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end] 인류는 이야기로 살아남았고, 이야기로 서로를 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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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일보가 주말 독자 여러분께 책 한 권을 소개하는 웹 연재 '북엔드(Bookend)'를 마련했습니다.
자기가 속한 공동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믿었을 뿐이다. 2022년 독일 독서문화진흥재단의 논픽션 분야 최우수상 최종 후보에 오르고 슈피겔 논픽션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린 이 책은 신화에서 소셜미디어까지, 인류가 이야기로 문명을 세우고 또 서로를 무너뜨려 온 길을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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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일보가 주말 독자 여러분께 책 한 권을 소개하는 웹 연재 '북엔드(Bookend)'를 마련했습니다. 북엔드는 책꽂이에서 책이 쓰러지지 않게 받쳐 주는 받침입니다. 그 이름 안에는 주말(weekend)과 책(book)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바쁘게 흘러간 한 주의 끝을 책 한 권으로 받쳐 세우자는 뜻을 담았습니다. 주말, 곁에 두고 읽을 만한 책을 골라 찾아가겠습니다.
「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
자미라 엘 우아실·프리데만 카릭 지음 | 김현정 옮김 | 원더박스 | 568쪽 |

저자들이 눈여겨보는 건 그 이야기를 믿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유난히 잔인하지도, 비이성적이지도 않았다. 자기가 속한 공동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믿었을 뿐이다. 2022년 독일 독서문화진흥재단의 논픽션 분야 최우수상 최종 후보에 오르고 슈피겔 논픽션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린 이 책은 신화에서 소셜미디어까지, 인류가 이야기로 문명을 세우고 또 서로를 무너뜨려 온 길을 따라간다.
독일에서 칼럼을 쓰고 팟캐스트를 함께 진행하는 자미라 엘 우아실과 프리데만 카릭은 인간을 호모 사피엔스보다 '이야기하는 인간', 호모 나랜스라 부르는 편이 정확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아주 가끔만 슬기롭지만 이야기는 늘 하기 때문이다. 마주친 적도 없는 검치호랑이를 이야기하기 시작하면서 인류는 겪지 않은 위험을 미리 나눌 수 있었고, 더 실감 나는 이야기를 가진 부족이 살아남았다.
이야기는 힘이 센 만큼 위험하다. 금단의 열매를 먹은 여자 때문에 낙원에서 쫓겨난 남녀의 이야기 밑에는 '여성은 위험하다'는 메시지가 오래 깔려 있었다.
저자들은 왕권과 종교, 인종을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 부른다. 인종만 해도 자연의 질서가 아니라 착취를 정당화하려고 나중에 지어낸 이야기였다. 사회학자 알라딘 엘 마팔라니의 말이 그 속내를 드러낸다. "인종차별적인 지식이 있으면 양심껏 착취하고 억압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사는 동화는 무엇일까. 저자들은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능력주의를 꼽는다. 이 믿음은 고된 하루와 거듭되는 실패를 버티게 해 주지만, 성공이 온전히 내 덕이라고 믿는 순간 타인의 실패는 그들 탓이 되고 구조의 불의는 개인의 무능으로 읽힌다.
스마트폰을 쥔 우리는 모두 초강력 이야기꾼이 됐다. 날마다 자신을 연출해 올리고, 적을 규정하는 이야기에 가장 먼저 반응한다. 그 안에서는 옳은 이야기보다 눈길을 끄는 이야기가 이긴다.
노리치의 숲에서 시작된 이야기를 믿은 중세 사람들과 오늘 화면을 넘기며 누군가의 이야기를 믿는 우리는 생각만큼 멀지 않다. 어떤 이야기를 믿고 어떤 이야기를 건넬 것인가. 책이 끝까지 붙드는 질문이다. 원제는 'Erzahlende Affen'(이야기하는 원숭이).
이진호 기자 jinair2000@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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