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빵과 포도주’에서 시작된 주류 페어링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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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소비가 줄고 있다.
식전주의 탄생이를 보여주듯이 요즘 미쉐린 레스토랑에서는 코스 요리마다 적절한 술을 함께 즐기는 페어링(pairing)이 일반화되고 있다.
외국인 미식가 사로잡는 한식 페어링서구에서 요리마다 술을 맞추는 일은 19세기에야 다시 가능해졌다.
페어링 역사는 결국 술을 무엇에 맞출 것인가의 역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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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주류 경매시장에서는 여전히 최고가 기록이 쏟아지고 있다. 3월 뉴욕 경매에서 1945년산 로마네 콩티 한 병이 약 11억 원에 팔리며 와인 경매 최고가를 새로 썼다. 2023년에는 맥캘란 1926이 약 37억 원에 낙찰됐다. 술을 많이 마시는 시대가 지나면서 이제는 무엇을 마시고 소장하느냐가 중요해졌다.
식전주의 탄생
이를 보여주듯이 요즘 미쉐린 레스토랑에서는 코스 요리마다 적절한 술을 함께 즐기는 페어링(pairing)이 일반화되고 있다. 샴페인으로 입맛을 깨우고, 생선에는 화이트 와인, 스테이크에는 레드 와인을 곁들인 뒤 디저트는 달콤한 와인으로 마무리하는 식이다. 그렇다면 이 공식은 언제, 누가 만든 것일까.창세기 14장에서 살렘 왕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을 맞으며 빵과 포도주를 내온다. 성경에서 빵과 포도주가 처음 함께 등장하는 장면이다. 음식과 술을 짝지은 페어링의 원형인 셈이다.
로마인은 와인을 마실 때 코스 순서를 중시했다. 가벼운 전채에는 꿀을 섞은 와인 '물숨(mulsum)'을 냈다. 지금의 식전주다. 식사가 끝나면 '식사 뒤 술잔치'라는 뜻의 코미사티오(comissatio)가 이어졌다. 이 말은 코미디(comedy)와 뿌리가 같은데, 둘 다 술잔치 행렬을 뜻하는 그리스어 '코모스(kōmos)'에서 나왔다.
1215년 가톨릭 교회가 미사의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바뀐다는 화체설(化體說)을 공식 교리로 채택하면서 와인은 새로운 위상을 갖게 됐다. 이후 유럽 곳곳의 수도원에서 미사에 쓸 포도주를 빚기 위해 포도밭을 일궜고, 빵과 포도주는 가장 신성한 짝이 됐다.
하지만 일상에서는 와인 페어링이 사라졌다. 로마인은 와인을 송진으로 밀봉한 항아리 '암포라'에 담아 여러 해 동안 숙성시켜 마셨다. 그런데 로마가 무너지고 암포라 대신 나무통을 쓰면서 와인은 담근 해에 바로 마셔야 하는 술이 됐다. 또 맛을 즐기기보다 몸을 다스리는 약에 가까워졌다. 중세 연회에서는 마지막에 꼭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 이름을 딴 향신료 와인 히포크라스(hippocras)를 냈다. 소화를 도우려고 계피와 생강, 설탕을 우려낸 이 술이 위를 '닫는다'고 여겼다. 식전주 아페리티프(apéritif)가 '열다', 식후주 디제스티프(digestif)가 '소화하다'라는 라틴어에서 온 것도 이 때문이다.
외국인 미식가 사로잡는 한식 페어링
서구에서 요리마다 술을 맞추는 일은 19세기에야 다시 가능해졌다. 그전까지 유럽 만찬은 수십 가지 요리를 한꺼번에 차리는 방식이었는데, 1810년 파리 주재 러시아 대사 쿠라킨이 요리를 한 접시씩 차례로 내는 만찬을 열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추운 러시아에서는 음식을 한꺼번에 차리면 금방 식어버려서"라는 설명이 전해진다. 이 러시아식 서비스가 퍼지면서 비로소 요리마다 술을 맞추기 시작했다. 고기에는 레드 와인, 생선에는 화이트 와인을 내는 식이다. 손님 자리마다 서너 개 잔이 놓이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다만 그 공식이 곧바로 자리 잡은 것은 아니다. 1908년 출판된 미국의 한 하인용 지침서에는 "굴을 먹을 때는 달콤한 소테른 와인, 로스트비프에는 샴페인"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지금의 공식은 20세기 들어서야 정리됐다. 과학이 근거를 보탠 것은 더 최근이다. 2009년 일본 연구진은 레드 와인 38종과 화이트 와인 26종을 가리비와 함께 맛보게 한 실험을 통해 와인의 철분이 해산물의 비린 맛을 키운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생선에는 화이트 와인'이라는 오랜 경험칙이 들어맞는 이유다.
성경의 식탁에서 로마와 중세의 식탁을 지나, 우리는 이제 각 접시에 어울리는 한 잔을 고르는 식탁에 앉아 있다. 페어링 역사는 결국 술을 무엇에 맞출 것인가의 역사였다. 신에게, 몸에, 그리고 마침내 맛에.
그렇다면 한식에는 무엇을 맞출까. 한식을 기반으로 한 미쉐린 레스토랑에서는 최근 전통주 페어링이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 미식가들이 한국만의 페어링을 경험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감미로운 숙성 막걸리로 입맛을 열고, 메인에는 과실 향이 풍부한 약주와 청주(淸酒)를 내놓으며, 마지막은 꿀술이나 떠먹는 막걸리 이화주(梨花酒)로 마무리한다. 서양의 페어링이 수천 년에 걸쳐 다듬어졌다면, 한식과 전통주의 페어링은 이제 첫 장을 쓰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 진화 중이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이유다.
명욱 칼럼니스트는… 주류 인문학 및 트렌드 연구가. 숙명여대 미식문화 최고위과정 주임교수를 거쳐 세종사이버대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과 '말술남녀'가 있다. 최근 술을 통해 역사와 트렌드를 바라보는 '술기로운 세계사'를 출간했다.
명욱 주류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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