사랑으로 빛나는 순간 [함상범의 옥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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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사랑함에 있어 가장 강력한 감정 중 하나는 연민이다. 타인의 연약한 면모를 발견한 뒤 싹튼 미안함과 죄책감, 혹은 동정심이 이내 사랑으로 번지면 그 마음은 쉽게 억누를 수 없다.
타인을 존중하는 게 익숙치 않은 공대생들의 지나치다 못해 무례한 솔직함, 지위를 무기 삼아 부당한 행위를 덮으려는 교수의 만행, 학문 정진으로 포장해 부를 추구하는 지식인들의 민낯 등 캠퍼스 내의 리얼리즘은 '연애박사'가 수준 높은 드라마라는 걸 증명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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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누군가를 사랑함에 있어 가장 강력한 감정 중 하나는 연민이다. 타인의 연약한 면모를 발견한 뒤 싹튼 미안함과 죄책감, 혹은 동정심이 이내 사랑으로 번지면 그 마음은 쉽게 억누를 수 없다. ENA ‘연애박사’ 속 임유진(김소현 분)의 마음에도 박민재(추영우 분)를 향한 짙은 연민이 들어찼다.
배경은 국내 최고 대학으로 불리는 서안대학교 기계공학과 안재홍(이창훈 분) 교수실 박사과정 랩이다. 휴머노이드를 제작하는 랩의 구성원들은 휴머노이드만 생각하다 못해 직접 그 존재가 된 듯하다. 상대의 마음을 읽는 눈치는 온데간데없다. 상처가 될 만한 말들을 무심하게 툭툭 내뱉는다. 불필요한 팩트 폭행을 남발하니 여자친구가 있을 리 만무하다. 제목엔 ‘연애박사’라 쓰였지만, ‘모태솔로’로 읽는 게 합당하다.

사람 냄새라곤 나지 않는 그곳에 정의감과 책임감, 인류애로 뭉친 임유진이 합류했다. 사실상 휴머노이드에 가까운 이들 사이에서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박민재가 숨긴 아픔을 알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연민을 이겨내는 건 임유진의 주체성이다. 스스로 인생을 꼬아놓는 가시밭길 앞에서도, 자신을 굳건히 믿는 임유진은 감정에 더없이 솔직하다. 결핍을 가진 두 남녀가 서로의 상처를 알아보고 연대하는 신선한 관점이 바로 ‘연애박사’다.
로맨스를 지렛대 삼아 사회의 부조리를 끄집어내는 데 탁월한 故 안판석 PD의 미학은 유작에서도 어김없이 빛을 발한다. 흔한 청춘 멜로 같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씁쓸한 시대상이 적극 담겨 있다. 타인을 존중하는 게 익숙치 않은 공대생들의 지나치다 못해 무례한 솔직함, 지위를 무기 삼아 부당한 행위를 덮으려는 교수의 만행, 학문 정진으로 포장해 부를 추구하는 지식인들의 민낯 등 캠퍼스 내의 리얼리즘은 ‘연애박사’가 수준 높은 드라마라는 걸 증명하는 대목이다.

앙상블은 놀라울 수준이다. 갈등의 중심에 있는 박민재 역의 추영우는 인물이 가진 자격지심을 다채롭게 표현한다. 겉으로는 유한 척하지만 꼿꼿하게 자존심을 지키려는 모습이 애처롭기도 하다. 선한 마음으로 그에게 다가가는 임유진 역의 김소현은 생활감이 강한 연기로 완성에 다다라 있다. 마치 연구에 매진하는 20대 대학원생 그 자체로 깊이가 상당해, 거슬리는 순간이 한 컷도 없다.
미국 유학을 앞둔 박민재와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임유진의 얼굴은 청춘 그 자체를 대변한다. 유학을 떠나도 “기다리겠다”고 선언하는 임유진의 돌진은 거칠면서도 강렬하다. 아직 미래가 불투명한 대학원생들의 풋풋하고도 힘 있는 로맨스가 은은한 설렘을 자극한다. 여기에 폐쇄적인 랩실 네트워크 특성상 연애 사실조차 쉽게 공개할 수 없는 아슬아슬한 상황이 긴장감마저 한껏 끌어올린다.
존재하는 것만으로 공대 대학원 랩실의 공기를 만들어내는 이규성, 이석형, 김민, 임진효의 앙상블은 감탄이 나올 정도다. 어딘가 뚝딱거리다 못해 사회성이 결여된 발언을 꺼내놓고 뚱한 표정을 짓는 모습은 연애 프로그램 모태솔로 특집을 연상케 한다. 이들이 극의 묵직한 리얼리즘과 유머를 동시에 책임지고 있다.



국내 최고의 엘리트 사이에서 벌어지는 로맨스엔 ‘장애’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놓여 있다. 어떤 사랑이든 사회적 굴레와 문제 위에서 파생한다는 걸 보여준 안판석 PD의 장기가 마지막까지 저력을 발휘한다.
과연 임유진과 박민재는 불편한 사회적 시선을 이기고 사랑을 완성할 수 있을까. 언제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어려운 사랑이라 섣불리 재단하기 어렵지만, 두 인물이 뿜어내는 풋풋함이 하도 싱그러워 그저 아름답게 나아가길 바라게 된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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