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 오르반 실각 축하 무대 된 헝가리 봉기 70주년

김태훈 2026. 10. 24.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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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가 소련(현 러시아) 영향권에 속한 공산주의 국가이던 시절 시민들이 반(反)소련·반공을 외치며 들고 일어난 헝가리 봉기가 70주년을 맞았다. 마침 친(親)러시아·반유럽연합(EU) 정책을 펴 온 오르반 빅토르 정권이 축출된 직후여서 헝가리의 '유럽 귀환'을 반기는 축제의 장이 되었다.

이날 기념식이 열린 코슈트 러요시 광장에 약 20만명의 시민이 모여 공산주의를 규탄하고 소련의 헝가리 지배를 성토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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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헝가리 봉기, 소련군 개입으로 좌절
16년간 親러시아 정책 편 오르반 올해 실각
새 정부 “우린 자유롭고 민주적인 서방 일원”

헝가리가 소련(현 러시아) 영향권에 속한 공산주의 국가이던 시절 시민들이 반(反)소련·반공을 외치며 들고 일어난 헝가리 봉기가 70주년을 맞았다. 마침 친(親)러시아·반유럽연합(EU) 정책을 펴 온 오르반 빅토르 정권이 축출된 직후여서 헝가리의 ‘유럽 귀환’을 반기는 축제의 장이 되었다.

23일(현지시간) dpa 통신에 따르면 헝가리 봉기 70주년 기념식이 이날 수도 부다페스트 국회의사당 옆 코슈트 러요시 광장에서 거행됐다. 이 광장 지하에는 봉기 당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1956년 혁명 기념관’이 조성돼 있다.

23일(현지시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헝가리 봉기 70주년 기념식이 열려 머저르 페테르 총리가 연설을 하는 동안 헝가리 국기가 펄럭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5월 취임한 머저르 페테르 총리는 기념사에서 “1956년 (봉기) 이후에도 침략자들을 옹호하거나 헝가리 국민을 외국 세력의 이익에 복종시키려 한 자들은 1956년의 교훈을 저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0년부터 올해까지 무려 16년간 총리로 집권하며 옛 소련의 후예 러시아와 밀착한 오르반을 겨냥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과거 오르반이 EU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경원시한 점을 의식한 듯 머저르 총리는 “헝가리는 EU와 나토 회원국으로 자유롭고 민주적인 서방에 속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다른 EU 및 나토 회원국들을 향해 “(오르반 시절과 달리)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가 되길 원한다”고 외쳤다.

이날 기념식에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 안토니우 코스타 EU 정상회의 상임의장도 참석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1956년에 보여준 헝가리 국민의 자유 쟁취 의지를 기린다”며 “민주주의는 끊임없이 싸워야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 총선에서 머저르 총리가 오르반 세력을 누르고 집권한 점을 가리켜 “헝가리에서 민주주의가 부활했다”고 평가했다.

지금으로부터 꼭 70년 전인 1956년 10월23일 일어난 헝가리 봉기 당시 부다페스트 시가지의 모습. 반소련, 반공산주의를 외치는 시민들이 정부군으로부터 탈취한 전차(탱크) 위로 올라가 헝가리 국기를 흔들고 있다. AP연합뉴스
헝가리 봉기는 1956년 10월23일 시작됐다. 이날 기념식이 열린 코슈트 러요시 광장에 약 20만명의 시민이 모여 공산주의를 규탄하고 소련의 헝가리 지배를 성토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성난 시민들은 부다페스트 시내의 이오시프 스탈린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 동상을 무너뜨렸다.

정부군의 발포로 사상자가 속출하는 혼돈의 와중에 공산당 지도자들 중에서 개혁파로 통하던 너지 임레(1896∼1958)가 정권을 잡았다. 헝가리 새 총리에 오른 너지는 “언론, 집회, 종교의 자유와 복수 정당제를 보장하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촉진하겠다”며 반공 혐의로 수감 중이던 정치범들을 석방했다.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은 크게 당황했다. 헝가리를 가만히 두면 폴란드, 체코 등 다른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들로 민중 봉기가 확산할 가능성이 컸다. 소련의 무력 개입 낌새를 알아챈 너지는 소련을 맹주로 하는 공산주의 국가들의 군사동맹 바르샤바조약기구(WTO)로부터 헝가리의 탈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소련군을 중심으로 하는 WTO 군대는 기어이 헝가리를 침략했다.

봉기 시작 후 12일 만인 1956년 11월4일 부다페스트를 비롯한 헝가리 전역이 소련군에 점령됐다. 너지 등 정부 지도자들은 체포되고 헝가리엔 새로운 공산주의 독재 정권이 들어섰다. 너지 등 200여명은 재판을 거쳐 사형에 처해졌다. 봉기 가담자 약 2만2000명은 감옥에 갇혔고, 절망한 헝가리 국민 20만명가량은 국경을 접한 오스트리아를 통해 서방으로 탈출했다.

동서 냉전이 막바지에 달하고 동유럽에서 민주화 물결이 일던 1989년에야 봉기 가담자들의 정치적 복권이 이뤄졌다. 반역자로 몰려 1958년 처형된 뒤 40년 넘게 가매장 상태로 있던 너지도 그해 6월16일 무려 30만명의 추모객이 운집한 가운데 정식 장례식이 열렸다. 그 직후 헝가리는 새 헌법을 제정하고 지금과 같은 민주공화국으로 탈바꿈했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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