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당’은 끝났다, 남은 건 단절… 김여정이 말하면 북한이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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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쯤 나올려나 싶을 때 어김없이 등장했다. 그녀의 메시지는 전체적인 판이 어떻게 돌아갈 지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이다.
지난달 21일 비무장지대(DMZ)에서 발생한 북한군 지뢰 폭발 사건 이후 북한이 보인 반응, 동향은 김여정의 담화에 응축되어 있다.
DMZ 지뢰 폭발 사건 이후 나온 김여정의 담화에는 지금의 북한이 남한을 어떻게 인식하고, 향후 남북관계를 어떻게 만들어 가려는 지가 분명하게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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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쯤 나올려나 싶을 때 어김없이 등장했다. 그녀의 메시지는 전체적인 판이 어떻게 돌아갈 지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이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라고 찾아볼 수 없는 거칠기 짝이 없는 언사들.
“자작 광대극”, “망상이자 넋두리”, “가장 너절하고 추악한 적”….

지난달 21일 비무장지대(DMZ)에서 발생한 북한군 지뢰 폭발 사건 이후 북한이 보인 반응, 동향은 김여정의 담화에 응축되어 있다. 이번 사안에만 한정된 게 아니다. 그녀의 담화는 남북관계에서 북한이 어떤 태도, 입장을 취할 지는 읽는 바로미터다. 때로는 파국을 예고했고, 가끔은 대화 재개의 기대를 키웠다.
◆남북 단절의 요새화
DMZ 지뢰 폭발 사건 이후 나온 김여정의 담화에는 지금의 북한이 남한을 어떻게 인식하고, 향후 남북관계를 어떻게 만들어 가려는 지가 분명하게 담겨 있다.

지난 19일 담화는 군사적 압박을 한층 강화한 것이 두드러졌다. 우리 군이 군사분계선(MDL) 일대에서 실시한 경고방송, 경고사격을 비난하며 전술적 타격수단을 남부 국경선 전역에 증강 배치하고 대남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협박했다. 국경선 요새화 작업을 방해하지 말라는 경고와 함께 실제 군사적 대응 가능성을 거론한 것이다.
21일 담화는 박정천 국방성 고문 등 북한군 지휘부를 대동한 요새화 현장 시찰 사진이 함께 나와 선명하게 각인됐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시라며 접경지역에 “영원히 넘지 못할 영구적인 선을 만들 것”임을 천명했다. 요새화 작업이 단순한 군사시설 구축을 넘어 남북관계의 단절을 물리적으로 완성하려는 작업임을 확인한 것이다. 군사적 위협도 구체화했다. 북한군 전술부대가 새로운 진지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달 중 대남 심리전 확성기가 국경선 전역에서 가동 상태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22일 담화에서는 “국경이 요새화되면 조한(남북) 사이의 군사적 충돌 위험은 현저히 낮아질 것이며 많은 복잡한 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물리적 장벽을 구축하고 남북간 접촉을 영구적으로 차단하는 것이 군사적 안정을 가져온다는 논리다.
지뢰 폭발 사건과 관련한 김여정의 담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건 남북관계의 영구적 단절의지다. 남한과는 상종 자체를 않겠다는 것이다. 그것의 현실적 형태가 국경선 요새화 작업이다. 남북한 간 접촉이 봉쇄될 테니 군사적 충돌도 없을 것이라는 논리다.

김여정의 담화가 남북관계의 주요 국면마다 등장한 것은 오래 됐다. 김정은 집권 이후 김여정은 그의 의중을 전달하는 핵심 통로이자 남북관계의 긴장 수위를 조절하는 역할을 해왔다. 담화에서 예고한 조치가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거나, 반대로 대화 재개의 기대를 높이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0년 6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다. 김여정은 그해 6월 4일 대북전단 살포를 비난하며 연락사무소 폐쇄와 남북 군사합의 파기 가능성을 경고했다. 북한은 9일 남북 간 통신연락선을 차단했다. 13일 다시 담화가 나왔고, 연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질 것이라고 예고했다. 사흘 뒤인 16일, 실제로 연락사무소는 폭파됐다.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물이었던 연락사무소가 폭파되면서 남북관계는 급격히 악화했다. 김여정의 담화가 말만이 아니라 실제 행동을 예고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을 보여준 사건이기도 했다. 다만 이후 북한은 김정은의 지시에 따라 대남 군사행동을 추가하지 않았다. 김여정이 긴장을 높이고 김정은이 상황을 관리하는 패턴이 드러난 것이다.
2021년에는 강온 메시지가 번갈아 등장했다. 김여정은 3∼8월, 한·미연합훈련을 빌미로 남북 통신연락선의 복원, 차단을 이어갔다. 그러더니 9월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적대정책 철회와 상호 존중을 조건으로 내걸었지만 남북정상회담, 연락사무소 재설치도 논의할 수 있다고 했다. 10월에는 통신연락선을 복원했다.
◆‘밀당‘에서 단절로
과거 김여정의 담화는 북한이 구상하는 남북관계의 ‘밀당’을 함축하고 있었다. 한·미연합훈련 중단이나 대북정책 변경 등 구체적인 요구를 내세우면서 관계 개선의 가능성을 남겨뒀다. 그러나 최근에는 완연히 성격이 바뀌었다. 남한과의 접촉을 영구적으로 차단하는 것이 북한의 안전을 지키는 길이라는 메시지가 두드러진다.
김정은이 2023년 말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한 것이 전환점이었다. 김여정은 2024년 1월 담화에서 윤석열 정부를 비난하며 북한의 군사력 강화가 정당하다는 논리를 폈다. 남한의 정책 변화를 요구하던 과거와 달리 남북관계 자체를 적대적인 국가 간 관계로 바꾸려는 북한의 새로운 노선을 뒷받침하는 성격이 강해졌다. 남북관계를 움직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관계 단절을 굳히는 수단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강구열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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