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대선 앞두고 둘로 갈라진 브라질…"당신은 친구인가 적인가"

송광호 2026. 10. 24.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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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결선투표를 이틀 앞둔 23일(현지시간) 브라질 최대 상업 도시 상파울루. 대선 결선 투표를 이틀 앞둔 금요일 오후의 상파울루 분위기도 이런 날씨와 닮아있었다.

옆에 있던 동료 스테파니 비에이라 씨도 "희토류 같은 브라질의 자원이 미국으로 넘어갈 것"이라며 "상파울루의 젊은이들은 대부분 룰라를 응원한다"고 거들었다.

적극적이건 소극적이건, 룰라를 지지하든 보우소나루를 지지하든, 인터뷰에 응한 모든 이들이 공통으로 우려한 것은 브라질 사회의 깊은 단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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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선투표 이틀 앞둔 상파울루…보우소나루 지지층은 '샤이 보수' 많아
젊은 층은 "민주주의의 후퇴" 우려하면서 룰라 적극 지지 표명
보수건 진보건 모두가 우려하는 '양극화'…극한 대립 속 합리성 실종
TV토론에 나선 플라비우 보우소나루 상원의원과 룰라 대통령 [EPA=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상파울루=연합뉴스) 송광호 특파원 = 대선 결선투표를 이틀 앞둔 23일(현지시간) 브라질 최대 상업 도시 상파울루. 계절은 여름을 향해가고 있었지만, 오락가락하는 빗줄기 탓에 옷깃을 여미어야 할 만큼 제법 쌀쌀했다. 대선 결선 투표를 이틀 앞둔 금요일 오후의 상파울루 분위기도 이런 날씨와 닮아있었다. 한마디로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룰라와 보우소나루, 둘 중에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좋겠는가'라는 간단한 질문에 한 20대 여성은 손사래를 치면서 "환경 관련 일을 하는데, 인터뷰가 안 나갔으면 좋겠다. 양해를 부탁한다"며 자리를 피했다.

상파울루 도심 파울리스타 거리에 위치한 상파울루미술관에서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를 주제로 한 기획전 출품작을 지긋이 바라보던 70대쯤의 노신사도 인터뷰 요청을 정중히 거절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지지 후보를 표명하면서도 남들과 정치 얘기는 잘 하지 않는다고 했다. 말을 아끼는 이들은 대체로 보수 성향을 띠는 것으로 보였다.

TV 토론 시청하는 브라질 유권자들 [로이터=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우파를 지지한다고 말하기 힘든 분위기예요. 현재 선거가 폭력적으로 흘러가고 있거든요. 좌우를 떠나 양극화가 정말 심각합니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전혀 없어요. 하지만 저는 그래도 제 목소리를 내겠습니다. 지난 14년간 룰라의 노동자당(PT)을 지지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어요. 그래서 이번엔 보우소나루를 지지합니다."

젊은 층이 주로 다니는 신문물의 성지 '리베르타지' 거리에서 만난 부동산업자 발바라고 메시(39) 씨의 말이다.

보우소나루 지지자들 (상파울루=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23일 리베르타지 거리에서 인터뷰를 나누는 보우소나루 후보 지지자. 2026.10.23. buff27@yna.co.kr

이날 기자가 상파울루 주요 거리와 미술관, 백화점, 식당, 택시 등에서 만난 보우소나루 지지자들은 목청을 높이지 않았다. 대체로 지지 후보를 밝히길 꺼리는, 이른바 '샤이 보수'(숨은 보수)가 많은 듯 보였다.

그렇다고 주장마저 '샤이'한 건 아니었다. 이들의 마음은 정부의 실정에 대한 불만으로 타들어 갔고, 내뱉는 주장에도 날이 서 있었다. 경제난과 치안 불안을 호소하며 이번에는 플라비우 보우소나루 상원의원이 대통령에 당선돼야 한다고 단언했다. 이들의 주장은 단순했다. '오랜 세월 브라질을 이끈 룰라가 과연 이뤄 놓은 것이 무언인가'라는 것이었다.

방탄소년단(BTS)을 좋아하는 두 딸을 키우는 후치 올리베라(43) 씨는 식당 서빙을 보면서 "룰라는 거짓말만 하고, 부패했다. 이젠 그를 믿지 않는다"면서 보우소나루를 지지한다고 강조했다.

백화점에서 만난 도널드 알골로(64) 씨는 최근 브라질에서 크게 늘고 있는 복음주의 개신교 신자였다. 그는 "인생에선 '가족', '하느님', '예의'가 중요한데, 룰라는 이런 가치를 전혀 존중하지 않는다"며 "특히 플라비우는 강경파였던 아버지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과는 다르게 극우가 아닌 '우파'여서 더욱 지지한다. 다만, 지금 룰라와 지지율이 박빙이라 조마조마하다"고 털어놨다.

룰라 지지자들 (상파울루=연합뉴스) 송광호 특파원 = 23일(현지시간) 파울리스타 거리에 있는 상파울루미술관에서 룰라 지지자 모녀가 인터뷰하고 있다. 2026.10.23. buff27@yna.co.kr

반면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현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들은 자신있게 목청을 높였다. 이들은 대체로 보우소나루가 당선될 경우, 취약 계층이 타격을 입고, 민주주의가 퇴행하며, 미국의 간섭이 심해져 '희토류' 등 주요 지하자원을 빼앗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고교에서 과학을 가르쳤던 퇴직 교사 라우치네치 코헤야(74) 씨는 "민주주의는 항상 발전한다. 룰라는 빈민 현금 지원을 골자로 한 '보우사 파밀리아'(Bolsa Familia)로 소외된 자들을 보살폈고, 돈 없는 아이들이 무상으로 교육받을 수 있도록 했다"며 "나는 평생 좌파를 지지했고, 이번에도 당연히 룰라를 지지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현재 판세가 룰라에게 불리한 걸 인정하면서도 "이긴다는 믿음이 있다. 설사 지더라도 계속 싸우겠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생의 속성이다"고 곁들였다.

직장인 야리마 코스티 씨는 "보우소나루가 된다고 해서 치안이나 경제가 나아질 리 없다"며 "확실한 건 가난한 이들의 삶이 더 팍팍해질 것이라는 사실"이라고 우려했다.

옆에 있던 동료 스테파니 비에이라 씨도 "희토류 같은 브라질의 자원이 미국으로 넘어갈 것"이라며 "상파울루의 젊은이들은 대부분 룰라를 응원한다"고 거들었다.

룰라를 지지하는 젊은 직장인 (상파울루=연합뉴스) 송광호 특파원 = 23일 주브라질 한국문화원에서 인터뷰에 응한 룰라 지지자들. 2026.10.23. buff27@yna.co.kr

반면 마음이 온전히 기울지 않은 '유동적인 지지자'들도 눈에 띄었다. 미술관에서 만난 아나 카롤리나(42) 씨는 '최악을 피하기 위한' 차선책으로 룰라를 지지한다는 유권자였다. 그는 "룰라가 좋아서가 아니라 보우소나루가 더 싫어서"라며 마지못해 표심을 정했다고 밝혔다.

보험회사에 다니는 자켈리니 맨데스(31) 씨는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보면 뭐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다. 팩트체크는 하나도 안 되고, 주장과 감정만 난무한다. 호나우두 카야두 후보를 지지했지만, 결선에선 어쩔 수 없이 룰라를 찍을 것 같다. 보우소나루는 너무 나갔다"고 토로했다.

비오는 상파울루의 파울리스타 거리 (상파울루=연합뉴스) 송광호 특파원 = 23일 비가 오다 말기를 반복한 상파울루 거리. 2026.10.23. buff27@yna.co.kr

적극적이건 소극적이건, 룰라를 지지하든 보우소나루를 지지하든, 인터뷰에 응한 모든 이들이 공통으로 우려한 것은 브라질 사회의 깊은 단절이었다. 브라질이 완전히 두 쪽으로 쪼개졌다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었다.

이러한 양극화는 독일의 반자유주의 철학자 칼 슈미트의 통찰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정치를 사회적·정치적 공간에서 '친구와 적'을 엄격히 규정하는 과정으로 보았다. 슈미트가 경고했듯이, 정치의 본질이 증오로 채워질 때 대화, 합의, 헌법 준수라는 민주주의의 가치는 힘을 잃어간다. 브라질 대선은 현대 정치가 마주한 그러한 단면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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