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제 본부 밀실 소동극 《수능, 출제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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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수학능력시험, 일명 수능은 전 국가적 이벤트다. 《수능, 출제의 비밀》은 온 국민의 관심사인 수능을 소재로 수험생 당사자와 그 가족이 아니라 출제자들에게로 시선의 방향을 돌리는 신선한 시도를 감행한다.
각본은 실제 수능 출제위원이 집필한 서적인 《수능시험은 누가 어떻게 출제하는가》를 참고하고 추가 취재를 통해 완성했다.
메시지는 가볍지 않되 전반적으로 경쾌하게 굴러가는 코미디의 리듬을 장착한 것은 《수능, 출제의 비밀》의 강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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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쾌하고 코믹하게 굴러가는 영화 속 묵직한 메시지
(시사저널=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대학수학능력시험, 일명 수능은 전 국가적 이벤트다. 활주로에서 비행기 이착륙이 잠시 정지되고 주식시장 개장이 늦춰지며 당일 교통 혼잡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업 출근시간 조정 권고까지 내려지는 날. 《수능, 출제의 비밀》은 온 국민의 관심사인 수능을 소재로 수험생 당사자와 그 가족이 아니라 출제자들에게로 시선의 방향을 돌리는 신선한 시도를 감행한다. 2급 국가기밀에 해당하는 수능 문항 출제를 위해 40일간 외부와 차단된 채 봉인되다시피 해야 하는 출제위원들. 인쇄 등 필요한 일정을 제외하고 문항을 만드는 20일 남짓, 출제 본부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영화는 《해치지 않아》(2020),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2022)의 각본을 쓴 이용재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이다. "우리 사회의 어느 소재를 택하든, 그 단면을 잘라보면 굉장히 다양한 모습이 있을 것"으로 봤다는 그는 수능시험 제도를 통해 교육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축소판을 들여다보려 한다. 각본은 실제 수능 출제위원이 집필한 서적인 《수능시험은 누가 어떻게 출제하는가》를 참고하고 추가 취재를 통해 완성했다.

문제없는 문제를 만들어야 하는 사람들
실제로 영화가 보여주는 출제위원 본부는 40일간 꾸려지는 그들만의 작은 사회다. 더욱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보안을 최우선으로 하기에 작동 방식이 조금 다른 공동체다. 가맹점 위치가 노출될 것을 우려해 시설 내 편의점 등에서 카드 사용이 금지되는 대신 장부를 기입해야 하는 등의 소소한 불편은 기본이다. 출제위원들은 보안요원들의 철저한 감시하에 생활한다. 운동장에서 담장 너머로 넘어간 공까지 일일이 다 찢어볼 정도의 철통보안이다. 본부에 합류하기 전 소셜미디어에 남긴 포스팅 한 줄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수능 출제하러 간 듯'하다는 추측 댓글이 달린 당사자는 문항 출제 업무에서 제외된 채 40일간 별도의 감금 생활을 견뎌야 한다.
왜 이렇게까지 야단인가. 그것이 다름 아닌 수능이기 때문이다. 단 한 번의 시험으로 앞으로의 방향이 결정되는 수험생들에게 수능은 인생이 걸린 문제다. 실은 진짜로 그렇다기보다 학창 시절 내내 그렇다고 강요당하며 자란다. 학력 우선주의와 파벌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한 한국 사회에서 수능은 그 첫 번째 관문이나 다름없다. "시험이 쉬우면 변별력이 없고 너무 어려우면 온 국민이 울어요"라는 영화 속 대사가 단순히 극적 장치로만은 들리지 않는 이유다.
《수능, 출제의 비밀》은 '문제없는 문제'를 만들어야 하는 이들의 상황을 코믹한 소동극으로 바라본다. 무엇보다 공정해야 할 시험 문항 출제 과정조차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데서 오는 부조리가 코미디의 핵심이다. 주인공 맹보람(이선빈)은 행정 착오로 출제 본부에 합류한 국어 교사다. 젊은 여성이자 지방대 출신, 수도권 밖 소도시 학교 평교사라는 점은 다른 출제위원들로 하여금 그를 '빼박 소수자 스펙'으로 취급하게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맹보람은 열의 넘치게 국어 문항 출제 과정에 참여한다. 교권의 정의감을 불태우는 그가 기존 관행에 의문을 제기할수록 국어과 출제위원장 문주열(유재명) 등 견고하게 그들만의 리그를 쌓아온 출제위원 카르텔에 맹보람은 눈엣가시일 뿐이다. 알아서 두 손 두 발 들기를 바라며 은근한 무시로 일관하거나 복사나 커피 심부름을 시키는 출제위원도 버젓이 존재한다. 급기야 문항의 지문을 만드는 것을 둘러싸고 맹보람은 이런 말까지 듣는다. 애초에 말이긴 하나 말이 안 되는 충고다. "(문제를) 내도 되는데, 내면 안 돼."

"수능은 공정해야죠.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요"
영화는 출제 본부를 학력과 경력과 나이의 권위를 우선하는 한국 조직문화의 맹점이 그대로 드러나는 공간으로 바라본다. 이곳은 명문대 엘리트 출신들끼리 뭉치는 카르텔이 모든 것을 장악하는 구조다. 그러나 그들이 거머쥔 권력은 떳떳하게 이룬 결과가 아니다. 조교들의 노력을 착취하며 지금의 자리에 오른 국어과 출제위원장 문주열, 그의 권력에 기생하는 기회주의자 고재봉(김경민)이 대표적이다. 문주열과 사사건건 대립하는 문항 검토위원장 박경태(김영민), 운영위원회 평가원 직원 기준수(전석호) 등 각각의 인물은 기존 한국 사회의 기득권과 그들 주변을 차지하는 이들의 특징을 하나씩 부여해 빚어놓은 캐릭터들이다.
맹보람의 눈을 경유해 관객이 바라보는 것은 출제위원들의 학력과 사회적 지위가 판단의 기준이 되는 풍경이다. 출제 본부 안에서 개인의 욕망과 경쟁 의식 같은 것들이 더 우선시되는 사이, 교육자로서의 책임감은 당연한 듯 뒷전이 되기도 한다. 이 안에서 홀로 너무 열심히 하고 진심인 보람이 일으키는 소동은 견고한 기존 관행에 조금씩 균열을 낸다.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려는 사람. 조직 작동 방식의 오류를 바로잡으려는 사람. 보람의 발언은 무난하게 대충 상황을 넘기고 싶은 사람들에게 귀찮기만 하다. 그러나 보람은 쉬이 멈출 생각이 없다.
수험생들이 단 하루로 인생의 갈림길에 서는 상황에, 그들이 푸는 문제를 만드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공정성보다는 내부의 위계질서가 더 막강한 영향력이다. 그렇다면 애초에 공정한 시험, 문제없는 문제는 가능할까. 교육방송도 겨우 볼 수 있는 형편의 아이들과 최고 수준의 사교육을 받는 아이들이 모두 받아드는 시험지. 그 안에서 등급을 가르기 위해 존재한다는 킬러 문항은 과연 변별력의 올바른 기준이 될 만할까.
영화는 자연스럽게 2023년 '사교육 카르텔 사건'을 떠오르게 한다. 수능 출제위원으로 참여했던 교사들이 사교육 업체와의 다년간 킬러 문항 거래를 통해 1인당 평균 8040만원의 수입을 올렸다는 보고서가 공개되면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일었다. 출제위원이기 이전에 교육자라는 본분을 잊은 사람들이 만든 낯부끄러운 사건이다. "수능은 공정해야죠. 애들한테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요." 맹보람의 일갈은 1년에 한 번, 전 국가적 이벤트를 둘러싸고 사회가 우선시해야 할 태도를 말한다. 교육은 사회 전체의 뿌리 깊은 문제들을 모두 해결해줄 순 없어도, 애초에 사회로 나가려는 이들이 서는 출발선만큼은 바르게 그어줄 수 있다.
메시지는 가볍지 않되 전반적으로 경쾌하게 굴러가는 코미디의 리듬을 장착한 것은 《수능, 출제의 비밀》의 강점이다. 이선빈과 유재명을 중심으로 다수의 배우가 한데 모여 펼치는 앙상블 연기가 재미를 견인한다. 실제 무주에 있는 태권도원에서 촬영하며 합숙을 감행한 데서 나오는 호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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